운동권 정치세력의 반칙과 타락

-운동권 정치세력의 역사적 평가 토론회 발제문-

김대호 승인 2024.02.04 08:55 | 최종 수정 2024.02.04 08:57 의견 0

1.운동권이라는 유령

‘운동권’과 ‘운동권 정치’가 반민주당·친국힘당 정치세력의 공적(公敵)처럼 되었다. ‘운동권 정치’ 정산이 거의 시대정신의 반열로 올라간 느낌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안팎에 포진한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저지른 숱한 패악질; 반칙과 특권, 부패와 타락, 거짓과 조작, 위선과 독선, 몰염치와 몰상식 그리고 시대착오적 철학이 낳은 숱한 정책 실패사례 등이 거론되면서, 운동권은 토착 왜구 보다 더 나쁜 토착 악마가 되었다. 친일매국노 보다 더 나쁜 빨갱이·주사파 혹은 패륜아가 되었다. 자유·보수·우파 정치인들은 저마다 운동권을 걷어차고 돌 팔매질을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취임수락 연설(2023.12.27)에서‘운동권 특권정치’청산을 거론하자, 대표적인 86운동권 출신 정치인 임종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함부로 돌 던지지 마라”면서 격렬하게 반발했다.

“12.12 군사 쿠데타와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저항했던 우리의 삶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내가 원해서 군화발에 채이고 감옥에 가고 친구를 먼저 보낸 것이 아니다.(중략)견디고 회복하고 이겨내기 위해 날마다 두려움과 맞서며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그런 삶들이 모여 6월 항쟁이 되었다. 박종철을 잃고 이한열을 잃고 민주주의를 얻었다.(중략) 다른 이의 희생으로 일상을 지키고 평생 검사만 하다가 권력에 취해 마구 휘두르는 당신들에게 충고한다. 그 입에 함부로 기득권이니 특권이니 하는 낯뜨거운 소리를 올리지 마라”

운동권 정치 청산 목소리를 높이면 임종석 유의 항변도 거세질 것이다. 한국의 진보좌파·운동권은 실체가 모호한 마녀·유령·허수아비 때리기 소동을 자주 벌였다. 신자유주의, 친일매국세력, 분단·냉전·반통일세력, 친일독재, 검찰독재, 극우 등이 주로 거론된 마녀요 유령이다. 혹시 운동권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마르크스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고 시작되는 공산당 선언에서, 유럽 각국에서 주로 정적 공격·탄압용 딱지인 공산주의라는 유령의 정체성을 정리했다. 한마디로 이 노선이 공상적·보수적·부르주아적·민주주의적 사회주의가 아닌 진짜 사회주의, 바로 공산주의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운동권과 운동권 정치라는 유령 아닌 유령의 정의(정체성 정립)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운동권 내에서 마르크스처럼 ‘이것이 진짜 운동권 정치다’ 라는 선언(메니페스토)을 정립할만한 이론가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운동권 정치는 낡고 썩고 공허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필자 같은 외부인이 운동권과 운동권 정치를 정의해 주고, 시대가 요구하는 진짜 운동권 정치, 즉 현 6공화국을 재건축수준으로 리모델링한 7공화국을 여는 새 운동권 정치 선언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2.지탄받는 운동권은 누구?

운동권을 사전(辭典)적으로 정의한다면, 1960년대 ~ 1990년대 대략 30 ~ 40년 간 한국 정치를 뒤흔든 장외·비제도권 정치세력이다. 1960 ~ 70년대는 운동권을 재야(在野)라 불렀다. 건국·산업화에 이어, 또 하나의 기적으로 평가되는 민주화의 견인차 내지 주역으로 평가된다. 1988년 출범한 노태우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까지 8개 정부 모두 한 목소리로 민주화를 산업화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결과적으로 재야·운동권의 정치사회적 위상은 엄청나게 높아져 버렸다. 민주화의 주역은 5·18민주화운동을 주도한 광주시민들과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86세대(1960년대 출생, 1980년대 학번) 운동권이라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은 각종 영화, 드라마, 소설, 시, 노래, 구전 무용담 등을 통해 신성(神性)을 획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종철, 이한열 등 가슴을 뭉클하게하는 희생자들도 즐비하다.

재야·운동권의 뿌리는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집단 시위인 권당(捲堂)과 벼슬을 하지 않으면서 상소나 서원 등을 통해 중앙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림(士林) 혹은 산림(山林)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이승만 대통령이야말로 전형적인 운동권 청년이었다. 1898년 만민공동회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용기, 격정, 선동(연설), 과격성, 비타협성 등은 그를 극혐하는 1980년대 운동권과 너무나 닮았다. 운동권은 좌익, 극우, 친일파라는 말과 달리 언어 자체에 편견이나 혐오를 담고 있지 않다.

지금 지탄받는 운동권 정치는 어떤 존재인가? 한마디로 2016 ~17년 이른바 ‘촛불시민혁명’을 성공시켰다면서, 온갖 패악질을 일삼아 온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운동권 출신 정치인과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다. 모든 혁명은 기존 체제를 구체제(앙시앙레짐)로 규정하여 파괴하는 것이다. 기존의 철학·가치와 제도·정책 패러다임을 획기적, 급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상대는 거악·기득권·가해자로, 자신은 소악이거나 피해자라는 확신을 내면화해야 혁명적 에너지가 생성된다. ‘촛불시민혁명’ 세력이라는 자의식으로부터 문정부 특유의 급진성, 자부심, 오만, 독선, 도덕적 둔감성 등이 나온다. 나아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수많은 말(언어), 몰상식, 몰염치, 폭력성, 내로남불도 나온다.

운동권 정치의 주체인 ‘촛불시민혁명세력’은 문정부와 민주당만 장악한 것이 아니다. 진보 지자체, 진보 언론사, 시민단체, 노동조합, 교육기관(대학 등) 등에도 튼튼한 진지를 구축했다. 법원과 정부·공공기관에도 산개하여 종종 비상식적 판결이나 결정을 내린다. 이들은 개인 미디어(SNS 등)로 생각을 널리 공유하며, 민주당의 열성 당원이나 열성 지지자로도 활동한다. 2019년에는 서초동에 조국수호대로 집결했고, 최근에는 개딸(개혁의 딸)로 조직되어 민주당을 끌어가기도 하고 밀고가기도 한다. 이들 ‘촛불시민혁명세력’의 인적 중심에 86세대 운동권 정치인과 여론주도층이 있다. 이들은 1980년대 운동권이 정립하여 널리 공유해 온 컨센서스(consensus), 즉 사회적 합의 혹은 통념을 체현하고 있다. 운동권 정치는 체계화된 혁명 이론이나 강령에 입각한 정치가 아니다. 불의한 세상을 확 뒤집어 엎자는 혁명적 정서를 토대로 한 오만과 독선, 부정과 파괴, 타도와 전복의 정치다.

요컨대 운동권 정치는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 수준의 역사관·세계관·정의감과 1990년대 운동권 총학생회 수준의 선전선동 기교와 저열한 윤리의식으로 정부·국회·정당·언론사 등을 운영하는 것이다. 운동권 대학생 수준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역사와 현실에 대한 공부와 고민이 부족하여 생각이 덜 여물었다는 얘기다. 격정과 분노는 과잉이나, 견문은 좁고, 성찰과 반성은 부실하고, 사유체계의 정합성도 없다.

운동권의 연관어(이미지)는 대학생, 붉은 머리띠, 데모대, 최루탄, 화염병 등이다. 뒤이어 미숙, 과격, 급진, 투쟁, 타도, 쟁취 등이 이어진다. 1960~80년대는 대학생은 많이 배운 사람 혹은 지성인이었으나 지금은 생각이 덜 여문 사람 혹은 지적으로 미숙한 사람이다. 재야·운동권은 지조, 절개, 양심, 용기, 희생, 헌신, 풍찬노숙을 연상시켰다면, 지금은 떼법, 위법, 아집, 독선, 내로남불, 종북주사, 시대착오 등을 연상시킨다. 2017년 이후 민주당의 성격을 얘기할 때, ‘진보’나 ‘좌파’의 이미지를 끌어오지 못하기에, 운동권이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운동권 컨센서스가 집이라면 그 토대와 골조는 1980년대 운동권을 사로잡은 ‘해전사’적 역사인식과 좌파 철학의 잔재이다. 문정부와 민주당이 밀어붙인 수많은 언설, 정책, 법안, 인사, 예산과 행보 등을 통해서 운동권이라는 신흥 종파의 정체성을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청산 퇴출의 대상이 되는 운동권은 비록 강령은 없어도 실체가 없는 유령이 아니다. 신나게 때리며 자위할 수 있는 허수아비도 아니다.

이 운동권은 판도라의 상자에 갇혀 있던 분노· 증오· 혐오 에너지 덩어리다. 그런데 2009년 노무현 자살과 김대중의 병사, 2012년 한명숙·문성근·이해찬·문재인의 민주당 장악,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17년 촛불 시위 성공(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그리고 2020년 총선 압승으로 이중 빗장을 완전히 풀고 세상에 뛰쳐 나왔다고 할 수있다. 이들은 1980년대 역사관, 세계관, 정의감을 가슴에 품고 분노, 증오, 혐오를 거침없이 뿜어냈다. 민주당의 저변이 바뀌자, 생각하는대로 살기 보다는 사는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한 송영길 등도 운동권 쪽으로 정체성을 이동 혹은 전환하였다. 단지 화석 운동권의 전형 문재인의 눈치를 봐서가 아니다. 민주당의 열성 지지층 자체가 조국기(曺國旗)부대화, 개딸화, 즉 운동권화 되었기 때문이다.

3.민주당 정체성의 변화, 중도개혁에서 운동권으로

원래 민주당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말이 있다. 민주, 진보, 개혁, 한반도평화, 서민, 촛불시민혁명세력 등이다. 타칭은 보수야당, 좌파, 주사파 등이다. 김대중은 민주당 노선 혹은 정체성을 표현하는 말로 ‘중도개혁’을 선호했다. 노무현은 ‘유연한 진보’을 선호했다. 그런데 민주당 정체성을 규정하는 말들은 어디로 가고, 운동권이라는 말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까? 그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및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과 문재인 정부및 지금 집권야당인 민주당의 노선과 행태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체성의 변화, 즉 운동권 정당화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여당(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과 문재인 정부·여당(민주당)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있다. 문정부와 민주당의 노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는 너무 멀고, 1980년대 운동권과 싱크로율이 매우 높다.

예컨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과오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 정부는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하는 좁은 나라에서 탈원전=원전생태계 고사를 고집하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상식과 이성에 반하는 포퓰리즘 경제이론으로, 최저임금을 폭등시키고, 공공부문을 폭증시키고, 철밥통을 늘리고 더 단단하게 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조금이라도 약화시켜 보려고 노동·공공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진보를 참칭하는 운동권과 노조로부터 신자유주의 주구라는 비난을 엄청나게 받았다.

문정부는 한국에서는 약자의 권익을 지키는 무기가 아니라, 강자의 약탈의 무기인 노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2대 지침 등)를 해체하여 노조천국으로 만들었다. 문정부하에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노조 조직율이 10%에서 14%로 폭증했다. 공공부문과 건설부문을 중심으로 노조원이 거의 100만명이 늘었는데, 지지 기반 확충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늘렸다고 보아야 한다. 문정부는 집(주택)을 사는 것(buy)이 아니라 사는 곳(live)이라면서 임대주택 공급원인 다주택 소유자에게, 이전 보다 훨씬 심한 징벌적 세금(종부세, 양도세 등)을 때렸다. 임대료(전월세) 5% 상한제 등 거친 가격 규제 정책으로 시장을 교란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고용 파괴적인 제도와 정책은 독특한 이분법에서 비롯된다. 경제는 자본-노동, 가계-기업, 사람-돈(이윤), 공공-민간의 대립 구도로 본다. 정치는 정(개혁·진보)-사(적폐·보수), 항일-친일, 민주-독재, 평화-전쟁의 대립 구도로 본다. 경제정책적 결론은 국가규제 강화, 공공부문 규모·역할 확대=민간 시장 영역 축소 등을 통해 사회공공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재벌의 불법부당한 갑질을 엄단하여 정의를 바로 세우고, 최저임금 대폭 상승을 통하여 가계소득을 증대시켜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률과 삶의 질(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고, 비정규직 규제 및 엄격한 집행과 노조와의 연대를 통해 자본의 탐욕을 제어하고, 부동산 규제를 통해 투기도 제어하고, 의료 규제(비급여 영역 대폭 축소=문재인 케어)와 탈상품화를 통해 의료비를 절감하고 의료 공공성을 제고한다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실제 결과는 성장율과 성장동력의 약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저출산의 심화 등이다.

문정부는 공직 사회에서 실력·평판 중시 인사 관행을 파괴하였다. 김대중은 반일팔이를 하기는 커녕, 윤석열 정부도 계승을 천명한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을 통해 한일관계의 신기원을 열었다. 햇볕정책은 최종적으로 파산했지만, 정책을 펼치는 내내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여 한미동맹을 결코 훼손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운동권 의원들과 좌파 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파병,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흔들림없이 추진하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라면 9.19 군사합의 같은 것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여정 하명법(대북전단금지법) 같은 것도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조국 같은 위선자를 법무장관에 기용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정비리 혐의가 거의 드러난 상황에서 버티는 짓은 더더욱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곧 퇴임할 대통령이 사저 경호인력을 27명에서 65명으로 늘리는 대통령령 개정을 퇴임 직전에 의결하는 염치없는 짓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8년 총선이후 여소야대를 몇 번 경험했지만, 지금처럼 야당이 숫자를 믿고 법안 단독 강행 처리를 밥먹듯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이라면 설사 국회 다수 의석을 가졌다손치더라도 적어도 공수처 관련 법과 검수완박법(검경수사권 조정법),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같은 쓰레기법을 단독으로 통과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4.운동권 정체성의 골조

1980년대 운동권 정체성의 모태는 근현대 역사관 특히 대한민국관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미국에 의해 태어난 태생이 잘못된 종자라는 것이다. 해전사적 역사인식은 대한민국은 권력욕의 화신이자 권모술수의 달인인 이승만과 친일에서 친미·반공으로 돌변한 기회주의 세력이 합작한 결과라는 것이 골자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발전이라는 것도, 외채와 민중수탈과 억압으로 이룬 모래성으로 보았다. 외자의존 수출지향공업화는 경제적 불균형과 대외 종속을 심화시켜 저발전을 구조화 할 것이라 보았다.

1952년생 이해찬은 2022년에 낸 회고록(530쪽)에서 대한민국은 “여야 정치세력이 항일세력이 아니었고 상층에 친일, 친미가 주류”여서 “자주적인 정부”가 될 수 없었단다. 물론 사실도 아니거니와, 그가 출판을 주도한 운동권 필독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 에서 아직도 갇혀있는 것을 보면 청년대학생 시절에 이식된 운동권 철학의 강고함을 실감할 수 있다. 운동권 정체성은 1980년 대 쏟아진 시대착오적 사상이념의 폭우의 일부가 지하(운동권의 머리와 가슴)로 스며들어 흐르면서 종종 분출하는 지하수에 있다. 지하수 분출의 결정적인 계기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그 과정에서 자유보수우파의 견제력(정치적 지리멸멸) 상실, 결정적으로는 화석 운동권의 전형인 문재인을 앞세운 86운동권에 의한 정부와 민주당 장악이다.

이 지하수에는 1980년대 까지는 약간이나마 섞여 있었던 비전과 대안(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나 사회주의 계획경제 등)은 완벽히 증발했다. 남은 성분은 첫째, 대한민국 건국산업화의 주류세력인 이승만박정희전두환과 그 정치적 후예인 보수정당(국민의힘 계열)에 대한 적대와 증오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친일청산 실패로‘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보니 부정과 파괴가 필연이다. 적대와 증오는 역사와 현실을 정(正)과 사(邪), 도덕과 부도덕, 항일과 친일, 평화와 전쟁, 민주와 독재 등의 대립 구도로 보아야 정당성을 얻는다. 현실 정치적 필요성은 이런 허구를 끊임없이 강화해 왔다.

둘째, 계급해방론(투쟁론)과 민족해방론(반제투쟁론)으로 귀결되는 마르크스-레닌, 스탈린, 마오쩌뚱, 김일성의 좌익 혁명 이념의 잔재다. 매사를 착취와 피착취, 억압과 피억압 관계로 보니 대립과 투쟁, 쟁취와 타도가 필연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서세동점)과 일제 식민통치를 거치며 강화된 반일 민족주의는 2023년 여름, 민주당이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반대 캠페인을 벌인데서 보듯이 아직 죽지 않았다.

셋째, 역시 세계적 유행이던 서구 68혁명 사상(페미니즘, PC주의 등)도 지하수가 되어 흐르고 있다.

넷째, 조선 유교적 세계관의 잔재다. 외교·안보와 경제·민생에 문외한이면서 자신을 지조와 의리가 앞선 군자, 상대를 비루한 소인으로 몰아 배척하면서, 자신들의 특권·특혜를 누리려고 한 조선 사림(士林)의 위선적 사고방식이다. 폐쇄적 농경사회에서 자라난 제로섬적 세계관이기에 많은 모순부조리를 인간의 과다 소유=타욕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주의적 세계관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많다. 인간의 완전성을 믿기에 성왕·성군에 의한 통치를 이상형으로 여기는데, 이는 위대한 수령에 의한 통치로 연결된다. 이는 도덕을 자신을 포함한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라, 오직 상대에 대한 정치적 공격 무기로 삼으니, 위선과 내로남불도 필연이다. 이를 감추고, 대중을 현혹시키려 하니 거짓과 조작이 필연이다.

한편 건국 시기부터 면면히 흘러온 지표수 같은 사상이념도 있다. 하지만 유량이 많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미국 등 선진국 민주주의를 모델로 삼은 반독재 민주화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와 공직자의 도덕성을 중시하였고 선거를 통한 민주화를 지향하였다. 부정선거를 자행하면 4.19식 의거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진국 민주주의가 딛고 선 정신문화적 토양은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포퓰리즘과 이권카르텔의 이념인 먹고사니즘도 지표수가 되어 흐른다.

5. 5ㆍ18 유공자법과 민주유공자법을 통해 본 운동권의 타락

5ㆍ18 관련 법은 1990년 제정 5ㆍ18보상법, 1995년 제정 5ㆍ18특별법(5ㆍ18민주화법), 2002년 제정 5ㆍ18 유공자법, 2018년 제정 5‧18진상규명특별법 등 4개다. 이 중에서 보상 관련 법은 5ㆍ18 보상법과 5ㆍ18 유공자법이다. 원래 5ㆍ18 보상법은 관련자를 유공자로 만드는 법이 아니라, 법 제1조 목적에서 보듯이 국민화합 차원에서 억울하고 곤궁한 사람(사망자, 행불자, 상이자와 그 유족)에 대해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5ㆍ18 관련자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광주직할시장을 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정부는 2021.6.8. 법개정을 통해 5ㆍ18민주화운동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장하고(1979.12.12~1980.5ㆍ18 전후), 관련자도 사망자, 행불자, 상이자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 "수배ㆍ연행 또는 구금된 사람" "공소기각ㆍ유죄판결ㆍ면소판결ㆍ해직 또는 학사징계를 받은 사람" 등으로 늘려잡았다. 개정법은 제2조(정의)를 신설하여 5ㆍ18 민주화운동을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고 하였다.

5ㆍ18 보상법이 관련자와 유족에 대해 국민화합 차원에서 명예회복과 생활안정·복지향상을 도모하는 법이라면, 5ㆍ18 유공자법은 관련자와 그 유족·가족을 국가유공자로 만드는 법이다. 국가유공자법에는 법 제4조에 18개 항목으로 적용대상자를 명기해 놓았고 거기다 19번째 대상자를 추가하면 될텐테, 왜 별도의 법으로 만들었을까? 추측컨대 국가유공자법은 법 제82조(보훈심사위원회)에 따라 엄격한 보훈심사(공적심사)를 하게 되어있는데, 5ㆍ18유공자법은 그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5·18유공자법에는 보상금 외에도 제2장 교육지원(제11조~제17조), 제3장 취업지원(제19조~제31조), 제4장 의료지원(제33조~제38조), 제5장 대부(제39조~제54조), 제84조(양로지원), 제85조(양육지원), 제87조(수송시설의 이용 지원), 제89조(주택의 우선공급) 등이 있다. “제2장 교육지원”에서는 “제16조 (수업료 등의 면제 등)” “제17조 (학자금의 지급)”이 규정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제3장 취업지원”에서는 “제22조 (고용의무)” “제25조 (채용시험의 가점)” “제28조(차별대우금지)” 등이 규정되어 있다. 채용시험 가점(만점의 5%)을 받는 기준은 유공자 부모가 장애등급 1~11급인 경우인데, 유공자 본인이 부상자라면 채용시험 가점이 만점의 10%에 이른다. 이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채용시 엄청난 혜택이 아닐 수없다.

5ㆍ18유공자법의 적용대상자는 5ㆍ18보상법으로 보상을 받는 사람이다. 국민화합 차원에서 포용과 구휼의 정신으로 보상 대상자를 널널하게 인정했다. 단적으로 5ㆍ18보상법 제4조(5ㆍ18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에는 보상대상자나 장애등급을 정하는 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을 광주광역시장으로 못 박았다. 그동안 민주당 주도로 5ㆍ18보상법은 1990년 제정이후 13차례, 5ㆍ18 유공자법은 제정이후 47차례(문재인정부에서 13차례) 개정되었는데, 개정 기조는 오로지 대상자와 혜택을 늘리는 쪽이었다. 국가유공자를 지정하는 원리와 전혀 다른 원리로 5ㆍ18유공자가 양산되어 왔으니, 가짜 유공자 시비가 일고, 공적심사 서류 공개요구가 들끓는 것이다.

5ㆍ18은 민주화운동의 하나 였기에 5ㆍ18보상법이 만들어지면, 민주화보상법(정식 명칭: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또한 5ㆍ18 관련자를 유공자로 대우 하면, 민주화운동 관련자 역시 유공자로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 즉 민주유공자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어있다.

2023년 12월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민주유공자법은 “의료지원, 양로지원 및 그 밖의 지원을 실시”하는 것으로 5·18유공자법에 비해 그 예우 수준도 낮고, 대상자 선정 절차도 상대적으로 엄격하다. 이는 여론과 양심이라는 철조망 통과를 위해 낮은 포복 자체를 취한 것이나 다름없다. 철조망 통과 후 어떻게 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1980년대 운동권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를 했지만, 지금은 소명은 잊어버렸지만 명예도 부도 권력에, 자식에게 물려줄 특권까지 다 가진 사람이 부지기수다.

6. ‘그 운동권’과 ‘이 운동권’

문정부와 민주당에서 요직(국회의원 등)을 차지했던 운동권 출신 수백 수천명의 패악을 얼기설기 엮어서 운동권을 악마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논법이면 국힘당을 친일매국노, 극우, 신자유주의자, 검찰독재당 등으로 얼마든지 매도할 수 있다. 당연히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운동권 청산을 외치면 자칫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민주화 운동을 응원한 수백 만명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윤석열대통령인수위 백서(2022.6)의 ‘윤석열정부 출범의 의미와 국정비전’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위대한 국민의 성취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루어야 한다…과거 보수정부가 추구한 ‘더 큰 대한민국’, 진보정부가 추구한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이렇듯 ‘민주화’와 ‘더 따뜻한 대한민국’과 ‘진보정부’에 대한 운동권의 기여는 국민 다수가 공인한 사실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헌법전문 수록을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동훈위원장도 공언한 것은 5·18 유혈 항쟁을 한국 민주화운동의 일환 혹은 금자탑(金字塔)으로 보는 다수 국민의 시각을 거스르기 쉽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이 뒤에는 1980년대 거리와 광장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투쟁한 수백만 명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다.

그러므로 ‘민주화’와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추동한 ‘그 운동권’과 지금 청산, 퇴출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이 운동권’이 무엇이 어떻게 왜 다른지를 얘기해야 한다. 특히 사심없는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화 투쟁을 한 운동권 대중·넥타이부대 등 수백만명의 피와 땀과 눈물을 ‘이 운동권’이 어떻게 배신했는지를 폭로해야 한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운동을 해놓고, 이를 슬그머니 민주화운동으로 포장한 임종석식 행태도 살펴봐야 한다. 임종석은 1988년 이후부터는 친북통일운동을 주로 했고(여기에 대한 성찰반성도 없다), 2000년 이후 국회-민주당-문재인 정부의 중책을 맡아서 한 일라고는 대부분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민주주의를 저질로 만들고, 경제•민생과 청년의 미래를 파괴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일은 민주화운동이었다고 강변한다. 임종석은 2005년 7월부터 2017년 5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을 맡아 북한 측 저작권 대리인 역할을 하였다. 임종석은 문재인 정부에서는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2017.5~2019.1)이자,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 외교안보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4.27 정상회담과 9.19 군사합의의 주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서실장 시절 정치보복적 적폐수사, 탈원전, 최저임금 폭등, 공공부문 폭증, 노조에 대한 견제장치(양대 지침) 제거 등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주역이기도 하였다. 의정활동 과정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 대북 교류사업 등에 주력하였다.

임종석은 한동훈위원장의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 주장에 대해, 12.12 군사 쿠데타와 전두환 군사정권, 6월 항쟁과 박종철•이한열 등을 들먹이며, “다른 이의 희생으로 일상을 지키고 평생 검사만” 한 사람은 함부로 “기득권이니 특권이니 하는 낯뜨거운 소리를 올리지 마라”고 반발했다. 임종석 등 운동권 정치인들은 민주화 투쟁을 책이나 영화로 접한 젊은 세대에게는 안도현의 시 '연탄재' 를 읊조리며, 군사정권에 맞서, 뜨거운 희생과 헌신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입 닫으라고 윽박지른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따라서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초심 등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화자(話者), 즉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 또한 임종석이 한 일을 비판하려면,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경제•민생•미래를 살릴 수 있는 새시대 비전과 대안도 필요하다.

한동훈위원장은 운동권의 악덕을 "(민주)당을 숙주 삼아 수십 년간 386이 486, 586, 686 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것을 지적했다. 법무장관 시절(2023년 11월)에는 송영길의 ‘어린 놈’ 발언을 논박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한 분들이 엄혹한 시절 보여준 용기를 깊이 존경하지만, 일부가 수십년 전의 일만 갖고 평생 대대손손 전 국민을 상대로 전관예우를 받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운동권의 기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골 우려 먹듯이 질기게 우려 먹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포장하는 행태는 날카롭게 질타하지 못하였다. 또한 수백 만명이 공유하는 운동권의 정신 내지 초심에 대한 정치권 운동권의 배신도 마찬가지다.

7. 1987년 컨센서스와 1980년대 운동권 컨센서스

1987년 6월항쟁과 6.29 선언–7 ~ 9월 노동자대투쟁-10월 헌법 개정-12월 대선-1988년 2월 노태우 정부 출범-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1노3김의 4당 체제) 형성으로 불가역적인 흐름으로 굳어진 민주화는 어림잡아 최소 2/3 이상의 국민적 합의로 1987년 컨센서스를 만들었다. 일종의 헌법 정신이다. 이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으로 받아안았고, 노태우·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는 소극적 혹은 정치공학적으로 받아 안았다.

반독재 민주화(장기 집권 불용,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축소 등), 국민기본권(자유권과 사회권 등) 상향과 약자보호가 대표적이다. 건국 과정에서 생겨난 억울한 희생자에 대한 신원(伸冤), 북한에 대한 포용 정책(부유한 형의 가난한 아우에 대한 자세), 일본에 대한 한풀이와 미국에 대한 할말 하기 등으로 분출된 구겨진 민족적 자존심 회복도 그 반열에 있는 컨센서스들이다. 이 말석에 반재벌 경제민주화 등이 앉아 있는데 대부분 시대의 모순부조리를 해결은 커녕 악화시키는 것이다.

‘민주화’의 주역인 ‘그 운동권’과 민주화의 결정체인 ‘1987년 컨센서스’ 중에서 유효한 것, 수명이 다한 것, 법고창신할 것을 가려야 한다. 5.18을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보는 것은 2/3 이상의 국민적 합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를 국가유공자의 반열에 올리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노동권 강화도 2/3 이상의 국민적 합의 사항이었으나, 지금의 대·공기업 노조원들이 누리는 권리·이익과 보여주는 행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독재자로 폄하되어 온 이승만·박정희도, (북한이나 다른 많은 개발도상국과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20세기 세계사적 기적을 창조한 위대한 지도자로 재평가되고 있다. 그러니 운동권의 핵심 정체성인 반이승만·박정희 투쟁과 반전두환 투쟁 역시 재평가 될 수밖에 없다. 1987년 컨센서스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초기에는 국민적 합의 사항이었으나,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정세가 바뀌면서 합의 수준은 내려왔다. 결정적으로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화석 운동권들이 정부와 민주당을 장악하면서, 합의에서 현저히 벗어나 버린 것도 많다. 재야·운동권의 가치와 주장에 대해서는,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처럼 한 때는 압도적 다수가 공감했지만, 지금은 압도적 다수가 손사래치는 것도 있다. 물론 그 반대도 있을 것이다.

8. 군정종식과 운동권 청산

운동권 청산은 1987~88년의 군정종식 혹은 군부독재퇴진과 비슷하다. 전세계적으로 2차 대전 종전 후, 한국의 경우 1953년 휴전후, 참전군인들과 (전쟁으로 팽창되고 현대화된) 군부 및 군출신들이 정치를 주도하던 시대가 수십 년간 이어졌다. 이들 군인이나 군출신의 핵심 지향은 반외세나 반공산주의였다. 운동권의 핵심 지향은 반주류•보수•기득권이라고 보아야 한다. 주류의 지향이 권위주의와 반공산주의와 친자유시장경제였기에 운동권은 정반대로 반독재(군위주의)와 친공산주의와 반자본주의로 달려갔던 것이다. 일제 식민지 경험 때문인지, 반일 민족주의는 군정이든 민정이든, 운동권 정치든 공무원 정치든 가리지 않았다.

한국은 1961년 5.16 정변, 1972년 유신 체제, 1980년 군부 권위주의 정부가 길게 이어지면서(1953년 ~1988년까지 35년) 군정 종식•퇴진•청산이 시대정신처럼 되었다. 하지만 수백 만명의 참전 군인들과 제대 군인들은 운동권이 앞장서서 싸운 군부 권위주의 정권(군정)과 일체감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군정 종식이나 군부독재 퇴진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1988년 이후 대략 36년의 운동권 정치와 1953년 이후 대략 36년의 군부출신 주도 정치(군정)은 여러가지로 닮았다. 둘 다 피흘리며 강대한 적과 싸워 이긴 서사가 있다. 그 과정에서 정치사회적 권위를 획득했다. 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동지(네트워크)도 얻었고, 전사(戰士)적 자부심과 조직문화도 형성했다. 종전•휴전후 상당 기간은 전쟁을 해 본 군부나 군인들이 당대 평균적 국민•관료•지식인들 보다 안목도 넓고, 소명도 투철했다. 바로 이런 힘들이 각 나라의 대통령, 수상, 각료, 의원들을 양산하여 정치를 주도하게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운동권이 정치적으로 득세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당연히 운동권 정치가 쇠락, 고립, 퇴조하는 혹은 시키는 과정도 비슷할 것이다.

한국 운동권도 6.25나 월남전 참전 군인 같은 수백 만 학우 대중이 있다. 이들은 최루탄에 눈물 흘리고, 끌려가고 얻어맞는 친구•학우•노동자들에게도 눈물 흘렸다. 그리고 1987•88년에 승리의 감격을 맛보았다. 사실 한국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겪은 탄압이나 고초는 민주화 몸살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많은 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고초는 주관적이기에, 민주화 투쟁에 참여한 운동권 대중 수백 만명이 참전 군인 같은 자의식과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말릴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운동권 정치 청산은 그 의미와 대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군정 종식이 수백 만명의 참전군인과 제대군인들 전체의 청산, 퇴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듯, 운동권 정치 청산이 민주화운동 참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수백 만명을 청산, 퇴출하자는 것으로 비치면 안된다. 오히려 운동권 정치가 수백 만명의 피와 땀과 눈물을 배신하고, 민주화 성과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해야 한다.

9. 결론: 운동권 청산을 넘어 제2중흥시대 도약을 위한 2024년 컨센서스

운동권 정치의 본질은 조선의 사림 정치처럼 몇 백년을 갈 수도 있는 운동권 철학·가치·정책과 부도덕한 행태다. 반드시 폭로해야 할 세가지가 있다.

첫째, 지난 30~40년 동안 운동권과 민주당이 팔아먹던 가치·이념과 비전·정책이 완전히 파탄났다는 것이다. 역사정의(억울한 희생자 신원伸寃), 민주주의 발전(민주화), 윤리도덕 우위, 사회적 약자·서민·민생 중시, 불평등·양극화 해소, 햇볕정책을 통한 한반도 평화번영, 탈원전과 원전해체산업 육성, 신재생에너지 강국, 소득주도성장 정책, 확장 재정과 부자 증세에 입각한 보편적 복지국가 비전, 공장민주화(노조의 작업장 지배), 방송민주화, 교육민주화, 에너지민주화, 경제민주화(재벌개혁), 사법민주화(공수처, 검경 수사권 분리,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등), 정당민주화, 민중문화론과 민족문학론 등 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운동권이 비장(備藏)한 비전·정책(가설)을 거의 다 검증한 것은 문정부와 민주당의 불멸의 업적이자 죄악이다.

둘째, 김대중·노무현 민주당과 문재인·이재명 민주당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훨씬 저열화, 좌익화, 종북화되고, 조선화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1980년대 운동권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셋째, 운동권의 핵심 상징 자산은 사심없는 희생과 헌신, 불굴의 소신과 용기로 풍찬노숙하며 민주화운동을 한 1960·70년대 학번및 1980년대 초반 학번 민주화운동가, 1987년에 거리와 광장에 나온 넥타이 부대, 노동·농민·빈민 권익 운동가들이 만든 것인데, 현재 민주당을 지배하는 운동권은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한동훈위원장은 운동권의 패악으로 특권을 주로 거론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부패·타락·건달 행각·위선·독선·가짜뉴스·거두절미 막말 시비(언론 테러) 등도 심각하다. 가장 큰 패악은 안보·경제·민생·통합·미래세대를 파괴하는 시대착오적 철학과 가치·이념과 정책이다. 이를 폭로하려면 운동권의 철학가치와 정책의 개념과 원리를 잘 아는 사람들과 정책전문가들과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손을 잡아야 한다.

운동권의 타락, 변질, 부패, 거짓, 반칙과 특권은 매섭고도 집요하게 질타해야 하지만, 설사 운동권이 타락하지 않고, 변질·부패하지 않고, 특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운동권의 시대착오적 철학과 가치를 청산하지 않으면 경제·민생·미래 파괴를 막을 수 없다. 사실 운동권의 진짜 문제는 특권이나 부패 보다 시대착오적 가치와 이념이다. 1987년 컨센서스(사회적 합의)를 대체할 2024년 컨센서스, 즉 제2중흥시대를 여는 국가비전의 문제다. 비유하자면 1987년 컨센서스가 한 때는 약효가 있어서 많은 병을 치료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약효가 없어진 약이라면, 2017년 이후 문정부와 민주당을 지배하는 운동권 컨센서스는 거의 독극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두 약 다 퇴출시키고 새 약을 만들어야 한다. 2024년 컨센서스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청산을 너머 새로운 시대의 비전과 전환·도약의 방략이다. 낡은 것은 새로운 것, 즉 대안이 있어야 청산, 퇴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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