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1987년 컨센서스와 정당 민주화다

-자유시장연구원 창립 4주년 기념 토론회 토론문-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24.07.11 13:29 | 최종 수정 2024.07.11 13:41 의견 0

1.개화기, 건국기에 이은 세번째 흥망의 갈림길

이호선•조성환의 발제문을 보면 확실히 지금은 ‘시대의 황혼’이 분명한 것 같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개를 펴야 할 시간이다. 미네르바의 어깨 위에 앉아있는 부엉이는 지혜와 철학의 상징으로, 역사•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찰을 의미한다. 황혼은 한 시대를 객관화 상대화시키기 용이한 대전환기로, 한 시대를 풍미한 생각(세계관, 역사관, 가치관)과 이를 토대로 한 가치·이념·법·제도·정책·리더십의 모순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시기다.

한반도 150년 역사에서 이런 시기는 3번 있었다. 한번은 1876년 개항 이후부터 조선의 운명이 사실상 결정된 1905년 러일 전쟁까지 대략 30년(개화기)이고, 또 한번은 건국 시기(1945 ~1953년)이고, 세번째가 바로 지금이다. 한반도 근대화 세력은 첫 번째 도전에서는 응전에 실패하여, 한반도는 청일·러일 전쟁터로 되고, 끝내 식민지로 전락했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대한민국은 응전에 성공하여 20세기 세계사적 기적을 창조한 나라가 되었다. 지금 맞딱뜨린 세 번째 도전에서 응전에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전쟁이나 자연재앙을 겪지 않고도 자멸하는 참담한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개화기와 건국기는 가치와 이념(방향)이 전혀 다른 정치세력이 생사를 걸고 싸웠다. 지는 쪽이 역적이 되는 싸움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개화파나 대한민국파는 이겨도 상대를 쓸어버리려고 하지 않았으나, 위정척사파나 인민공화국파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 전두환이 주도한 산업화 시기에도 정치갈등은 있었지만 최소한 지는 쪽이 역적이 되는 싸움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자유·보수·우파는 이겼다고 해서 민주·진보·좌파를 역적 취급하지 않지만, 민주·진보·좌파는 그렇지 않다. 제2촛불혁명과 더 철저한 적폐청산 소동이 반복될 것이다. 단적으로지금 이재명의 민주당이 제출하는 법안(공영방송 영구장악법 등)과 탄핵 요구(방통위원장, 이재명 수사 검사 등) 등이 이를 예고한다. 이들은 민주공화국의 기본질서를 뿌리채 뽑으려 들 것이다. 그 끝은 우고차베스와 그 후예들이 사실상 영구 집권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보면 알 수 있다. 요컨대 지금이 개화기, 건국기와 같은 건곤일척의 시기가 된 것은 전적으로 통상 운동권으로 부리는 민주·진보·좌파의 시각과 멘탈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통상 민주화 시대로 부르는 한 시대의 황혼, 그 이상이다. 황혼을 한참 지나 짙은 어둠이 깔리고 있다. 하지만 정치와 지성의 지독한 혼미로 인해, 날아 올라야 할 부엉이, 즉 시대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찰이 졸고 있다. 지난 30~40년을 풍미한 사조, 이른바 1987년 컨센서스(consensus)가 초래한 모순은 극명하지만, 정치와 지식사회는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것은 죽어가지만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The Old is Dying and the New cannot Be Born) 그람시적 위기, 즉 대혼돈기라고 할 수있다.

에릭제무르는 『프랑스의 자살』에서, 68혁명 사조와 이슬람 이민자의 증가와 유럽연합으로의 국가주권 양도가 프랑스를 자살로 몰아간다고 주장했다. 나는 에릭제무르가 제시한 진단과 대안에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십 년을 풍미한 어떤 통념, 제도, 리더십과 우연적 사건과 한때 유럽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국가였던 프랑스의 총체적 쇠락 현상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려는 그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사실 나는 프랑스 보다 대한민국의 자살 행위가 훨씬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이호선•조성환 두 발제자는 물론이고, 오정근 원장도 동의할 것이다.

당연히 한국에 비판 지성이 살아 있다면 『프랑스의 자살』 보다 『대한민국의 자살』이 먼저 나와야 할 것이다. 에릭제무르는 프랑스가 자살 한다고 난리지만, 프랑스는 한국처럼 가치와 이념이 전혀 다른 정치세력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것 같지가 않다. 경쟁 상대를 청산 척결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부럽다.


2.1987년 컨센서스

헌법과 법률, 그리고 정치지형이라는 구조=육체가 1987년 체제라면, 영혼=지배적인 통념이 바로 1987년 컨센서스다. 1987년 체제가 뼈, 근육, 장기, 피부라면 1987년 컨센서스는 유전자 같은 존재다. 두 발제자가 정리하고 성토한 수많은 문제의 뿌리에는 1987년 컨센서스가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이 2030년대, 2040년대에도 여전히 살만한 나라가 되기위해서는 수명이 다한 1987년 컨센서스라는 영혼과 1987년 체제라는 육체를 재건축해야 한다.

한 시대의 주류·지배적인 컨센서스는 강력한 자기장과 같아서, 그 컨센서스에 반대 투쟁을 했던 정치세력이 집권해도, 주류·지배적인 컨센서스를 정면으로 거스르지 못한다. 1987년 헌법이 1987년 체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1987년 컨센서스가 1987년 헌법과 1987년 체제를 만들었다.

헌법만 바꾸면 7공화국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과 조국 류의 썩은 정신으로 헌법을 바꾸기도 어렵겠지만, 설사 바꾼다 하더라도 수명을 다한 1987년 체제를 더 광포하게 만들어,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뿐이다.

1987년 체제의 핵심 특성은 헌법 조문이 아니라, 지배적인 정신문화와 가치·이념·정서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지형(정치세력 간 역관계 등)에 있다. 1987년 이후 2023년까지 36년은 민주화의 이름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발전동력을 소진하고, 발전체제를 해체하는 과정이었다. 아니 대한민국이 자살하는 과정이었다. 1987년 컨센서스는 애초부터 민주공화국의 작동‧발전 조건, 즉 세계와 더불어 공존공영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번영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통합 가능하고, 환경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가치‧이념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한강의 기적’을 창조한 기존 체제에 대한 부정, 반대, 파괴로 일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7년 컨센서스의 패악은 크게 4가지다. 첫째, 민주화의 이름으로 국가‧시장‧사회 전반에 대한 조정‧통제 기능을 허문 것이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특정 조직에서 힘=의사결정권의 아래로, 다수로 이전 등)가 완벽히 비껴간 곳이 정당이다. 여기서 헤아릴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둘째, 기본권 상향(OECD평균 수준 도달)과 약자보호의 이름으로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 혜택과 부담, 이익과 위험 등 가치 간 조화와 균형을 잡아주던 제도적‧이념적‧문화적 장치를 허문 것이다. 기본권 상향, 억강부약, 공공성 강화 등의 미명 하에 이해 상충 집단 간의 상호 선택권 및 거부권(무기)의 대등성을 훼손한 것이다. 셋째, 역사 정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준거인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허문 것이다. 이른바 ‘해전사’, 아니 ‘조선력사’식 역사 인식, 즉 적폐 사관을 진보좌파가 적극 수용하고, 보수우파는 역사(진실과 해석) 전쟁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넷째, 우물 안 개구리식 국제인식에 따라 동맹보다 민족의 이름 혹은 국가의 자주‧자존‧실리(안미경중)의 이름으로 대외 관계를 허문 것이다. 역사정의와 탈미외교 컨센서스는 급성질환, 즉 외인(外因)에 의한 국가 사고사(事故死)나 국가의 내파를 초래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해결이 될 문제다. 그런데 반독재 민주화와 권리‧이익‧혜택의 쟁취와 상향 컨센서스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다.

운동권과 이재명이 지배하는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민주당의 최악의 열화 버전이다. 단적으로 간판 상품인 민주화도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은 반독재 였으나, 운동권•이재명의 민주당은 반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명박근혜•윤석열 일뿐이다.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은 정당의 민주화와 공당화를 위한 노력이라도 했으나, 운동권•이재명의 민주당은 철저한 독재화와 사당화를 추구하였다. 지금의 민주당의 영혼은 제왕적 지배자인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방어하고, 대통령 탄핵을 통해 권력을 잡는 것이 최고의 가치다.

극도로 열화된 민주당은 동학혁명(반외세·반봉건) 서사, 도덕 서사(항일·양심 대 친일·기회주의), 민주화투쟁 서사, 노동·민중투쟁 서사, 한반도평화 서사, 촛불시민혁명 서사 등을 배경으로 민주당은 비기득권·호남·약자·소외자·노동·민중·평화 편이고, 국힘당은 기득권·강남·강자·자본 편이라는 구도를 만들었다. 보수우파 정당을 북한과 좌파가 일방적으로 붙인 딱지인 친일·반공·냉전·수구·기득권과 성장지상주의·시장만능주의의 화신으로 이해하면 보수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진보·좌파적 가치를 전향적으로 수용한 19세기 영미 보수를 사표(師表)로 삼고, 김구·김대중·5.18을 숭모하고, 건국·산업화의 그늘을 크게 보면서, 이를 따뜻한 보수나 개혁 보수로 포장해야 한다. 이는 실제 국힘당 일각에서 만만치않은 세를 형성하고 있다.

3.위기의 근원은 본말전도 정치

조선왕조-식민통치-대한민국의 건국•호국•산업화와 민주화(1987년 컨센서스)를 관통하는 불변의 가치 내지 습속은 국가•권력에 대한 과잉 의존=기대=개입과 집중이다. 이를 지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아직도 미약하다. 사실 7공화국은 바로 이런 질긴 습속을 지양하자는 컨센서스가 두텁게 형성되어야 비로소 논의할 수 있다. 요컨대 지금 밀어닥치는 거의 모든 위기의 근원은 본말이 전도된 정치다. 정치(이념, 행위, 사람 등)가 영혼이나 소프트웨어라면, 육체나 하드웨어는 너무 많은 곳에 손을 뻗쳐 쥐락펴락하는 정부(법령, 예산, 조직, 공권력)다. 이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바로 철저히 독재화 과도화된 정당이다. 포퓰리즘은 정당을 통해서 증폭된다.

위대한 영혼이 건장한 육체를 지배할 때는 영웅이 되지만, 낡고 썩은 영혼이 육체를 몸을 지배할 때 악당이 되듯이, 위대한 정치가 정부를 지배하면, 위대한 역사가 창조되고, 낡고 썩은 정치가 정부를 지배하면 망국으로 간다.

한국에서 국가는 외적의 침략을 막아 내는 존재라는 개념은 흐릿한데 반해, 윤리=예(禮)와 형벌(刑罰)로 백성이나 사회를 계도하는 존재라는 개념이 강하다. 대한민국 국가권력은 기본적으로 과잉이고, 집중되어 있고, 전제적(專制的)이다. 외적 견제균형 장치와 내적 자율제어 장치(직업윤리 등)가 다 부실하다. 국가권력의 과잉은 정치·정부 권력이 좌지우지 쥐락펴락하는 영역이 광대무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과잉은 공적 강제력의 미치는 영역이 과잉이며 시장, 사회(커뮤니티), 개인의 자유, 자치, 자율책임 영역의 과소를 의미한다. 이 뒤에는 국가권력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가 뿌리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권력의 집중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민주공화국은 거의 행정부는 군주정, 입법부는 민주정, 사법부는 귀족정의 원리로 운영되면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공공선(국리민복 증진)을 구현하는 존재인만큼, 권력의 집중은 필수불가결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권력 집중 현상은 확연하다. 국민과 공무원의 눈으로 보면 행정부와 대통령에게 권력(인사권, 감사권 등)이 집중되어 있고, 법관의 눈으로 보면 대법원장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당원과 지지층의 눈으로 보면 당대표에게 권력(공천권 등)이 집중되어 있다. 지방의회의 눈으로 보면 국회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지방주민의 눈으로 보면 지자체장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기업인의 눈으로 보면 국가(입법 행정 사법 공공기관)에 시장과 기업및 기업인을 잘 되게 할 수있는 수단은 없어도 못되게 할 수있는 수단이 너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규제와 형벌조항이다. 가장 최근에 추가된 것은 2022년 1월 1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중대재해의 대부분은 과실에 의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고의 중범죄 엄벌을 목적으로 하는 하한이 있는 형벌을 가한다는 것은 여간 비상식이 아니다.

제왕적, 전제적 국가권력은 권력의 과잉 및 집중과 견제와 균형 장치의 부실 3개가 결합되어야 탄생한다. 한국에서는 대통령만 제왕적인 것이 아니다. 국가 그 자체가 제왕적이다. 대통령, 행정부(직업공무원), 입법부(국회의원), 사법부(법관), 지자체(단체장), 공공기관 등도 다 크고 작은 제왕적 권력을 갖고 있다. 제왕적 권력은 아래로부터의 종적 통제도, 권력 기관간 횡적 견제와 균형도, 내면적 통제(종교나 직업윤리에 의한 자율적 통제)도 잘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출현한다. 이재명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자행한 권력형 범죄는 그 기념비다.사생결단의 권력투쟁도, 정치의 본말전도도, 소모적인 정치경쟁과 갈등도, 강력한 국가주의와 국가를 통한 지대추구도 기본적으로 제왕적〮전제적 국가권력에서 연유한다. 국가권력 과잉이 해소되지 않으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권력을 아무리 축소 분산하고, 선거제도와 정당체제를 어떻게 개혁해도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개혁의 대전제는 전제적 권력 그 자체를 축소하고 철폐하는 것이다. 수많은 정부기관(대통령, 국회, 행정부, 사법부, 지자체 등)과 공무원들이 휘두르는 자의적 권력 그 자체를 축소하고 종적, 횡적으로 견제와 균형 하에 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말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지자체 등에서 하는 많은 일(공공서비스 생산·공급)은 소비자 선택권과 심판권이 잘 작동하는 시장에 의해, 주민 참여·숙의·통제가 원활한 지방(자치)에 의해, 공공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하는 해당 분야 전문가에 의해 수행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더 많은 것이 개인의 자율책임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지자체 등의 수장이 자신의 권력을 무조건 내려놓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 지방, 전문가, 개인 등이 자치적·자율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능력의 성장·발전을 촉진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4. 1987년 민주화가 완벽히 비껴간 정당

1987년 이후 밀물처럼 밀려온 민주화가 거의 완벽히 비껴 간 곳이 정당이다. 헌법 제8조 ②항에서 “그 목적ㆍ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되어 있는 정당이다. 이는 1987년 민주화의 주역이 제도권 정당을 은근히 무시한 운동권과 제왕적 당총재인 김영삼·김대중과 역시 정당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권위주의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민주화 담론은 정당의 선진화·정상화(민주공화적 운영)의 중요성을 간과하였다. 정당은 김영삼·김대중의 반박정희·전두환 투쟁의 도구라는 의미를 부여 받았기에, 국가는 지원은 하되 당 운영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되었다. 그런데 정당은 현대 국가의 왕이다. 한국은 양당 구도를 강제하는 선거제도와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 및 정당구조로 인해, 민주당과 국힘당이라는 두 왕에 의한 중앙·지방 정치 독점이 공고하다.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은 부실할 수밖에 없는 두 왕이 돌아가면서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7년 이전에는 사실상 대통령과 행정부가 왕 이었고, 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 국회는 통법부 수준이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이 조건은 상전벽해가 되었지만 정당은 여전히 부실하다. 이념, 정책, 문화, 의사결정 구조, 리더십 창출 구조, 차세대 리더십 교육훈련 구조 등 뭐 하나 발전한 곳이 없다. 서구에서 30대 총리나 대통령이 나오는 것은 좋은 정당을 딛고 서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집권이 아니라 정당의 집권이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직자가 통할하는 권력은 너무나 비대하고, 견제 감시 장치는 부실하고, 선출직 공직자를 추천하는 정당은 양당·양강 정치독과점 체제이고, 당원의 의무는 느슨하게 하고(월 1~2천 원 당비 납부와 투표), 권한과 권리를 강화하면(핵심 당직과 공직후보자 선거권〮피선거권 부여 등), 오로지 공직 후보를 노린 수많은 이익·이념·종교 집단 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 몰려들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조직된 양대 대중 집단인 노조(진보)나 교회(보수)가 정당과 선거에 과도하게 개입하려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양대 정당의 이념이나 조직이 너무나 허약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앙선관위가 발간한 <2022년도 정당의 활동개황>에 따르면 당원 수는 민주당 485만명, 국민의힘 430만명이고, 그 중 당비 납부자는 민주당 140만 3천명, 국민의힘 89만 7천명이다. 당비 수입 총액은 민주당 525억 9천만원(1인평균 월 3,100원), 국민의힘 290억 3천만원(1인 평균 월 2,700원)이다. 당원 숫자는 인도 인민당(1억 8천만명), 중국 공산당(9500만명), 베트남 공산당(500여 만명)에 이어 세계 4위(민주당)와 5위(국힘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경우는 대선 후보 경선과 당 대표 경선 때 정도이다. 국회의원과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공천 과정에서는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거나, 국회의원=당협위원장=공천권자의 담합에 의한 전횡을 허용하기에 당원들은 그야말로 들러리요 핫바지다. 재정과 의정활동 경비 역시 당비에 별로 의존하지 않기에 당원의 의사와 요구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다.

그나마 당대표·최고위원 선거에서는 당심이 반영되는 제도적 장치가 있고, 권리당원(민주당)과 책임당원(국힘당) 당비를 각각 월 1천원으로 낮게 책정하자, 편협한 가치나 이념으로 뭉친 정치 훌리건(폭력을 서슴지 않는 극렬 팬)들이 당에 대거 난입하여(?) 전당대회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군단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탄생한 최악의 정치 괴물이 이재명과 개딸들이다. 이들은 공화주의 정신과 시민적 덕성과 직업(정치)윤리 등을 모른다. 이 괴물들은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해결되거나 완화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가치의 균형(우선순위)및 이익집단 간 힘의 균형을 잡아줄 대통령 마저 눈과 귀가 막히고, 손과 발이 잘리면 문제가 오히려 더 악화된다.

정당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정당으로 하여금 서사와 정체성, 그리고 가치와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는 결사로서, 국정 노하우를 축적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국가비전과 정책을 정련하여, 정치 리더십을 선발, 검증, 교육·훈련하는 기능(본령)에 충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제(대통령 중심 권력구조)에서 정당의 강화가 쉽지 않다. 집권 주체는 사실상 개인과 대선 캠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 리 없다. 관건 내지 킹핀은 당원의 자격, 권리, 의무(교육 이수, 참여 등)와 선거(리더십 창출) 제도가 아닐까 한다. 작지만 효과가 큰 개혁 방안 중의 하나가 정당의 교육비는 국고에서 보조하되, 정당으로 하여금 지지자 및 국민의 요구, 불만에 둔감하게 만들고 당권파가 당원과 정당민주주의를 무시하게 만드는 국고보조금 제도는 철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비를 올릴 수밖에 없고, 당원도 지금 보다 훨씬 소수 정예화 될 것이다. 그러면 당원 주권주의와 상향식 공천 등 당내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당원의 입김이 강해지면, 국회의원과 당대표 후보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특권 내려놓기를 공언할 것이다. 더 나아가 양대 정당 특권과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경쟁을 할 수도 있다.

국힘당과 보수우파 개혁의 초석은 서사와 정체성의 정립이다. 1876년 개항 이후 150년간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한반도 근대화·산업화·민주화를 주도한 위대한 정치 세력이자, 이승만·박정희가 보여주었듯이 필요하면 급진적·혁명적 개혁도 불사하는 친(親)서구문명,친발전·친기업·친성장·친실용·친청년·친성밖서민(진짜 서민) 세력이라는 정체성을 전혀 인식하지도, 정립하지도 못하면 당의 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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