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김종인의 “영원한 권력은 없다”

-문제는 보수와 미래통합당의 혼이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승인 2020.06.22 16:29 | 최종 수정 2020.06.25 10:45 의견 0

이 책은 미래통합당의 향후 노선과 1987체제의 미래(개편 방향)를 가늠하는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2020년 3월 25일자로 출간된, 김종인이 쓴 사실상 3번째 책이다.

김종인은 1980년에 ‘재정학’(경문사), 2012년에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동화출판사)를 냈고, 2012년 책을 약간 수정 증보하여 2017년에 ‘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박영사)를 냈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의 부제는 ‘대통령들의 지략가 김종인 회고록’인데, 그의 강점과 약점, 편향과 한계, 성격 내지 인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책은 술술 읽힌다.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여 읽기는 편하지만, 아무래도 깊이가 좀 얕다. 수많은 정치적, 정책적 에피소드가 있어서 소설책 이상으로 재밌다. 보건사회부장관(1989.7~1990.3) 시절 수돗물 파동과 라면파동(공업용 쇠기름)에 대한 대처 과정의 해프닝, 한소수교와 한중수교 비사, 1990년 미-이라크 전쟁(쿠웨이트 해방 전쟁) 파병 비사, 핵개발 비화(296쪽)를 특히 재밌게 읽었다. 또한 노태우의 6.29 선언의 뒷 배경도 흥미로웠다. 당시 김종인은 민정당 산하 사회개발연구소 책임자였는데, 직선제가 되어도, 양자 대결이든 3자 대결이든 노태우가 다 이긴다는 조사 결과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173쪽)

 

이 책은 2019년 가을쯤 일필휘지로 쓴 책처럼 느껴진다. 구중심처로 알려진 청와대의 정치적, 정책 결정 과정과 김재익 등 정권의 핵심 브레인들과 논쟁을 소개하기에 정치인이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새기고 싶고, 나누고 싶은 얘기들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깊게 새길 얘기도 많다. 김종인은 국회의원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집이나 자존심이 센 고위관료와 공무원을 상대하려면 “의원 개개인이 (자기)확신과 능력이 없으면 그들이 전해주는 자료에만 계속 의존하게 되고 거수기 신세가 되면서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40쪽) 

 

“부작용이 큰가, 혜택이 큰가를 가늠하는 일이 정책가의 역할”이며 “예상되는 부작용의 반경 안에 있으면 꾸준히 그것을 밀고나가는 배짱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최근의 여러 정책 사례를 보면 정직도 없고 배짱도 없다. 무지와 무모를 배짱으로 착각하는 경향 또한 심각하다”(280~281쪽)

 

김종인은 한국의 정책사를 길게 보고  있기에 반복되는 실패 원리를 말한다. 1962년 2차 화폐개혁과 전두환 정부가 시도하다가 만 금융실명제, 1983년 예산동결과 2017년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발상과 논리가 비슷하다고 일갈한다. 1962년 2차 화폐개혁(10환을 1원으로 변경)의 의도는 자유당 관료와 중국 화교들의 검은 자금이나 숨겨놓은 돈 끌어내기 위함( 44쪽)이었는데, 금융실명제의 의도 역시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문정부 최저임금과 실업 정책과 1983년 예산동결에 대해서도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단순무식이다. 

 

서민경제가 어렵다고 하니 “그럼 최저임금을 올리면 되겠네”라고 반응하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실업률이 높아진다고 하니 “그럼 실업급여를 올려주면 되겠네”라고 반응하는 것과 “예산을 동결하면 물가가 잡힌다”는 전두환 식 단순함과 ‘임금을 올리면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지금 대통령의 단순함은 논리 구조에 있어서 다를 것이 무엇인가? 전자가 오히려 논리성에 있어서는 근거가 있어 보인다(164쪽) 

 

노태우정부 이후 사실상 정치/정책 일선에서 물러난 김종인을 20년 만에 불러들여 잇따라 배신을 때린 박근혜/새누리당과 문재인/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당연히 매우 비판적이다. “18대 대선과 박근혜”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24절과 25절인데, 절 제목이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332쪽) “하루아침에 등장한 뚱딴지 창조경제”(346쪽)이다. “20대 총선과 민주당”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25절과 26절인데 절 제목은 “망한다던 정당을 제1당으로”  “근본을 바꾸지 못한 역사적 책임”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전두환은 인위적으로 어떤 수치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적은 있지만 통계 자체를 조작하거나 왜곡하려 시도한 적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정부는 전두환 보다 수준이 낮고 질이 더 나쁘다”(164쪽)
“정말로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정부는 내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정부다. 거짓과 왜곡으로 똘똘뭉쳐 국민을 우습게 알고 기만하는 정부다”(167쪽)
“지금 정부는 19대 대선 결과를 완전히 잘못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천하를 손에 넣은 것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는 중이다”(384쪽)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의 용인술 얘기도 재밌다. 
“(박정희 대통령은 교수를 불신하여) 교수 출신에게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는 자리를 맡긴 사례가 없다… (나중에 김종인 자신도) 정치 참여를 하면서 ‘저런 사람은 절대로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반면교사의 사례도 모두 그런 교수들”이었다.(45쪽)

(전두환 대통령은) “새로운 사실을 들으면 그것을 도식적으로 간단히 이해하는 방면에서 탁월했다(117쪽)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을 한두명씩 옆에 두려는 기질이 있었다…운동권 교수라는 얘기를 듣는 자신(김종인)을 옆에 두려는 모습에 대해…자신의 배짱과 아량, 혹은 융통성을 보여주려는 듯한 일이 몇 번 계속되었다”(134쪽)

쿠데타가 일어난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이 성공한 이유로 쿠데타 주도세력의 “인적 자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그나마 진일보했던 측면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131쪽) 

 

개인적으로 깊이 새기고 널리 나누고 싶은 얘기도 많다. 예컨대 1980년대 초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려던 김재익 경제수석에 대해 한 말이다.

“자연과학은 실험하다 폭파 사고가 일어나면 자기만 희생되면 그만이지만 사회과학은 실험하다 실패하면 실험자는 멀쩡한데 국민만 희생된다”(150쪽)

이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밀어붙인 문재인정부에 와서 정말 실감이 나는 통찰이다.

 

김재익에 대한 평도 재밌다. 

“백지장처럼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전두환의 머리에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이라는 그림을 그려넣은 사람... 전두환의 경제 가정교사... 경제정책을 안정과 기업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사람” (151쪽)

 

김종인은 이 책과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2012)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공박한다. 2012년 책에서는 제1장 2절(신자유주의의 퇴조)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 절 제목이 “신자유주의는 실패한 경제 논리” “신자유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채택해 실패한 레이거노믹스” “‘제3의 길’ 모색하는 선진국들” 등이다. 신자유주의를 주적으로 삼기에 한국 진보, 좌파, 노조 세력과 철학(현실인식), 가치, 정책 측면에서 공감대가 넓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보수와 기업가들과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의 경제민주화 담론도 신자유주의 주적론에 근거를 두고 있음은 불문가지. 

 

회고록인가? 정책실패학인가?

회고록인만큼 그가 주도하거나 관여한 많은 정치적, 정책적 현안에 대한 얘기와 자신에 대한 부당한 비난(국보위 참여와 뇌물수수 사건 등)과 오해에 대해 해명하는 내용도 많다. 하지만 회고록 치고는 성찰과 반성이 부실하다. 사실 책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은 멀리 보고, 깊게 보고, 바르게 보고, 국익 관점에서 보았는데, 자신과 논쟁한 대통령의 다른 참모들(김재익 등), 고위 공직자들,  교수들, 기업가(정주영 등)들은 단기적, 피상적, 일면적으로 보고, 정권이나 부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얘기다. 특히 김영삼과 박근혜, 문재인에 대해서는 상당한 유감과 배신감을 토로한다. 책 프롤로그의 첫 문장은 “정치인이 회고록을 쓰는 일은 기나긴 반성문을 쓰는 일과 같다”(4쪽)고 되어 있는데, 의외로 자신이 주도적으로 한 일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거의 없다.

 

아무튼 자신이 주도적으로 도입, 설계했으나 환경 변화에 따라 재건축수준의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스템에 대해 도입, 설계자로서 성찰과 제안이 있다면 매우 울림이 클텐데 그런 것이 거의 없다. 거의 자화자찬 일색이다. 경제민주화와 현행 헌법, 의료보험, 부동산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그의 지위와 역할을 감안하면 반성하지 않을 것을 반성하곤 한다. 이는 일종의 오만이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 있다. 

 

“(자신은)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태어날 수있도록 했던 일”이다(382쪽) 

“19대 총선과 대선에서는 정치인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고, 20대 총선에서는 정당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다”(382쪽)

 

이 책으로부터 김종인의  강한 자신감, 자존심, 빠른 판단력, 거침없는 행동력, 정무적 언어구사력과 더불어 독선적, 유아독존적, 안하무인적 성격도 엿볼 수있다.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으로서 그의 강점과 약점 중 어떤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지는 아직은 알 수없다. 김종인은 '뇌물수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 혹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부역자' 같은 유의 비난에는 조금도 괘념치 않을 것이다. 비난하는 사람들을 경멸할 것이다. 그 사안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략가'로서의 능력(지력, 통찰력, 판단력 등)을 건드리면--이것이 역린일 가능성이 높다--, 자부심이 지나친 사람 특유의 분노가 폭발할 수도 있다. 박근혜/새누리당, 문재인/더불어민주당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배신을 또 당해도 격노할 것이다. 

 

책 날개가 소개한 김종인의 대표 경력은 다음과 같다.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 만들고 관철시킨 사람, 1990년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수천만 평 매각시켜 부동산 가격을 단번에 안정시킨 ‘소방수’, 한소-한중 수교에도 깊게 관여한 ‘만능수석’, 민주정의당(11대, 12대), 민주자유당(14대, 뇌물수수로 의원직상실), 새천년민주당(17대), 더불어민주당(20대, 2017년 초 탈당으로 의원직 상실) 비례대표로만 5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연달아 맡아 매번 총선을 승리로 이끈 사람.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여러 정부에서 총리 후보 등으로 거론된 지상(紙上)발령 최다 정치인이다. 한국외대 졸업후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받고, 서강대 교수(1973) 재직중, 부가가치세 실시 문제로 박정희 정권과 인연 맺은 후 근로자 재형저축, 의료보험 도입에 기여한 사람, 가인 김병로의 손자이자 ‘한국 정치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여기에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경력이 덧붙어야 할 것이고, 총선 승리 견인차라는 신화는 2016년에서 끝내야 할 것이다.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수천만평을 매각시켜 부동산 가격을 단번에 안정시켰다는 신화는 검증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검증이 필요한 얘기들

김종인은 책에서 부동산 폭등(1991년 12.8% 상승)의 원인으로, 30대 재벌이 가진 토지 1억 2320만평 중 10% 이상이 1987~89년 매입한 데서 찾는데, 자신은 경제수석시절 이 중 5천만평을 반강제로 매각시켜 1992년 1% 대로 떨어뜨렸다고한다(238~239쪽)

 

“부동산 대책을 세운다며 세금을 올리고, 대출을 규제하고 속된말로 ‘잔챙이’들만 힘들게 만드는 정책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근원을 손대야 한다”(239쪽)

 

그런데 과연 재벌의 부동산 매입으로 가격이 폭등하고, 강제 매각 조치로 부동산 값이 안정되었을까? 혹시 지금의 부동산 가격 상승에도 이런 해법을 들이대지 않을까? 

 

이 외에도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 여럿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해찬 공천탈락 관련 서술이다. 김종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였지만 공천사항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그의 공천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그러나 그를 공천하는 것에 대한 여론이 극히 좋지 않아 정무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195쪽) 


자신이 관계하지 않은 민주당 공심위(?)의 공천 탈락 조치를, 대표인 자신이 정무적 판단으로 막지 않았다는 얘기다. 

 

가장 회고록다운 서술은 노동문제에 대한 서술이다. 김종인은 “과거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나라를 위해 다시 하고 싶은 일”로 “노동관계법령과 제도를 바로 잡는 일,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일”(103~104쪽)을 든다. 

“박정희 때는 교수라서 힘을 얻지 못하였고, 전두환 때는 엉뚱한 방향으로 좌초되고, 노태우 때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했는데, 노동법 개정 시도를 했으나 실패하였다…그 뒤로는 우리나라 자본과 노동 세력이 이미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성장해서 정부가 중재자로서 서로를 조율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103~104쪽)

 

김종인은 “노동조합은 절대선인가-탐욕이 만든 결과물, 기업노조”라는 제목으로 115쪽~124쪽에 걸쳐 길게 한국 노동문제에 대해 얘기한다.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시스템은 ”기업에는 노동조합이나 외부 노조의 지부가 존재하지 않으며, 기업가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3자가 모두 참여하는 노사협의체를 만들어 기업 내부의 일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독일과 북유럽 모델을 참고한 것”(117쪽)이라 하였다.  “하지만(자신의 의도와 달리) 기업가들은 노조를 적당히 돈으로 구슬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단다.(119쪽) 그 결과 “노조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120쪽)


김종인은 기업가들의 기업별 노조 선호를 기업가들의 탐욕의 소산으로 본다. ‘내가 만든 기업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내지  ‘노조 정도는 자기가 구워삶을 수 있다’(123쪽)고 본 당시 전경련을 이끌었던 정주영 등을 비판한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를 법으로 불허했으면, 다시말해 산별, 직능별 노조를 법으로 강제했으면 지금의 노동문제가 풀렸을까? 물론 조금은 나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노동문제의 구조와 원인을 너무나 피상적으로 본 소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회고록이라기 보다는 ‘정책실패학 세미나’ 발제문에 가깝다. 각각의 주제를 깊이 천착한 사람들이 집단 토론을 한다면, 한국의 정책비평 수준이 한뼘 쯤은 더 커지지 않을까 한다. 

 

왜 지략가라고 했을까?

책 부제에 "대통령들의 지략가"로 쓴 근거인 대통령들과의 인연은 다음과 같다.  
“어떤 시기에는 국회의원으로 대통령과 대면했고(전두환), 어떤 시기에는 청와대 참모(경제수석)로서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일했고, (보건사회부)장관직을 맡았던 적도 있다(노태우),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대통령도 있고(박근혜,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그 사람은 절대 대통령이 돼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생각에 당선을 막아보려 나름대로 애를 쓴 대통령도 있다(문재인), 어떤 대통령은 나를 ‘멘토’라 부르며 원로처럼 추켜세우기도 했고(노무현) 어떤 대통령과는 물과 기름처럼 상극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은 물론 혹독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김영삼) 어떤 대통령은 정치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부터 지켜보았고, 그가 대통령을 준비하던 시절, 후보가 되었던 시절,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변화의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목도하기도 했다(노무현,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의 면면과 인간 됨됨이, 실무능력, 그들의 흥망성쇠를 나처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100쪽)  괄호 안의 대통령 이름이나 직함은 내가 붙인 것이다.

  
경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김종인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이어지는 20년 동안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2004~2008) 한번 한 것 외에 공직을 맡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간의 야인 시절에, 박세일과 달리 쓴 경세서도 없고, 경세방략을 같이 연구, 고민해 온 정책그룹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책 부제에 ‘경세가’가 아니라 ‘대통령들의 지략가’라는 표현이 들어갔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2013년 10월 경향신문에 쓴 글에서 그를 박세일 서울대 교수(2017년 작고)와 함께 우리 사회의 대표적 ‘경세가’로 꼽았다. 김호기는 박세일의 말을 빌려 경세가를 ‘뜻을 이룰 상황이면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 학문에 전력하는 이’라고 하였는데, 박세일과 김종인의 이력을 비교해 보면 ‘부류’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있다. 

 

정치근육 좋은 정치인

김종인은 교수라기 보다는 정치인이다. 정책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은 정치인이다. 김종인은 대개의 교수들과 달리 이른바 정치근육이 좋다. 한국에서 널리 회자되는 정치근육이란 사회역사적 통찰력, 학습능력, 성찰능력, 균형감각, 열정, 책임•소명의식, 대중친화력 등 정치인의 좋은 덕목이라기 보다는 적당한 과대망상과 자아도취, 이로부터 나오는 굳센 권력의지, 갈등을 초래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능력, 타이밍선택(침묵하거나 몸을 낮추고 기다리다가 기회가 생기면 전광석화처럼 이를 움켜쥐는 능력), 권력의 칼을 휘둘러 낭자한 피에 대한 둔감 등이다. 김종인은 '정치 고단자' 소리를 듣는 정치인(박지원 등)들만큼 정무적 판단력과 언어구사력이 좋다. 이는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을 하면서 그 실력을 약간 보여주었다.

 

1980년 대학교재 ‘재정학’을 쓴 이후, 남이 못가진 대단한 국가경영 실전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까지 근 30년 넘게 책을 쓰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을 아낄 줄도 안다. 김종인은 비스마르크의 입을 빌려 정치인의 임무를 “신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신의 외투자락을 잡아채는 것”(8쪽)으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 기회 포착과 민첩한 행동를 특별히 중시한다. 게다가 경제민주화라는 상징 자산도 그런대로 잘 관리하고 있다. 

 

김종인은 소신과 배짱(강단)이 있다. 80세에 이른 지금(2020년)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과거(30대 중반~50대 초반)에도 국회의원직, 장관직, 대통령비서(수석)직에 그리 연연해 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할아버지 김병로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한(?) 20대 초반부터 정치의 비루하고, 표리부동한 속살을 봐서인지; 예컨대 윤보선의 대통령 출마 포기 각서, 유진산의 회유와 협박,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려하나” 하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라도 해야 주머니에 용돈이 생긴다”고 말하는 정치 낭인들을 보면서 정치의 비루한 이면 세계에 대한 이해도 깊다. 김종인은 “뚜렷한 목적이나 능력도 없으면서 생계형으로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많다(35쪽)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관료의 속성과 정책의 어려움도 실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신의 외투자락을 잡아챌” 기회를 노리는 눈은 발달되어 있지만, “신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귀는 그리 발달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캐묻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회역사적 통찰력은 그의 말과 행동과 책에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야가 의외로 단기적이고, 제기하는 이슈들이 대체로 곁가지거나 시의적절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그의 핵심 상징자산인 경제민주화 담론과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제기한 보수 폐기론, 기본소득 논란, 5.18 논란, 저출산과 교육불평등(사교육 원흉)론 등이 그 징표다.  

 

김종인의 핵심 문제의식과 주도적으로 제기한 이슈는 대부분 과거 독일에 의존하고 있다. 재형저축과 의료보험 아이디어도 그렇고, 경제민주화 담론도 그렇다. 문제는 엄청난 세월이 흘렀음에도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독특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실에 대한 천착이 깊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보수가 당혹해 할 생각들

김종인의 말(책과 인터뷰 등)과 행동을 종합해 보면 이른바 ‘안보 보수’를 자극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 보수는 김종인의 현실인식에 당혹할 일이 많을 것이다. 또한 탄핵에 대한 인식도 보수를 꽤 당혹스럽게 할 것이다. 김종인의 경제(현실)인식과 주된 모순부조리 인식은 2016년, 2012년과도 다르지 않고, 1990년대와도 대동소이한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김종인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연설(2016.6.22)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입니다. 경제민주화는 거대경제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의회에서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치민주화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의회가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재벌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해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는 것과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즉 반칙과 횡포를 막는 것이 시급합니다…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은 “영원한 권력은 없다”의 삼성과 박근혜 탄핵에 대한 인식에서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우리나라가 괜히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리겠나. 어떤 언론도, 다른 어떤 재벌도, 세상 어떤 정보기관과 정치세력도 알지 못하던 것을 삼성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노무현 정부도 종국에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생산하는 자료에나 의존하며 정책을 만들었던 것이다”(356~357쪽)

박근혜는 그런 마수(재벌의 마수)에 그대로 걸려들었다가, 그것이 발각되면서 국민에게 탄핵당한 것이다….어떻게든 자동차산업에 진출해 보려고 온갖 회유와 협박을 거듭하던 삼성은 25년 후에는 어떻게든 2세에게 기업을 공짜로 넘겨주려고 꼼수를 부리다 대통령이 탄핵되게 만들고 그들의 2세도 감옥에 가는 곤욕을 치렀다. 지독한 탐욕의 결과다. (357쪽)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즈음 중국 등 개도국들의 모터라이제이션(자동차 수요의 폭발)이 예견 되던 시대에 삼성자동차를 그렇게 막는 것이 능사 였는지 의문이다. 그것도 과잉공급=시장포화론을 근거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보아도 승용차 생산이 포화 상태에 있는데 그런 사업을 해서 이익을 낼 수 있겠습니까?”(247쪽)

 

외환위기에 대해서도 재벌의 무분별한 중복과잉투자에서 찾는 것도 너무나 일면적이다. 환율문제, 금리문제, 종금사 규제 문제 등 진짜 문제인 정부 책임에 대한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해외에서 빌려온 막대한 자금은 재벌에게 무한정 빨려 들어가 그들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중복 투자를 할 수있는 '재벌의 천국'과도 같은 여건을 제공해주었고, 우리 경제의 과잉투자, 과잉시설, 과잉부채는 가장 심각한 상태로까지 빠져들었다. 그것은 결국 외환유동성에 문제를 일으켜 경제주권을 IMF에 넘겨주는 치욕스러운 결과를 맞게 되었다(256~257쪽)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으려고, 주력업종 제도(3가지에만 주력)를 밀어붙인 것을 자신의 큰 치적처럼 얘기하는데, 왜 재벌이 문어발식 확장을 하려 했는지? 이를 막는 다양한 수단이 주력업종 제도 외에도 많을텐데--일감 몰아주기 방지 제도 등-- 왜 이렇게 거칠고, 실효성도 의심스러운 수단 밖에 구사하지 못했는지 성찰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중화학 기업이 어떻게 백화점도 하냐'는 등 도덕적 당위론으로 재벌을 훈계하고 징치하려 한다.  삼성 문제의 뿌리(변칙적인 3세 상속 시도)인 취약한 지배(오너 지분)구조, 약탈적 상속세제, 국가의 너무 많고 자의적인 규제와 간섭, 사법의 불확실성 등에 대한  성찰도 없다. 요컨대 이재용-최순실-박근혜 문제는 이재용의 탐욕의 소산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일면적이다. 한국에서 국가권력(입법, 행정, 사법)은 기업을 잘 되게는 못해도 안되게 할 수있는 너무 많은 수단이 있기에, 재벌들은 권력에 대한 로비줄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관리의 삼성'이니 만큼 정보와 인맥이 많기에  최순실과 박근혜 관계를 파악한 것인데, 이를 삼성의 부도덕한 탐욕과 로비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인가? 경제자유화인가?

김종인은 한국이 경제민주화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신자유주의자나 재벌의 로비를 받은 사람이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이는 김종인에게 경제민주화만능론자요, 자뻑이 심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결코 비약이 아니다.  

“우리 헌법에 경제세력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놓아야 나중에 경제세력이 우리 사회를 압도하려고 시도해도 대항할 수 있는 안전핀으로 삼을 수 있을 것’(180쪽)  

“국민의 염원은 양극화 해소, 공정한 경제, 포용적 성장으로 집약되어 있었다. 그런 모든 바람은 경제민주화라는 간결한 용어로 수렴되었다” (348쪽)

“2012년 총선에서 국민이 새누리당을 선택한 것은 보수정당이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니까 안정 속에 그런 변화가 가능할 수 있겠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뒤이은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은 거꾸로 야당에 희망을 걸었다…이번에는 야당에 경제민주화를 기대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다”(371쪽)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빼고 ‘경제민주화’를 집어넣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내용이 오히려 (새누리당득표에) 도움이 되었다” (372)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진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해놓고 부정하는 등)정직하지 못한 대통령은 임기를 채울 필요조차 없다는 준엄한 심판의 목소리” “박근혜 탄핵은 뿌리깊은 정경유착의 고리에 대한 탄핵”(355) “박근혜가 탄핵받아 마땅한 행위”를 했다.(388) 

 

한국현실을 직시한다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경제민주화=경제의 정치화가 아니라 경제자유화=경제의 탈정치화이다. 김종인은 노동개혁, 규제개혁, 공공개혁, 연금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 등이 얼마나 절실한지, 이른바 거의 모든 경제세력이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는지,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의 이름 하에 최저임금 폭증, 주52시간 근무제, 정규직=정상, 비정규직=비정상시, 공공부문 폭증, 경직되고 촘촘한 국가규제, 탈원전, 형사처벌만능주의, 과도한 상속세, 법인세 문제 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별 문제 의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간의 주목을 끌고, 약간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보수 폐기, 기본소득, 전일보육제, 교육문제(사교육이 공교육 무력화, 민주당은 교육불평등 얘기 안해) 등은 책임있는 정치세력 내지 보수가 주도적으로 제기할 아젠다에서 많이 비껴나 있다. 특히 청년들을 기본소득의 우선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은 현재의 경제, 고용체제(패러다임)가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이기 때문인데,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아 볼 수없다. 

 

사실 한국 헌법에는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이라는 제119조2항 외에도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근거가 차고도 넘친다.  국가의 경제주체 혹은 경제행위에 대한 보장, 보호, 육성, 보장, 계도, 금지, 조정, 규제를 명기한 제120조~제125조의 6개 조항도 경제활동의 자유 내지 사유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옥죌 수 있게 한다. 특히 제123조 (농어업, 지역경제, 중소기업, 농어민 이익,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 등에 대한 보호, 육성, 보장)와 124조(건전한 소비행위 계도)가 그 압권이다.  국가가 보호육성해야 할 중소기업은 기업의 99%이고, 소비자는 국민전체 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어업, 농어민, 지역경제, 국토와 자원 보호 등도 거대경제세력에 대한 규제와 조정의 근거이다. 

 

헌법과 법률과 법해석은 국민의 습속(문화)의 자식이다. 습속은 (정치가 부실하면 더 잘 통하는) 떼법의 모태이기도 하다. 한국은 조선왕조부터 지금까지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권이 중시된 적이 없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핵심인 조선 유교체제와 문화는 인간의 욕망, 이윤 추구 자체를 백안시해왔기에 재산권 보호나 경제활동의 자유 존중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에 따른 어마무시한 패악 또한 제대로 지적된 적이 없었다. 김종인은 책에서 가임여성이 자녀를 4~5명 낳아 인구 폭발이 우려되던 시대에 만들어진 출산율 억제 정책을 출산율이 1명 대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지속하는 것을 비판하는데, 실은 그의 경제민주화 담론이 그 짝이다. 경제 자유의 결핍 시대 내지 나라에서 경제 자유의 과잉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백보 양보해도 헌법 제119조 2항 없이도 얼마든지 필요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있다. 

 

그런데 김종인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경제민주화라기 보다는 대통령 중심제 내지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것이다. 책에서 김종인은 지금의 문제는 사람(운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자동차)의 문제라며 정치에서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박근혜의 비극은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될 것이다. (389쪽) 제왕적 대통령제(대통령 중심제)를 바꿔야 한다…’대통령을 잘 뽑으면 된다’는 책임과 안목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391쪽)

 

김종인이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팔을 걷어 부친다면, 나는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용의가 있다. 하지만 문정부와 민주당이 여태 보여준 행태는 과연 이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솔직히 이들이 김종인의 욕망을 이용하여 나쁜 개헌을 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김종인은 빌헬름 1세 치하에서 20년을 재임한 비스마르크에 대한 꿈, 나이 팔십에 출사하여 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주나라의 통일 대업을 이루고, 자신은 제후국 제나라의 창건자가 된 강태공(태공망)의 꿈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 정치도의에 벗어나지만 않으면 큰 꿈을 가지는 것이 사회를 위해 좋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의 향후 진로와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김종인의 선거(승패)관이다. 그는 선거 승패를 단기 대응 여부에 의해 갈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종인은 1985년 신민당, 2012년 새누리당, 2016년 민주당을 거론하면서 “선거직전에 생겨났거나 선거 직전까지만 하여도 지리멸멸했던 정당이 시대정신을 잘 포착하여 승부를 단번에 뒤집었다”고 한다. (353쪽) 역시 선거도 신의 외투자락을 잡는 심정으로 대하지 않을까 한다. 이는 보수와 미래통합당의 기초 체력이랄까 호감도를 높이는 지난한 일을 등한시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있다. 

 

너무 오래 전에 만들어진 사고와 행동 패턴들

나에 대해 좀체 이해하기 힘든 조치를 취한 이유도 책에서 발견했다. 김종인은 물의를 일으킨 후보를 제명하여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제고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다시말해 2016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시절 이해찬, 정청래, 정봉주 공천 탈락 효과를 기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저 ‘야당 체질’인 사람들, 막말이나 일삼고 가벼워 보이고 실력없는 정치인을 공천에서 배제하는데 주력했다. 그런 방면에서 유명한 몇몇 정치인이 공천에 탈락하니 이슈가 되었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민주당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372쪽)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새누리당에게 공격의 빌미나 제공하던 저질 정치인들을 정리하면서 민주당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사이, 새누리당은…공천주도권을 놓고 온통 집안 싸움질만 계속했다…한쪽은 ‘감동 공천’, 다른 한쪽은 ‘막장 공천’이라고 했다. 선거는 이미 그때 결론이 나 있던 셈이다. (375쪽)

 

과거 경험이 만든 패턴(자동실행 파일)에 많이 의존하는 80세 노인 김종인은 전혀 다른 상황, 전혀 다른 사안을 동일하게 취급한 것처럼 보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얘기다. ‘자라’는 2004년 정동영, 2012년 김용민 막말 파동일 것이다. 어쩌면 이해찬, 정청래 공천탈락 효과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김종인은 크게 기울어진 언론환경; 즉 관영언론이 지배하는 언론환경을 의식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ytn 등 관영 언론들의 악의적 편집(보도)에 대해 진위도 전혀 확인하지 않았고, 방어, 해명도 하지 않았고, 이를 ‘유권자들이 판단할 일’이라며 일개 지역구 이슈로 덮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정치인, 지략가, 정책전문가, 경세가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야망, 포부와 자신의 객관적인 실력및 평가 간의 괴리가 있기 마련인데, 김종인은 이것이 심한 편이다. 김영삼~이명박까지 20년은 지상발령은 많이 냈을 지 몰라도, 김종인을 중용하지 않은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캠프가 김종인의 상징 자산을 활용하고는 사실상 버리다시피하여 김종인이 진노를 한 징후가 역력하다. 아마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셨을텐데, 역시 위기 시에 잠깐 쓸 수도 있는 용병 취급을 해버려서인지 배신감이 심하다. 그런 점에서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노태우 정부 이후 근 30년 만에 비록 임기가 1년이 채 안되지만 야당의 실권을 부여 받았다고 볼 수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김종인과 미래통합당 당선자 다수가 정치인과 정치집단의 ‘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와 이를 주도적으로 만든 정치세력이라는 자부심,  이념적 지적 자부심, 국민과 국가에 대한 책임성, 선공후사 정신 내지 대의에 대한 헌신, 언행일치, 일관성, 진정성, 패기, 불굴의 의지와 열정, 관용과 포용, 의리(동지애) 등에서 나오는 ‘정치적 매력(끌림)’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없다는 얘기다. 적어도 현재까지 비대위원장으로서 보여준 행보는 미래통합당에 대한 비호감을 거의 개선하지 못하였다. 예컨대 홍준표, 김태호 등 무소속 당선자들을 대승적으로 품지않으려는 모습, 여론조사에 자주 오르내리는 야권 대선 주자들이 감이 아니라는 셀프 디스,  보수에 대한 폄하(꼴통 보수 등)와 거리두기 등이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미래통합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개선은 커녕 더 강화되면서 보수 진영에서 때아닌 창당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문제는 보수와 미래통합당의 혼이다. 

김종인의 현실인식은 낡았다. 학습능력과 성찰능력은 취약하다. 과거 경험이 만든 패턴에 크게 의존한다.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지 못한다. 김종인의 현실인식=주된 모순부조리 인식(시대정신)은 오래 전의 그것인데, 이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기에 독선적이고, 독단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로부터 거침없는(자신감 넘치는) 언동과 과감한 행동(결정)도 나오고, 또 진노도 나온다. 이로인해 자주 논란이 일어나고,  미래통합당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의 핵심 문제인 비호감 문제가 개선될 수는 없다. 그것은 보수를 폐기하고, 5.18묘역 가서 머리 수그리고, 경제민주화와 약자편임을 강조하고, 박근혜 탄핵은 인과응보라 하고, 당명과 당 강령을 바꿔도 개선되지는 않는다. 비호감은 노선, 강령, 당명 이전에 '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통합당 당선자 다수가 황교안에 비해 월등한 김종인의 정치적, 정책적 역량에 감탄하고 우르러만 본다면, 미래통합당은 미래도 없고, 통합도 없다. 김종인의 강점은 살리고 약점, 한계, 오류는 줄여야 한다. 김종인을 우르러 볼 것이 아니라 내려다 보아야 한다. 1990년대 초에 전성기를 지나 20년 동안 뒷방에 있던 김종인 보다 나은 사람을 찾기 힘들게 된 보수의 한심한 현실과 다른 대안이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과 좀 어렵더라도 다른 대안을 만들어 나가려고 하는 자강 정신, 바로 '보수 혼'의 결핍을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끝-
 

<저작권자 ⓒ사회디자인연구소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