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당정치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사회디자인연구소 승인 2019.09.10 14:12 | 최종 수정 2019.09.10 14:13 의견 0

이 글은 9월 9일(월)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유와 희망의 나라 세우기’ 추진대회장에서 주동식 제3의길  발행인이 발표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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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적을 만든 우파, 그러나 패배한 우파

문재인과 조국 사태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파와 반문진영 내부의 문제는 없는지, 그 문제도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발표는 그런 문제의식의 표현입니다. 일단 우파 진영의 문제라는 점에서 바라봤지만 크게 봐서는 대한민국 정당정치 전반의 근본 문제를 짚은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우파는 세계사적으로 드문 성공 스토리를 써왔습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그것입니다. 그 기적을 만들어낸 주역이 우파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파는 대한민국의 주류 자리에서 완전히 밀려났습니다. 전면적이고 철저한 패배입니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95% 이상 좌파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언론과 학계, 문화계, 연예계 그리고 지난해에는 지방권력이 거의 좌파에 의해 장악됐습니다.

경제계는 적폐의 핵심으로 몰려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나마 우파가 약간이나마 남아 숨을 쉬는 것이 의회권력인데, 내년 총선의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은 탄핵의 결과입니다. 즉, 정치적인 패배입니다. 우파는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패배했기 때문에 다른 모든 곳에서도 패배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우파는 경제 등 다른 건 다 하면서 정치는 전혀 하지 않았고, 좌파는 다른 건 하나도 안하고 정치만 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우파는 정치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우파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청와대의 국회 파견 업무에 가까웠습니다. 그건 행정의 일환일 수는 있어도 정치는 아닙니다. 정치는 대중 속에서 정치적 어젠다로 대중을 설득하고, 조직하고, 동원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우파 정치는 그래본 적이 없습니다. 상명하복, 군대식 행정에 가까웠습니다.

국회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는 전직 공무원이 보수정당과 좌파 정당의 분위기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우파 정치인들은 싸가지가 없는 놈들이 많고, 좌파 정치인들은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우파 정치인들은 공무원들이 사안을 설명해도 듣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요구만 권위적으로 내세운다고 하더군요. 이 공무원의 말이 아니더라도, 저게 우파 정치인 전반의 이미지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이 바로 정치의 부재, 상명하복식 행정의 관점에서만 정치를 바라본 데 있다고 봅니다.

2. 정치의 본령은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

정치의 기본은 소통과 결정이다. 

우파 정치의 이런 행태는 대중적 지지의 상실과 이미지 추락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정치 리더십 창출의 실패입니다.

정치는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입니다. 현대 정치의 리더십은 결코 강제로 만들 수 없습니다. 정치적 어젠다와 콘텐츠로 즉 메시지로 대중을 설득하고, 조직하고, 동원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정치 리더십의 본질에 정치 콘텐츠와 메시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 리더십을 다른 말로 ‘정치 콘텐츠의 인격화’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정치는 말로 하는 전쟁입니다.

우파 정당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정치 콘텐츠가 유통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정치 이권이 유통됩니다. 정치 콘텐츠가 유통되지 않으니 정상적으로 리더십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정당들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리더십을 만들어 왔을까요?

바로 외부 수혈입니다. 정당 안에서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하니 외부 즉 정치권 밖에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을 영입하는 것입니다. 안철수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국회의원 중에서 변호사와 교수 출신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외부에서 수혈된 분들은 정상적인 정치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정치 콘텐츠와 메시지로 승부를 걸어서 리더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운명과도 직결된 중대 이슈입니다.

정치 리더십이란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창조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 전반을 통합하는 능력입니다. 그런 메시지를 통해서 형성된 리더십이 없으니 우리 사회는 도그마와 선입견, 포퓰리즘 선동만이 대중을 움직입니다. 이런 싸움에서는 좌파가 압도적인 우위입니다. 우파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파가 이기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치 리더십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 리더십을 만들려면 대한민국 정당정치가 정상화되어야 합니다. 정당정치가 정상화되려면 정치 이권이 아닌 정치 콘텐츠가 유통되어야 합니다. 정치 콘텐츠가 유통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정치 콘텐츠와 메시지에 승부 걸어야

정치 콘텐츠가 정당의 의사결정 즉 공천과 지도부 선정에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원들에게 공천과 지도부 선정의 결정권을 주어야 합니다. 당원들에게 결정권을 주어야 이들에게 메시지 즉 콘텐츠가 제시되고, 그 콘텐츠를 중심으로 토론이 이루어집니다. 콘텐츠의 유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국가 개조의 어젠다가 제시되고, 그 실현을 위한 실천과 조직이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새로운 토론이 이어집니다. 저는 이게 정당정치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태계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우파 정당에는 이런 생태계가 전혀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생태계를 만드는 대전제가 당원의 존재입니다. 당원이 있어야 그들을 상대로 콘텐츠도 유통하고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 정당에는 당원이 없습니다.

정당의 당원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동의해야 하고 둘째, 그 정당을 움직이는 규칙에 동의해야 합니다. 이념적 정체성은 교육, 정당을 움직이는 규칙은 당비 납부와 단일 당적 유지가 핵심입니다.

이념적 정체성과 당비 납부, 단일 당적 유지 문제는 상호 연관돼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 이슈는 바로 당비 납부 문제입니다. 일정액 이상의 당비를 내는 것으로 이념적 충성도와 단일 당적 문제가 명쾌하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당에는 이런 검증 장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진짜 당원도 없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당원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유통할 수도 없고, 토론도 불가능하며 당연히 리더십 창출도 그냥 구두선에 그치게 됩니다.

우리나라 당원들은 왜 당비를 내지 않을까요?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이 되어서? 그렇지 않습니다. 1만원이라면 요즘 점심 한 끼 값입니다. 어지간한 단체 회비도 월 1만원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당은 월 1천원 당비가 기본이고, 그나마도 내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당원 중에는 아는 정치인이 입당원서 내밀어서 적선하는 셈치고 서류 작성해준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중당적 심지어 삼중당적도 있습니다. 자신이 당원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정당의 당원들이 당비를 내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이 당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특정 정치인에 의해 고용된 일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라면 자신이 돈을 내서 당을 운영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고용된 일꾼이라면 반대로 돈을 받고 활동해야 합니다. 그러니 당비를 내야 한다는 말에 많은 당원들이 거의 도덕적인 분노를 느끼는 것입니다.

“아니, 내 돈 내고 남의 일을 해줘야 해?” 이런 반문에 문제의 본질이 숨어 있습니다. 당원이 당의 주인 되지 못하고 국회의원 등 유력 정치인들의 머슴인 상태, 이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우리나라 정당정치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누가 그걸 모르나?”고 반문합니다. 알면서 왜 실천하지 않습니까? 정치는 그렇게 이상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상적으로 정치하지 않고 원칙도 없이 그때그때 대충 땜질하는 식으로 정치를 해서 그 결과가 아름답습니까? 이렇게 완전히 망하고도 옛날 방식 그대로 정치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까?

4. ‘당원의 발견’이 우파정치의 블루오션

당원의 발견. 이것이 정당정치 정상화의 출발입니다. 이 문제는 우파 정치의 최대 약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좌파 헤게모니를 극복할 수 있는 비밀의 키워드 또는 블루오션이기도 합니다.

정당정치가 정상적이지 않기는 좌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좌파는 우파에 비해 대중 접촉면이 넓었고, 그래서 비교적 선순환적인 리더십 창출이 가능했지만, 그게 정상적인 정당정치는 아닙니다. 우파의 정당정치는 군대식 상명하복이었지만, 좌파의 정당정치는 시민단체의 음모가들이 제도권 정당에 파견되어 일종의 분파(fraction)를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제도권 정당 안에 일종의 프락치를 심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숙주에 침투해서 숙주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는, 연가시 같은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정치는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절차상의 왜곡을 낳게 됩니다. 선거 때마다 공천절차가 바뀌고, 모바일 투표 비중을 늘리고,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나 시민단체에 투표권을 주는 것도 이런 절차적 왜곡의 사례입니다. 모두 진짜 당원이 존재하지 않는 데에서 기인하는 현상입니다.

우파는 앞으로 좌파보다 더 탁월한 정치를 하지 않으면 결코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 핵심은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좌파는 본질적으로 정당정치에 적대적입니다. 인민민주주의를 본질로 하는 광장정치가 그들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광장정치는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대의정치와 공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우파에게 승산이 있고, 우파의 블루오션입니다.

좌우파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의 명운과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정치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국가는 나아갈 방향을 잃고 방황하다가 침몰합니다. 한국이 현재 겪는 모든 진통과 고민의 핵심에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라는 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진로를 바로잡을 영웅,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립니다. 그 초인은 제대로 자격을 갖춘 당원과 그 안에서 열린 토론을 통해 콘텐츠와 어젠다, 메시지로 승부를 보는 프로세스 안에서만 등장할 수 있습니다.

요즘 정치권에서 물갈이 얘기도 많이 나옵니다. 청년들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역대 국회 임기가 바뀔 때마다 의원 교체율이 48%에 이른다고 합니다. 전세계에서 이렇게 의원이 많이 바뀌는 경우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항상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나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밀실에서 몇몇 실력자들이 결정하는 공천으로 나오는 청년들은 청년이 아닙니다. 젊은 피 젊은 피 하는데, 옛날 늙은 권력자들이 청춘을 되찾기 위해 청년들의 피를 수혈했다는 엽기적인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인물보다 시스템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현실론을 들어 혁신을 반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현실론은 이것 때문에 저것도 안되고, 저것이 안되니 그것도 안된다는 겁니다. 결국 원위치, 현상으로 회귀합니다. 바뀌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현실론이 놓치는 중요한 지점은 우리의 생각과 실천 자체가 현실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바뀌면 현실이 바뀝니다. 우리가 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앞서 발표하신 김성은 교수님도 ‘Back to the Basic'이야기를 하셨지만,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도 거의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내용입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원론은 어떤 새로운 논의보다 더 혁신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정치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바로 변화의 출발점, 한국 정당정치를 바로잡아 정치 리더십을 창출하시는 주역이 되어주시기를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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