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대통령 권력” 을 정독하고 난 후 든 첫번째 소감이다.
문재인, 안희정, 안철수, 이재명, 손학규, 유승민 등 대권 주자들과 핵심 참모들은 아무리 바빠도,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선에도, 본선에도 도움되고, 국정 운영에는 크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그 어떤 동서양 고전 보다 배울 것이 많아 보였다. 특히 참여정부의 후광 효과를 크게 보고 있는 문재인과 안희정에게는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혜가 많다. 책 장을 넘길 때마다 보석 같은 경험과 지혜가 넘쳐난다. 나누고 싶은 대목이 정말 많다.
“우리는 때로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한다. 조짐을 조짐으로 알지 못한다. 일이 터지면 그때서야 “그러고 보니 그 때.....”하고 아쉬워한다.(중략) 쉬운 예로 1990년대 말의 IMF위기만 해도 그랬다. 단기외채가 급증하고 금융회사의 자기자본 비율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또 30대 재벌의 부채비율도 450%를 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거품’이었지만 우리는 이를 심각히 여기지 않았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도, 의제를 의제로 삼지도 않은 것이다. 그건 그래도 약과다. 부국강병의 문제를 등한시하다 왜란과 호란을 겪었고, 개방과 개혁의 시기를 놓쳐 식민지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모두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한 데서 온 결과였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양극화니 고용 없는 성장이니 하는 전통적 문제 위에 새로운 문제들이 겹쳐 일어나고 있다.(중략)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교육개혁 등으로 혁신 기반을 다지지 못하면 바로 죽는다는 이야기이다.(중략) 네 편 내 편 가르는 진영논리 속에 문제에 대한 논의는 없고 이기고 지는 싸움만 있다.무슨 문제든 꺼내 놓기만 하면 진영논리의 제물이 되고, 분노를 파는 정치꾼들이나 선동가들의 장사거리가 된다.(중략) 심지어 세월호 참사도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했을 뿐 실제 안전 문제는 나아진 것도 없다.....세월호 문제를 한번 따져보자. 문제는 잘못된 규제로부터 출발한다. 정부가 요금을 낮게 규제하니 도덕적이고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회사는 시장에 진입할 수가 없다. 낡은 배를 사 와서 화물을 있는 대로 싣고, 정원 초과를 밥 먹듯 하는 회사만 살아남는 구조다.
정부가 낮은 요금을 잘 보전해 주면 될 일이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돈도 없는데다, 힘없는 해양수산부는 ‘예산 전쟁’에서 늘 패배한다. 그렇다고 새 배를 사서 운행 할 수도 없고 화물을 싣지 못하게 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아예 배가 다니지 못할 판이다. 이래저래 봐 줄 수밖에 없는 상황, 돈도 받아 쓰도 밥도 얻어먹으며 한 통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대통령이 ‘7시간 어디 가 있었느냐’ 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잘못된 규제와 부족한 재정지원 등의 문제도 그 ‘7시간’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나잘못된 규제를 고치거나 새 배로 안전하게 운항하게 할 만큼 국고보조를 늘렸나아니다. ‘7시간’ 문제 등 오로지 대통령을 공격하는 일에만 열중했다. 문제를 무기로 쓰는 데만 열을 올렸다는 말이다. 매사가 그렇다. 한 해 내내 서로 삿대질을 해대다가 실적이 없고, 나무라면 수십 수백 건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벼락치기, 즉 ‘합의 날치기’를 한다.( p31~33)
노무현 정치의 중심에는 늘 ‘사람들의 생각’이 있었다. 천하 없는 권력을 잡아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보았다.....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계몽주의자였다......정치의 목적도 분명했다. 이성의 올바른 작용을 방해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모순을 제거하는 것을 그 중심에 두었다. 편향된 언론, 지역주의, 견제받지 않는 정치, 경제, 사회적 힘, 지나친 빈부격차와 기회 불균등,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경직된 이념 등이 모두 이러한 모순이었다. 특히 편향된 도그마에 견제되지 않는 거대언론과 합리적 담론의 생성을 방해하는 지역주의는 가장 큰 장애 요인이자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였다.(p64~65)
죽음 이전의 또 하나의 죽음, 즉 좌절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좌절이란 꿈과 희망이 꺾였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지도자로서 죽음을 의미한다. 그에게 이 죽음이야 말로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p69)
그를 존경한다고 해서 그의 정책을 그대로 따를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의 초상화를 든 채 그의 정책(한미FTA, 제주해군기지, 삼성관련 규제법 등)을 부정하자면 고민과 성찰의 깊이가 최소한 그의 수준에 닿은 다음 그렇게 해야 한다. 시대에 뒤처진 이념이나 얕은 논리로 그의 인격과 자질 그리고 능력을 다치게 해서야 되겠는가(p72 )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수언론은 정당성을 인정하기 힘든 존재였다. ‘기회주의자’에 ‘권력 장사치’,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남은 마지막 특권세력’이었다. (p101)
청와대를 비서실과 정책실로 나눈 이유이자, 어이없는 정책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도 재밌다.
청와대 참모 사에는 쉽게 상호불가침의 문화가 형성된다. 즉 모두 절대 권력인 대통령 앞에서 허점이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건드리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그 결과 참모 사이에 쉽게 칸막이가 쳐질 수 있고, 그러면서 집단적 지성이나 지혜의 형성도 그만큼 멀어질 수 있다. (p112)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재밌다.
정치권과 학계 그리고 언론 대부분이 그저 쓴소리 바른 소리 이야기다. 그러면서 툭하면 대통령의 성격이나 소통능력, 그리고 일부 참모의 권력욕을 문제삼는다. 처방 또한 지극히 단순하다. 사람 갈아치우라는 이야기가 대종을 이룬다. (p112)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정책 참모 경험도 보석이다. 김병준은 수능 1등급 4%(교육부 안)와 7%(대통령 안이라면서 교육부를 압박했던 안)을 둘러싼 소동을 얘기하면서 대통령의 정책 참모가 하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어느 부분이 지시이고, 어느 부분이 제안이며, 또 어디까지 의견이고 어디까지 조크인지 가려주는 일이다. 또 지시나 제안에도 어느 정도의 무게가 실려있는지를 확인해 주는 일”이라고 정의 한다. (p 131)
노무현 대통령은 4%안과 7%안을 둘러싼 격론을 전해 듣고
“7%는 그냥 막연히 해본 생각일 뿐, 어느 쪽이 옳은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교육부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자” 했다 한다.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은 마패요 면죄부였다. 대통령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각하’와 이야기 되었다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쉽게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연히 물었다가 반대하거나 따진다는 인상을 주면 그걸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중략) 당연히 권력은 끝없이 왜곡되었다. 대통령이 하나를 이야기하면 이를 받아 전달하는 자는 자신의 것을 세 개, 네 개, 아니면 열 개 스무 개 ‘끼워’넣었다. 그리고 이를 전달받은 자가 다시 자신의 것을 있는대로 끼워 넣었다. 결국 대통령의 하나는 종국에 열이 되고 백이 되었다. ‘대통령의 뜻’으로 자리와 이권이 배분되었다. 대통령 한 사람의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인 권력행사만 해도 나라가 흔들리는 판이었다. 여기에 이런 권력 왜곡 현상까지 더해졌으니 나라가 나라 같았겠나. 문화관광부를 사유물처럼 가지고 놀았던 최순실의 ‘국정농단’도 바로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p138)
가장 한심한 경우는....대통령이 특정인에 대해 별 생각없이 부정적인 말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대통령이 싫어하는 사람으로 찍어버리는 경우다. 또 반대로 덕담 삼아 칭찬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인사 추천 대상에 올리는 경우다(p181)
노무현과 김병준은 한국 대학강단 내지 학문의 적실성(relevance) 문제를 절감했다. 노무현은 한국정치학회가 보내준 1천쪽의 논문집을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그 소감이 ‘뭐가 (한국 정치의)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냥 써내려갔다’는 것이다. 김병준 역시도 공직을 경험한 이후, 즉 전문지식의 현실적 수요자가 되어본 뒤 ‘연구의 적실성’ 문제를 강하게 느꼈다 한다. 연구비(부족) 문제, 논문 편수(양) 중심 평가 문제, 논문 게재 확률이 낮아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는 피하다 보니, 자연히 숫자로 나타날 수 있는 개념, 통계로 증명할 수 있는 주제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연구자의 자세다. 많은 학자와 교수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희로애락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잘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알긴 해도 잘 느끼지 못한다. 또 느끼긴 해도 자신의 문제로 가슴에 담지 못한다......세상사에 대한 슬품과 기쁜 그리고 사랑과 분노가 없었던 대학자가 몇이나 되는지를”
“학문은 점점 더 세상 물정 모르고 편히 살아온 사람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교수만해도 그렇다. 지명도가 높은 대학일수록 과외해서 좋은 대학가고, 잘 사는 부모 만나 등록금 비싼 학교에서 유학하고, 시집 장가 잘 가서 배경도 든든한 사람이 교수가 되고 있다. 이들이 세상 사람들의 슬픔과 기쁜 그리고 사랑과 분노를 얼마나 가슴에 담을 수 있을까(p216)
김병준은 한국 지식사회에 대해
“답보다 질문이, 분석 보다는 통찰이, 객관보다는 직관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p212) 묻는다.
책에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일인 ‘인사’에 대해 얘기한다. ‘대통령의 인사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라는 제하에,
첫째, 일과 과업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인사의 기본은 일을 할 수있는 사람을 찾아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당연히 일이 뭔지 분명히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일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인사가 한심해 질 수밖에 없다. 둘째, 일을 아는 사람이 인사를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이 점에서 정책조직의 역할이 중요하다. 셋째, 대통령과 청와대가 행사하는 인사권의 범위를 되도록 좁혀야 한다. 누구든 능력 이상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문제가 생긴다. 넷째, 권한의 범위를 명확하게 해주어야 한다. 즉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고, 그런 가운데 대통령과 청와대를 파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게 된다. 다섯째, 청와대의 인사관련 조직은 되도록 작아야 한다. 크면 큰만큼 권한을 행사하려 들 것이고, 결과적으로 하위조직의 인사 자율권을 제약한다. 결론은 일이다. 인사가 만사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p184~186)
사실 나는 문재인, 안희정을 포함하여 현존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일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를 엉뚱하게 정의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용 문제를고용불안, 비정규직 과다, 좋은 일자리 부족으로 규정하면, 결국 좋은 일자리의 대표격인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로 달려가게 되어 있다. 또한 대기업과 공공부문의비정규직 보다 훨씬 못한 중소기업(콜센터 등) 정규직의 저임금 문제는 외면하게 되어 있다. 이들은 어쨌든 정규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보다도 못한 영세자영업자와 폐지줍는 노인 문제도 간과하게 되어 있다.
교육 문제도 그렇다. 한국 교육 문제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국가예산만 60조원 넘게 쓰는 공교육(유초중고+대학)의 부실이다. 공교육 부실의 본질은 개인 맞춤형 교육이 안되는 것이고, 이는 경직된 교육 규제와 관련이 있다. 교과 과정, 교원, 학교 시설 등에 너무 많은 기득권 편향적이고 관료 편의주의적인 규제가 있다. 요컨대 교육의 개인 맞춤화, 학교 자율화, 교과과정및 교육규제의 지방(자치)화가 안되어 있는 것이다. 종종 교육 문제의 최대 현안처럼 회자되는 과도한 사교육비와 대학입시 경쟁은 학위, 학벌을 근거로 한 경제사회적 차별배제 구조와 진출입 구조(일단 진입=입학만 하면 중도 퇴출과 진입이 어렵다)와 공교육 부실의 파생물이라고 보아야 한다.그리고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중요성이 점증하는 평생/직업교육 등도 구조적으로 부실할 수 밖에 없다. 예산부터가 1%가 안된다.이는 교육 정책과 예산을 운용하는 거버넌스 문제와 관련이 있다. 단적으로 주로 교수 출신이 차지하는 교육감은 유초중고 공교육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지자체의 주요 사무인 평생교육과 고용노동부의 주요 사무인 직업교육은 관심 밖이다. 그런데 교육의 최대 현안은 사교육과 대학입시고, 고용의 최대 현안은 좋은 일자리 부족과 대기업및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사용이다.이런 식으로 문제 정의라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 그 아래 단추에 해당하는 진단과 대안이 엉뚱한 데로 달려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는 대권 후보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에서 공공정책담론을 생산하는 지식 사회 전반의 문제가 결정적이다. 그래서 체계적인 이념, 즉 수미일관하고 종합적인 국가 개혁 전략 자체가 없다. 정치인과 정당에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이 없다.
일을 안다는 것은 문제와 우선순위를 알고, 그 해법의 기조를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현실(문제)를 보는 프레임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프레임이 잘못되면 아무리 많은 경험과 정보를 가져도 소용없다.
이는 경제민주화 담론의 원조라는 김종인의 구의역 사고에 대한 시각이 여실히 보여준다. 구의역 사고에 대해 정진석은 철밥통 공기업과 메피아를 지목하였고, 김종인은 “기업의 탐욕”과 이를 막지 못한 정치를 지목하였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정진석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5월 28일….구의역에서 고장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19살 비정규직 김 군이 사망하였습니다. 컵라면 먹을 시간도 없이 열심히 일했던 김 군의 월급은 왜 150만원이 안됐을까요2인 1조 작업이라는 안전수칙은 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일까요구의역 사건은 정규직에 대한 과다한 보호가 비정규직에 대한 수탈로 이어지는 노동시장의 이중성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은 월 440만원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 과도하게 떼주다 보니 김 군과 같이 현장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의 월급은 144만원에 불과했습니다. 2인1조로 일하기가 불가능한, 적은 인원만 채용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메트로는 철밥통 공기업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현장점검을 하는 청년들은 비정규직 하청으로 넘기고, 월급은 메피아의 1/3도 안되게 주었습니다. 철밥통의 대가를 비정규직 청년들이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김종인은 이렇게 말했다.
“구의역 사고는 단편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이 사고의 본질은 불평등과 양극화 등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입니다……모두 기업의 탐욕을 막지 못한 정치의 문제입니다. 국회가 시장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보완장치를 만들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이것 역시 경제민주화의 문제입니다"
김종인은 경제민주화 프레임으로 현실을 재단하다 보니, 명명백백한 정치및 지방 행정과 공기업의 (관리감독)책임을 기업과 시장에게 돌리고 있다. 문재인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도, 공공부문이 OECD평균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유를 신자유주의 작은정부론에서 찾기 때문이다.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3불(부족, 불안, 불만), 저성장, 저출산, 교육문제 등이 그 분야 전문가를 장차관으로 앉혀, 믿고 맡기면 해결되는 문제라면, 실패하는 정부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사회가 당면한 굵직굵직한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장차관이나 부총리 선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기득권 조정을 요구한다.
기득권은 관점을 달리하면 생존권이다. 수십년에 걸쳐 피로써 쟁취한 권리, 이익이다. 당연히 결사항전하게 되어 있다. 기득권을 떠 받히는 것은 대통령이 마음 단단히 먹으면 제압할 수 있는 부처 정도가 아니다. 공무원 전체, 특정 지역, 지자체, 수백만 납세자, 재벌, 산업, 기업, 노조, 농협, 협회, 대학, 공기업 등이다. 검찰, 국세청, 재경부 등도 부처기득권에 관한 한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2013년 겨울 수서발KTX 파동에서 보았듯이, 철도노조 하나가 대통령과 맞짱을 뜨고도 별로 밀리지 않는 나라다. 야당은 거의 항상 발목을 잡고, 여당조차 비주류는 대통령에게 잘 협조하지 않는다.
김병준은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기득권 구도는 그를 끝없이 괴롭혔다”( p67)고 하는데, 이는 차기 정부에서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연정이 필요한 것이다. 연정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개혁 정부가 되지는 않겠지만, 연정 없이는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몇 년 뒤에 대통령 정파는 반드시 폐족이 되게 되어 있다. 한국에서 대권을 갈망하고, 성공한 정부를 원한다면, 만사제치고 이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좋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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