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 (정대영)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13.11.27 11:25 의견 0

-송현경제연구소 정대영-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
1.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 관련 주요 논의
2.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내용
3.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
송현경제연구소
소 장 정 대 영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
우리나라 금융감독 체계는 1997년말 IMF 금융위기 와중에서 급하게 개편되어 현재의 기본 골격을 갖추었다. 한국은행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의 4개 권역별 감독기관이 민간 공공조직인 금융감독원으로 통합되고 이를 통할하는 공무원 조직인 금융감독위원회(현재 금융위원회)이 설치됨으로써 이원화된 구조가 되었다. 설립 시에는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감독기구 설치 등에 관한 법률」제15조 제2항에 의거 예산·회계 및 의사관리기능의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무원(20명 이내)만 둘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나았으나 1999년 5월 24일 동 조항이 삭제되고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서 금융감독위원회의 공무원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 2008년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위원회로 명칭이 바뀌고 금융정책업무까지 수행하는 정부 부처화 되면서, 금융감독 조직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완전히 이원화되고 서로 책임을 미루는 구조가 되었다.
한편 세계 주요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존 금융감독 방식과 체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많은 개혁이 이루어 졌다. 한국도 이원화 비대화 등으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현 금융감독체계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 한국 금융감독 당국은 책임성, 중립성, 투명성, 전문성 등 감독당국이 구비하여야 할 기본 덕목을 거의 갖추지 못한 모습이다. 이러한 금융감독 체계가 갖는 문제점이 신용카드 사태, 상호저축은행 사태, 외환은행 편법불법 매각 사태, 동양증권 시태 등과 금융산업의 전반적인 낙후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이후 세계의 금융감독 관련 주요 논의내용과 미국, 영국, EU의 감독체계 개편내용을 살펴보고 한국의 금융감독체계 개편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 관련 주요 논의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는 중앙은행에 의한 물가안정과 금융감독당국에 의한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미시건전성)이 유지되고 시장규율이 잘 작동하면 국민경제의 안정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2007년 상반기까지 세계적으로 물가안정 기조가 유지되고 대형은행을 포함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양호하였고 세계 주식·채권·외환시장도 잘 작동되고 있었다. 특히 은행부문은 2004~2006년간 수익성과 자본상태가 수십년간 유례없이 양호하였으며 은행의 도산가능성에 대한 시장평가인 CDS(Credit Default Swap) 프리미엄도 2007년 상반기까지는 낙관적 수준이었다.
<그림>
세계 주요은행의 CDS 프리미엄 추이
여기에다 대부분 국가는 금리중시 통화정책을 채택하고 있어 물가안정에 따라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금융기관들은 금융시장에서 필요 자금을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초부터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모기지의 채무불이행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금융기관의 부실이 확산되었다. 처음에는 미국의 모기지전문 금융기관과 중소형은행, 서브모기지관련 투자가 많았던 헷지펀드가 부실화되었다. 2008년 들어 세계 5대 투자은행의 하나인 베어스턴스가 도산한데 이어 8~9월에는 세계적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의 도산과미국 국영모기지 금융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실질적인 도산으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었다. 이어 미국의 Citi 등 주요 상업은행, 초대형 보험회사인 AIG, 영국의 RBS, 독일의 코메르츠뱅크와 몇몇 주립은행, 벨기에 Fortis은행 등 주요 선진국의 대형 금융기관이 도산하거나 부실화되었다.
그리고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이 확산되어 시장금리는 급등하고 정상적인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 실물경기도 각국의 소비위축, 투자부진과 함께 세계 교역이 급감하여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에서 마이너스 성장과 함께 실업률이 급증하였다. 1929년 대공황 이래 세계 최대의 금융경제위기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물가안정 유지만으로 금융안정과 국민경제의 안정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이에 따라 개별기관의 건전성인 미시건전성과 함께 국민경제 전체측면에서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달성할 수 있는 거시건전성 정책과 감독이 새로운 정책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거시건전성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BIS 등을 중심으로 조금씩 연구가 이루어져왔으며 최근에 들어 정책수단, 정책수행 주체 등 거시건전성관련 여러 분야가 세계 주요 중앙은행과 국제기구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주제의 하나가 되고 있다. 거시건전성은 <표> 미시건전성과 거시건전성 비교에서 보듯이 미시건전성과는 정책목표, 위험인식, 정책수단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표>
미시건전성과 거시건전성 비교
미시건전성
거시건전성
최종목표
금융소비자보호
성장등국민경제손실최소
정책목표
개별금융기관의건전성유지
금융시스템의안정성유지
위험의인식
위험을외생적인것으로보고경기등공통충격은주어진조건으로인식
위험을내생적인것으로보고공통충격도위험요소의하나로인식
정책수단
자기자본규제, 충당금적립기준등개별금융기관의건전성규제수단
건전성규제수단이외에 LTV비율규제등신용조절정책, 예금보호제도,통화신용정책수단등
다음은 금융감독과 규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폭넓은 감독과 규제강화 방안에 대한 논의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금융이 위험한 산업이기는 하나 위험관리기법의 발전과 시장의 효율성을 고려할 때 자율성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는 위험관리기법이 발전하더라도 금융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위험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시장실패는 예외적인 현상이라기보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주도하게 되었다.
2008년 이후 논의되고 있는 금융규제강화의 주요 내용은 바젤(Basel)Ⅲ의 도입과 함께 금융기관 직원 성과보수체계 개편, 파생상품거래의 규제 및 투명성 제고,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에 대한 추가적인 자본규제, 신용평가기관 운용방식 개선 등이다. 바젤Ⅲ는 기존 위험중시 자기규제인 바젤Ⅱ에 자기자본 질(quality)의 강화와 함께 유동성 규제, 레버리지 규제, 경기대응적 추가자본(완충자본) 규제 등 거시건전성 규제의 개념이 추가된 새로운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체계이다. 바젤Ⅲ는 2010년 기본골격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표>
바젤(Basel)··비교
2.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내용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다. 첫째는 중요성이 커진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정책 등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직체계의 구축이다. 두 번째는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금융감독당국의 책임성·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체계를 개편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금융감독체계 개편내용은 나라마다 상이하나 영국은 한국과 같이 1998년 중앙은행으로부터 은행감독원을 분리하여 통합감독기구를 설치하였으나 이번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체계를 대폭 개편하였다. 우리의 방향 설정에 참고할 만하다.
(영국)
영국은 1998년 설립된 통합감독기구인 금융감독원(FSA; Financial Supervisory Agency)를 해체하고 중앙은행에 거시건전성 정책권한과 미시건전성 감독권을 모두 부여하는 법률안을 확정하여 2013년 4월 시행하였다. 영국의 전면적인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시 영국 금융시스템이 붕괴된 데에 대한 반성에 기인한 것이다. 최종대부자 기능을 갖고 국제금융과 금융시장, 거시경제 등에 대한 전문 인력이 풍부한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에 거시건전성, 미시건전성 감독기능을 모두 부여함으로써 책임성·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영국의 은행연합회 등 민간은행 쪽에서도 동 개혁안이 런던의 글로벌 금융센터로서의 위상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적극 지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은 먼저 거시건전성 정책을 담당한 FPC(Financial Policy Committee)를 신설하여 영란은행내의 MPC(Monetary Policy Committee, 우리나라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위상으로 설치할 계획이다.FPC는 영란은행 6인(총재<의장>, 부총재 3인, 부총재보 2인), 외부인사 6인(소비자보호기구인 FCA의 CEO, 재무부 인사, 재무장관 임명위원 4인) 등 12인으로 구성된다. FPC는 시스템리스크 관리, 신용버블 가능성 점검 및 대응책 마련, 거시건전성 정책수단 개발, 금융안정 상황에 대한 평가 및 영란은행 금융안정보고서 승인 등을 담당한다. 또한 PRA(미시건전성 감독기구)와 FCA(소비자감독기구)의 상위 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의 시행을 권고하거나 지침을 내릴 수 있다. 아울러 규제가 과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한 금융산업계의 우려를 감안 장기적인 경제 성장세를 저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성도 부여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존 금융감독원(FSA)은 개별 금융기관의 미시건전성 감독을 담당하는 PRA(Prudential Regulatory Agency)와 소비자 보호 및 시장감독을 담당하는 FCA(Financial Conduct Agency)로 분할된다.
PRA는 운영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영란은행의 하부기구(subsidiary)로 설치된다. 의사결정조직으로 이사회 의장은 영란은행 총재가 담당하고, CEO는 신설되는 영란은행의 건전성규제담당 부총재가 겸임하게 되어 있다. 이사회 위원은 영란은행 금융안정담당 부총재, FCA의 CEO, 외부 전문위원 4인(영란은행 총재가 정부의 동의를 얻어 임명) 등이다. PRA는 은행, 보험회사, 주택대부조합 등 금융기관의 미시건전성 규제를 담당한다. 즉 개별 금융기관의 안정성 및 건전성 유지를 위한 검사와 감시 적기 시정조치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소비자보호·시장감독을 담당하는 FCA는 독립기관(independent agency)으로 설치하고 금융기관의 검사비용(fee)으로 운영된다. FCA는 은행, 보험회사, 투자회사, 금융브로커, 펀드매니저 등을 대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시장감독 및 규제, 금융기관 영업행위 규제, 시장남용 행위에 대한 각종 민·형사적 조치업무를 수행한다. 금융시장의 효율성과 금융소비자의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공정거래청(Office for Fair Trading)에 부여된 권한을 FCA에도 부여하여 공정경쟁 촉진업무도 수행한다. 또한 금융소비자 보호와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금융기관의 일부 금융상품의 취급을 금지하거나 일정기간(최대 12개월)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도 부여되어 있다. CEO 및 이사회 위원은 재무장관이 상무부 등과 협의하여 임명한다. 영국과 비슷한 통합감독기구를 운영하던 벨기에도 영국을 벤치마크하여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중이다.
<그림>
영국의 금융감독 체계
(미국)
미국의 금융감독 체계는 미연준(중앙은행),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통화감독청(OCC), 예금보험공사(FDIC),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연방보험국(Federal Insurance Office),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연방주택금융청(FHFA), 신용조합감독청(NCUA) 그리고 주정부 금융감독기구가 금융감독업무를 분담하는 복잡다기한 제도이다. 미국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도 연방보험국과 금융소비자보호국의 신설 등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분권·분산제도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금융안정과 거시거전성 정책에 대해서는 통일적인 정책의 수립과 집행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제도를 정비하였다. 이를 위해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금융시스템 안정성 제고를 위해 거시건전성 감독 및 정책에 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 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를 신설하고 미연준의 거시건전성정책 집행권한의 확대와 미시건전성 감독기능의 일부 강화를 추진하였다. 금융안정감시위원회는 합의제 의결기구로 재무부장관이 의장이고 연준의장, SEC, CFTC, OCC, FDIC, FHFA, CFPB, NCUA 의장 등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융안정감시위원회는 연준, 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 등 감독기구간의 업무조정 및 분쟁해결,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s)의 지정, 중요 결제시스템 및 지급결제활동 지정, 시스템리스크 평가, 금융시스템의 잠재위험 포착 및 대응전략 마련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금융안정위원회의 보좌기구로서 미재무부 내에 금융조사국(Office of Financial Research)을 신설하여 시스템리스크 파악을 위한 정보수집 및 분석업무를 담당토록 하고 개별 금융기관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권을 부여하였다.
다음으로 미연준의 거시건전성 및 미시건전성 감독기능 강화와 관련해서 첫째, 금융안정감시위원회가 결정한 시스템적으로 중요 금융기관(SIFIs)에 대한 건전성 관련 규정 제정권과 검사권이 부여되었다. 둘째는 중요 지급결제시스템도 금융안정감시위원회가 지정하면 연준이 운영기준을 제정하고 해당 감독기구와 공동검사 등을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 셋째는 신설하는 금융소비자보호국 등을 연준 내에 설치하고 금융소비자보호국은 소비자보호규정의 제정과 은행, 신협 등 금융사업자에 대한 임점검사 및 제재권한을 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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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금융감독 체계
(유럽연합 및 독일)
유럽연합은 2010년 각국에 분산되어 있는 금융감독기능의 조화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EU단위의 유럽금융감독시스템(ESFS, European System Financial Supervision)과 3개 권역별 금융감독기구를 설치하였다. 유럽 은행감독원은 런던에, 유럽 증권감독원은 파리에, 유럽 보험연금감독원은 프랑크푸르트에 설치하였다. 3개 EU차원의 금융감독기구는 현재 각국 감독당국의 협의조직 성격이지만 장기적으로 실행력있는 실질 금융감독기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와 함께 유럽연합은 EU차원의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유럽시스템리스크위원회(ESRB, European System Risk Board)를 설치하여 2011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ESRB는 EU전체 또는 개별 국가의 시스템리스크를 분석 평가하여 위험요인에 대한 경고와 함께 회원국에 대해 필요한 정책 권고를 담당한다. 또는 ESRB는 IMF, FSB(Financial Stability Board)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업무도 수행한다. ESRB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투표권이 있는 위원은 ECB총재, 부총재, 27개 EU회원국 중앙은행 총재, EU집행위원회 위원 1인, 유럽은행감독원장, 유럽보험연금감독원장, 유럽증권감독원장, ESRB산하 기술지원위원회의장 및 부의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SRB는 유럽중앙은행(ECB)과는 별도의 기구이나 ECB총재가 ESRB의장을 겸임하고 ECB 소재지인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하면서 ECB의 행정적 지원을 받게 되어 있다. 또한 투표권있는 위원의 대부분이 ECB와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금융안정, 시스템리스크에 대한 판단과 정책권고의 업무를 중앙은행 기본기능의 하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EU의 거시건전성 감독 체계
독일은 2009년 9월 새로운 정부의 출범 이후 세계 금융위기 대응방안의 하나로 영국과 같이 금융감독원(BaFin)을 중앙은행(독일연방은행)에 통합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집권당(기민당)의 당시 선거 공약이기도 하였다. 현재 독일감독체계는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 인허가 등 주된 금융감독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금융기관 임점검사, 건전성 분석 등 일상적 감독업무는 독일연방은행이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금융감독원과 연방은행이 분담하는 구조이다.독일연방은행의 금융감독 검사담당 인원은 총 1,000명(본점 200명, 지역본부 800명)이고 금융감독원은 총 420명 정도로 추정되어 실질적으로는 연방은행의 업무비중이 더 큰 셈이다.
독일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흡수 통합되는 금융감독원의 반발 때문이 아니라 연방은행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진전되지 않고 현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연방은행은 금융감독기능을 확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연방은행 독립성이 손상 받지 않아야 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010년 4월 연방은행 부총재는 “연방은행은 금융감독의 전권을 추구한 적이 없으며 금융감독원이 연방은행에 통합되면서 연방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감독기구 조정방안에 찬성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공식 발표하였다.
따라서 독일정부는 2010년 12월 현 금융감독체계의 골격은 유지하면서 연방은행의 금융안정기능을 강화하는 다음과 같은 개편 원칙을 발표하여추진 중이다.
첫째, 유럽시스템리스크위원회(ESRB)내에서 독일 연방은행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연방은행의 금융안정 및 거시건전성 정책기능을 적극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연방은행은 관련 자료의 지속적 수립·분석·평가를 통해 시스템리스크를 항시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연방은행과 금융감독원간의 책임을 명확히 하도록 거시건전성 정책과 미시건전성 감독의 경계를 구분하고 양기관간 충분한 정보교환이 보장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금융감독원의 중립성 강화를 위한 내부조직 개선,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설치 검토, 연방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전문검사인력 확보 등도 포함된다.
독일 금융감독체계 논의과정에서의 큰 시사점은 금융감독권을 서로 차지하려는 기관 이기주의가 없다는 것이다. 소위 우리나라에서 성행하는 밥그릇 싸움이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각 기관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여기에는 금융감독권이 이권이 되지 않는 감독 검사 방식과 투명한 사회풍토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3.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주요 선진국의 움직임과 같이 첫째,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 관련업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둘째, 현재의 금융감독기구를 어떻게 개편하여야 책임성·투명성·전문성·중립성이 제고될 것인가가 핵심과제이다.
(금융안정 및 거시건전성 업무 수행체계 수립)
한국의 금융안정, 거시건전성 관련업무의 핵심 관련기관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3개 기관이다. 3개 기관 간 금융안정 관련업무가 회색지대로 남아 있어 권한을 행사할 때는 서로 나서겠지만 책임을 져야할 때는 서로 회피하기 쉬운 구조이다.
먼저 한국은행은 2011년 12월 시행된 개정 한국은행법에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조항(제1조 제2항)이 신설되어 금융안정 관련업무 수행에 조그만 법적 근거가 생겼다. 동 조항 신설 이전에는 한국은행은 금융안정업무를 최종대부자 기능에서 나온 중앙은행의 태생적 책무로 보고 법과 관계없이 금융안정보고서 발간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다음으로 금융위(금감원)은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제1조 “이 법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설치하여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보하여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를 근거로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 정책 관련업무를 자신의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획재정부는 외국환거래법에 의한 외환시장 안정책임과 공적자금 투입을 위한 예산권 등을 근거로 금융안정 관련업무를 부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결국 한국은 현실적으로 금융감독당국인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가 미시건전성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 관련업무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체계이다. 이것은 미국, 유럽 등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형태일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상호저축은행의 PF대출 부실화도 찾아내지 못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금융감독당국이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까지 책임을 지는 우스꽝스러운 구조이다.
우리나라도 금융안정, 시스템리스크, 거시건전성 정책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각 기관의 기본 기능과 선진국의 사례를 감안하여 기관 간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 책무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 정책 책무를 기관 간 명확히 하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금융감독원이 독립기구로 있었던 과거의 영국 사례<표: 영국의 3개 기관간 금융안정업무 분담구조 참고>와 같이 한국은행,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간 금융안정업무를 분담하는 방식이다. 영국은 3개 기관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 금융안정 관련책무를 구분하였다.
<표>
영국의 3개 기관간 금융안정업무 분담구조
영란은행
전반적인 금융시스템 안정성 유지
금융감독청
개별 금융기관 인허가 및 건전성 감독
재 무 부
전반적인 감독제도 구축, 공적자금 투입
둘째는 미국(FSOC)와 유럽연합(ESRB)의 사례와 같이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 정책을 총괄하는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관 간 협조체계 구축이 쉽지 않다는 점, 종전 영국 방식이 결국 실패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둘째 방안이 현실 적합성이 높다. 중앙은행 주도의 유럽연합의 ESRB와 재무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국의 FSOC를 벤치마크하여 우리나라에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제정과는 별도로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간의 진정한 소통이 있어야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 정책업무의 원활한 수행이 가능하다.
(금융감독기구 개편 방안)
한국의 금융감독기구는 금융감독업무를 중요도에 따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이는 책임을 서로 떠넘길수 있는 비정상적·기형적 조직이다. 여기에다 업무성격이 다른 금융정책, 금융안정, 거시건전성 책무를 담당하고 있다. 능력에 비해 과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이다. 영국의 신금융감독체계에서 미시건전성 감독과 거시건전성 정책을 모두 중앙은행의 책무로 하였지만 두 가지 업무는 구분된 별도의 기구에서 나누어 담당한다.
신용카드 사태, 상호저축은행 부실화 등 우리나라의 많은 감독 실패는 금융감독 담당직원의 문제도 있지만 중립성·책임성이 결여된 조직체계의 잘못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 그리고 금융감독 조직의 문제점과 개편 방향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지적과 논의가 이루어왔다. 참고할 수 있는 외국의 사례도 많다. 따라서 합리적인 판단과 추진력만 있으면 금융감독기구 개편은 어렵지 않은 과제이다.
우리나라의 금융감독기구와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개혁할 내용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통합하여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일조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단일 금융감독조직은 모든 금융기관의 인허가와 제재를 포함,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미시건전성) 유지를 책무로 한다. 금융정책기능은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 정책기능은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화된 별도의 위원회를 설립하여 담당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방향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과 부합된다.
그리고 단일 금융감독조직은 공무원 조직으로 할 것이냐, 민간 조직으로 할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금융감독조직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서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같은 민간 공공조직으로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리고 영국의 사례와 같이 중앙은행의 산하조직으로 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는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관료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만약 일본과 같이 공무원 조직으로 단일화하는 경우 어떻게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법적·제도적 장치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은행과 같이 중립성에 대한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는 조직도 실질적인 중립성 확보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신설되는 공무원 조직의 중립성 보장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으로 단일화된다 하더라도 중립성도 책임성도 없는 현재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이원화된 조직체계보다는 덜 나쁠 것같다.
둘째, 한국의 금융감독당국은 업무량이 너무 많아 적정한 수준으로 줄여 주어야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단일 금융감독조직은 금융정책과 금융안정 기능을 제외하더라도 은행, 금융투자회사, 보험사, 신용카드사, 서민금융기관, 자산운용사, 금융지원기관, 헷지펀드까지 수많은 금융기관의 설립·폐쇄·합병 등과 관련된 인허가, 건전성 감독 및 검사, 금융기관 및 임직원 제재, 시장 감시, 소비자 보호 등 단일 기관이 제대로 수행하기에는 너무 많은 업무를 담당한다. 금융기관의 신설 등을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금융감독당국의 과도한 업무 부담과도 일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소비자 보호업무는 영국의 사례와 같이 단일 금융감독조직에서 분리하여 이를 담당할 별도의 독립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금융위원회의 산하조직으로 되어 있어 실질적인 분리효과가 없고 금융감독조직 체계만 복잡하게 할 뿐이다. 신설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지배구조는 외국의 사례를 감안하여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셋째, 금융(감독)위원회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 위원의 구성과 업무방식을 조정하여야 한다. 현재 금융위원회 위원은 당연직 위원 4인(재정경제부 차관, 금융감독원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한국은행 부총재)과 금융위원장이 추천하는 2인(상임), 상공회의소 소장 추천 1인(비상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회 구성상 업무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당연직 위원과 비상임 위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금융위원들이 금융위원장의 영향력 하에 있다. 따라서 금융위원회는 업무의 중립성, 다양한 의견 반영 등 위원회가 갖는 긍정적 역할보다는 위원장의 책임만 희석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선방안으로는 당연직 위원을 2인으로 축소하고 금융(감독)위원장 추천도 1인으로 축소하고 나머지 위원은 당연직 위원에서 빠진 기관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을 추천기관으로 하여 전원을 상임으로 하여야 한다.
넷째, 금융감독업무의 내용과 성격을 바꾸는 일도 금융감독당국이 제 역할을 하고 금융감독조직을 손쉽게 개편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권한은 많고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책임도 지지 않는 현재의 금융감독을 반대로 권한은 적고 책임질 일은 많은 힘든 일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기관 설립의 단계적 확대, 업무규제의 완화, 실질적인 건전성 검사 실시 등과 같은 감독 및 규제 방식의 전면적 개혁이 필요하다.이와 같이 금융감독업무의 내용과 성격이 바뀌면 금융감독권을 서로 가지려는 조직 이기주의가 많이 사라질 것이고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국민경제가 잘되는 방향으로 쉽게 추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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