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운동권 정치 청산인가?

-운동권 정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김대호 승인 2024.02.04 08:43 의견 0

‘운동권 정치’는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 수준의 역사관·세계관·정의감과 1990년대 운동권 총학생회 수준의 선전선동 기교와 윤리의식으로 정부·국회·정당·언론사 등을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대학생 수준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역사와 현실에 대한 공부와 고민이 부족하여 생각이 덜 여물었다는 얘기다. 격정과 분노는 과잉이나, 사유체계의 정합성은 없고, 신념에 투철한 것도 아니다. 한 때 유행했던 반정부·반문화·반체제 사조인 민족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 서구68혁명 사조, 조선유교적 사유체계와 반독재민주화 열망 등이 뒤죽박죽이다. 1970~80년 대 쏟아진 시대착오적 이념의 폭우들은 대부분 증발했지만, 일부는 지하(사람의 뇌리)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흐르다가, 어떤 계기로 폭발적으로 분출한 것이 운동권 정치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른바 ‘촛불혁명’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문재인 정부 출범과 180석 무소불위 민주당의 탄생이다. 2017년 이후 문정부와 민주당의 노선과 행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당시 여당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과 너무나 다르다. 이를 모르는 것도, 어쩌면 알면서도 김대중·노무현을 사칭하는 것이 운동권 정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과오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하는 좁은 나라에서 탈원전을 고집하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경제 상식에 반하는 정책으로 서민의 삶을 나락에 빠뜨리지도 않았다. 노동·공공 개혁을 추진하면서, 좌파 운동권과 노조로부터 신자유주의 주구(走狗)라는 비난을 숱하게 받았다. 김대중은 반일팔이를 하기는커녕 윤정부도 계승을 천명한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을 통해 한일관계의 신기원을 열었다. 햇볕정책은 최종적으로 파산했지만, 정책을 펼치는 동안 한미공조와 한미동맹은 훼손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운동권 의원들과 좌파 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파병,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였다. 김대중·노무현은 9.19 군사합의 같은 것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김여정 하명법(대북전단금지법) 같은 것도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북한 침략시 유엔의 자동 개입 장치인 유엔사 해체를 노린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니는” 짓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8년 총선이후 여소야대를 몇 번 경험했지만, 지금처럼 야당이 숫자를 믿고 법안 단독 강행 처리를 밥먹듯 하는 것도 운동권 정치의 큰 특징이다.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이라면 설사 국회 다수 의석을 가졌다손치더라도 적어도 검수완박법(검경수사권 조정법),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김건희 특검법 같은 쓰레기법을 단독 강행처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상조사를 핑계로 친운동권 인사 수십 명의 일자리 창출 수법에 불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같은 몰염치한 법도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 하에서 정치 갈등이 유달리 격렬해지고 저열해진 이유는 지난 20~40년 동안 운동권이 팔아먹던 가치와 정책이 완전히 파탄났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고, 권력의 젖과 꿀 맛은 잊지 못하니, 남은 것은 황당한 괴담으로 상대를 악마화하고, 국회 폭력을 행사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 아닐까?


운동권 정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잔재인 계급투쟁적·제로섬적 세계관으로 노동과 자본, 가계와 기업, 부자와 빈자 간의 관계를 피착취와 착취의 관계로 보니, 소모적 대립과 갈등을 초래한다. 한미관계와 한일관계 등을 상호의존적 협력적관계가 아니라 제국주의-식민지 관계로 보니, 외교안보의 근간을 흔든다.


운동권 정치는 대한민국 역사를 친일청산 실패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보니, 북한에 당당하지 못하고, 개화독립과 건국산업화 영웅들을 무시하거나 증오한다. 근대화의 산물인 제도와 문물을 일제 잔재라며 쓸데없이 배척하고 파괴한다. 운동권 정치는 역사와 현실을 선악(善惡), 정사(正邪), 항일-친일, 민주-독재, 평화-전쟁, 선한 약자·피해자-악한 강자·가해자 등으로 재단하고 후자를 청산·척결·궤멸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하니 정치는 전쟁이 되고, 운동권은 반칙과 특권에 둔감해지고, 거짓과 조작과 내로남불을 능력으로 안다.


이 모든 유치한 역사관·세계관·정의감이 정부·국회·정당·언론사를 지배하니 경제는 질식하고, 민생은 피폐해지고, 사회적 약자와 청년의 기회·희망은 속절없이 사라지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가 바로 N포 세대와 세계 최악의 저출산이다. 1987년 이후 밀물처럼 밀어닥쳐 지금 만조기가 된 운동권 정치 청산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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