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교배와 기형 보여준, 토론회 아닌 부흥회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19.05.09 13:19 | 최종 수정 2019.07.19 14:22 의견 0

   

  • 진보 경제학자들 공공정책 담론 토론회, 동종교배와 기형 극심해진 몰골. 토론회 아닌 부흥회
  • 기술탈취와 단가 후려치기 엄단하면 R&D 늘린다고중소기업에게 탈취할 기술이 있긴 있나
  • 경제를 ‘재벌 범법=사법 문제’로 보고 정책을 종교 신념화한 인간들 힘도 세고 젊으니 절망적

 


    세미나 4시간, 마이크 잡고 떠든 발표자 및 토론자들이 8명, 자료집 분량이 121쪽. 주요한 헛소리만 까도 A4 100쪽은 느끈히 될 듯하여 자료집은 포기했다. 토론회에서 나온 주장을 살짝만 터치하려고 해도, 쓰다 보면 글이 길어져서 자판 덮기를 몇 번!   똘똘한 경제학과 3~4학년생들에게 자료집 던져주고 헛소리 까기 리포트 컨테스트 개최하여 1등 100만 원, 2등 50만 원 등 상품을 내걸면 백 편이 넘는 양질의 비판 글이 쏟아질 듯하다. 솔직히 대학생 수준의 실사구시 능력과 비판적 지성만 있어도 헛소리를 수두룩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해 본 생각이다.   그나저나 이젠 왜 진보 패널, 보수 패널을 불러서 심야토론, 끝장토론 같은 것은 안 하는지! 왜 보수언론의 악의적() 비판을 분쇄하고, 우리 진영의 논리를 다지는 부흥회식으로 토론회를 운영하는지!                                     < 세미나에 참석하여목도한 것은 진보 정책담론들이 제대로 된 비판을 받지 않고동종교배만 계속하여 기형이 극히 심해진 몰골이었다. >     내가 간만에 토론회를 방청한 것은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강단 좌파 지식인()들이라 할지라도, 그 동안 비판과 토론도 많았고 또 정책 가설 검증에 필요한 시간도 꽤 흐른 것 같기도 하여, 이 분들의 (성찰반성을 거친) 요즈음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였다.   크지 않는 강의실에 대략 100여 명이 왔다. 공공정책 담론 토론회치고는 많은 편이다. 나는 1시간 이상을 강의실 뒤에 서서 듣다가, 중간 휴게 시간에 사람이 좀 빠져나가고 나서야 자리에 앉아 들었다. 세미나에 참석하여 아프게 목도한 것은 진보 정책담론들이 제대로 된 비판을 받지 않고동종교배만 계속하여 기형이 극히 심해진 몰골이었다. 하기야 토론회라기보다는 부흥회 내지 강연회였으니.   김태동 얘기 중 극히 일부! “무노조 재벌, 노동자탄압 재벌에 대한 철저한 수사. 민간부문 비정규직도 정규직화 의무화. 사내하도급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원칙적으로 불허.”   박상인 얘기 중 일부! “기술탈취가 만연하며, 사실상의 전속계약으로 중간재 산업에서 경쟁과 혁신이 제거됨.”(뉴스타파 보도, 연합뉴스 보도 인용) “단가 후려치기는 재벌대기업에게는 최종재의 가격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게 함.”   이병천, 김남근 등은 오랜 교분이 있는 사람들인데, 확증편향이 참으로 강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공동주최 단체에 민노총 정책연구원이 끼어 있다 해도, 그래도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진 적이 있는 사람들인데… 눈에 뭐가 씌웠는지, 지금 한국에서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사회 불신과 갈등의 어마어마한 모순 부조리의 원흉인 정부(공공)와 노동(노조)의 패악질이 보이지 않는가.   4시간 가까운 발제, 토론 시간 어디에도 노조 문제를 얘기한 사람이 없었다. 이병천, 김태동, 박상인, 김남근, 황선웅 등에게 한국 경제 문제의 원흉은 재벌이다. 그래서 논리는 대개 기승전 재벌이다.   재벌개혁 전문가 행세하며, 이스라엘 사례를 팔곤 하던 박상인은 재벌의 기술탈취와 단가 후려치기에 의한 손쉬운 돈벌이가 혁신 유인을 없앴고(그 징표가 매출액대비 낮은 R&D 투자비다), 그로 인해 지금의 재벌대기업(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란다.   원화 기준 2016년 연봉(임금)은 한국 자동차 5사 평균은 9,072만원인데 반해, 일본 도요타는 8,391만원, 독일 폭스바겐은 8,303만원이다. 1인당 GDP를 기준으로 연봉을 비교하면 한국5사는 2.85배, 도요타는 2.04배, 폭스바겐은 1.74배였다.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은 한국5사가 12.3%, 도요타는 5.8%, 폭스바겐은 9.9%. R&D투자비는 한국 2.8%, 도요타 3.6%, 폭스바겐 5.7%다.                                               <도대체 현대차가 무엇이 아쉬워 협력업체의 기술을 탈취하나탈취할 기술이 있긴 있나>   완성차 회사의 생산직 임금과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높다는 것은 다른 이해관계자인 주주, 협력업체, 비정규직, R&D 분야 등에 갈 몫이 줄어든다는 의미라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박상인은 이게 기술탈취와 단가 후려치기를 거침없이 할 수 있어서, 혁신 유인이 없어서 R&D투자비가 낮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박상인 얘기에 따르면 기술탈취와 단가 후려치기를 엄단하면, 재벌대기업도 혁신만이 살길이라면서 R&D투자도 많이 하고 혁신도 열심히 한다는 얘기다.   판타지도 이런 판타지가 없다. 도대체 현대차가 무엇이 아쉬워 협력업체의 기술을 탈취하나탈취할 기술이 있긴 있나협력업체의 적은 협력업체일 뿐이다. 기술은 워낙 다양해서, 훔쳤다고 시비할 만한 것이 왜 없겠냐만, 그게 혁신유인을 없앨 만큼 될까약방에 감초처럼 나오는 단가 후려치기도 그렇다.   정글과 같은 시장생태계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갑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가 없을 리가 없다. 이는 대통령과 대통령이 인사권을 쥔 참모와 장차관 관계도, 국회의원과 보좌관 관계도 동일하다. 갑이 생사여탈권을 쥐면 갑질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공정위와 사법기관이 매의 눈으로 갑들을 살펴 강력하게 응징하면 이런 행태를 많이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차의 근원인 기업 간 생산성 격차와 불리한 거래 조건을 걷어차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을’의 대항력 격차마저 줄일 수는 없다. 게다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호소하는 협력업체들도, 재벌 대기업이 완전히 공정하고 합법적인 경쟁 입찰을 통해 부품이나 자재를 공급 받는다고 했을 때, 거래조건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사실 이것이 원청의 하청에 대한 갑질의 뿌리다.   독과점 시장구조 등으로 원청이 하청의 목줄을 쥐고 있으면 거래조건은 나쁠 수밖에 없지만 사법적 수단이나 도덕적 호소로 해결되기 어렵다. 1960~80년대 정부주도의 이권 몰아주기 방식의 산업발전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국가독점기업, 민간독과점 시장구조와 높은 진입장벽은 불공정의 본산이지만 사법적 단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듯이…이는 기본적으로 경쟁, 개방, 규제합리화, 공기업 분할 및 민영화, 합리화, 노사의 무기대등의 원칙 구현 등으로 해결할 문제다.   그런데 박상인의 논리는 서촌 궁중족발 사건에서 받은 인상에 근거하여 모든 임대차 관계가 그런 줄 알고, 임차인의 권리, 이익을 과보호하자는 입법(이는 임대인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으로 달려간다. 기술탈취와 단가후려치기를 얘기하는데, 실사구시와 구조분석 등이 너무 없다. 이건 학자적 양심 아니면 자질의 문제다.   박상인이 이스라엘 재벌개혁 얘기를 할 때는 그런 대로 들을 만한 것이 있었는데, 한국 재벌과 불평등, 양극화 문제 에 대해서는 도대체 들을 게 없다. 왕이 덕을 쌓으면 만사 형통이라고 떠벌이던 조선 선비들을 닮았는지, 재벌대기업이 착하게 경영하고 혁신에 나서면, 노조와 공공(규제, 세금, 예산, 공기업 등)이 아무리 개판을 쳐도,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장 치명적인 악덕은 문제를 재벌대기업의 범법(불법적 약탈, 억압)으로 규정하면, 결국 악당을 때려잡는 국가형벌권에서 답을 찾는다. 복잡미묘한 인센티브, 거버넌스, 규제 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이건 정학과 사학(사문난적)의 대립 투쟁에서 문제를 찾던 조선 선비의 부활이요, 계급 투쟁(총노동의 힘)에서 문제와 답을 찾던 20세기 초중반 좌익의 부활이다.   짧은 소감이나 얘기해야겠다.   1. 솔직히 슬프고 대한민국이 암울하다. 한국의 자칭 민주와 진보의 지성 수준이 정말 이것밖에 안되나!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재벌의 범법=도덕/공정=사법의 문제’로 치환하고, 정책 가설을 아예 종교적 신념처럼 만들어 버린 인간들의 힘은 무척 세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젊다. 이들은 한국 사회 최대의 지대추구 세력이자 조직부대인 노조 및 공무원과 연대할 수 있다. 상대를 ‘불의,재벌 편’으로, 자신들은 ‘정의, 노동자민중 편’으로 단순무식하게 재단하고 앞으로 20~30년 간은 수틀리면 촛불 들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글로벌 시장이나 국제질서 때문에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은 못해도, 보편 지성과 양심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은 얼마든지 저지할 수가 있다. 그러니 걱정인 것이다.   3. 내가 아는 한 이들은 문재인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 학생회 애들보다는 지적 능력이 높은 선수들이다. 문정부에서 고관을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선수들이다. 그러니 더 절망스럽다. 비록 치명적인 헛소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곁가지나마 비판적 토론을 한 사람은 김용진 교수 뿐이었다.   4. 구한말 일본, 영국, 미국, 독일의 문물(사상, 제도, 과학기술 등)을 접한 사람에게 비친 조선의 우물안 개구리 위정척사파 선비들의 종교적 신념만큼 강고한 언설들을 접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상상이 간다.   이 사람들에게(김용진 교수 빼고) 불평등-양극화-재벌개혁-공정경제-소득주도성장론 등은 비판-반비판-실사구시 등을 통해 검증되어야 할 가설인가검증도 증명도 필요없는 종교적 신념인가솔직히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까 한다. 뭔가 치열한 비판과 토론이 필요한 주제로 생각했으면, 패널을 저렇게 안 짠다.   5. 국가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고용, 외교안보, 정부(규제사법, 세금, 예산), 에너지, 교육, 지속가능성, 자유, 민주, 공화, 신뢰이다. 내가 지지했던 김대중, 노무현정부와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존중했던 이명박, 박근혜정부는 실력은 모자랐지만, 그래도 기본은 하려고 노력을 했다. 국가의 근간을 흔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역대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정부다. 경제고용, 외교안보, 정부, 에너지, 지속가능성, 자유, 민주, 공화 등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조야하고 시대착오적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비슷비슷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부라고 생각하는 자는 정말 눈이 없거나 머리가 없는 자다. 고용노동부가 선전하는 그림 한번 보라. 그아먈로 마차(일자리)가 말(성장)을 끌어나간다는 논리다. 당일 황선웅도 직업 상담사 숫자가 태부족이니 이걸 확 늘리면, 일석이조라 했다. 공공부문 일자리도 늘리고, 취업 알선을 잘해서 일자리도 늘린단다.   역량으로 볼 때 김상조, 장하성, 김기식을 훨씬 능가하는 참여연대의 최고 에이스 김남근조차도 최저임금에 대해, 미국, 일본, 독일 등이 공통적으로 펼친 정책이라면서 세계적 흐름이라고 강변한다. 각 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출발점)을 얘기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큰 통찰은 부실하고, 자잘한 세찰은 비교적 튼실하니, 부분 개선(법 제개정 등)-전체 퇴행이라는 합성의 오류를 양산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 따위 수준의 안목으로, 도대체 무슨 염치로 내년 총선 승리를 꿈꾸나아무리 야당이 후지다고 해도 말이다. 지금 정부 여당 내에 생각이 있고 고민이 깊은 사람이 적지 않을 텐데, 정말 (냉면이 아니라)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나하기사 역사상 최악의 시대착오 정권이 아직도 40%대 지지율이 나오는 참담한 현실 앞에 나 같은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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