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와 독일은 퍼주고 놀고도 왜 안 망할까?(1) (정대영)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13.05.03 19:03 의견 0

-1985년 프랑스, 내가 보기엔 곧 망할 나라였다.-

 

1장 프랑스와 독일은 퍼주고 놀고도 왜 안 망할까

1. 1985년 프랑스, 내가 보기엔 곧 망할 나라였다.

1985년 여름부터 1년 남짓 프랑스에서 살아본 적이 있었다. 서울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알라스카 앵커리지에서 잠시 쉬었다가 북극을 넘어 파리 사를르 드골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24시간이 소요됐다.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으며 첫 번째 비행기 탑승이었다. 오랜 비행후 아침에 사를르 드골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본 파리는 참으로 아름답고 잘 관리된 도시였다. 그리고 그 날 개선문에서 꽁코르드 광장으로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의 산책은 6월의 강한 태양과 녹음이 어우러져 잊지못할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파리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르면서 더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라는 나라는 나의 경제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이 퍼주고 일 적게하는 나라도 있나, 시간의 문제이지 프랑스 경제는 조만간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7~8월 여름 휴가기간중에는 공무원을 포함, 거의 모든 근로자가 한 달씩 휴가를 가서 나라 전체가 최소한의 업무만 이루어진다. 장관, 대통령도 비슷하게 휴가를 즐긴다. 거기에다 음식점, 미용실, 세탁소 등 동네 자영업자도 한 달씩 문을 닫고 휴가를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프랑스의 여름은 바캉스(Vacance)라는 말대로 나라의 모든 것이 비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은 휴가와 여유뿐 아니라 근로자의 파업도 일상화되어 있어 일은 언제 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일반 기업뿐 아니라 철도, 지하철 등 공공부문도 수시로 파업을 하고 경찰, 교사 등 공무원도 파업을 한다. 심지어 판사도 재판을 못하겠다고 파업을 한다.

또한 일을 대충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받는 사회보장 혜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애가 태어나서 100일이 지나면 이용할 수 있는 탁아소에서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거의 무료이다. 잘 갖추어진 의료보험, 임신·출산관련 비용에 대한 철저한 지원, 양육비 지원,주거비 보조, 실업수당, 노인연금 등 정신차리고 잘 챙겨야 주는 혜택을 다 받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복지혜택은 프랑스 국민뿐 아니라 유학생을 포함, 합법적으로 프랑스에 입국한 외국인에게도 거의 똑같이 주어졌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차별적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꽤 있지만 프랑스가 자유·평등·박애를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주류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더욱이 1985년 필자가 경험한 어마어마한 사회보장 혜택들은 1970년대 중반에 비해 많이 축소된 것이라고 하여 다시 한번 놀랐다. 이렇게 국민들이 일은 조금하는 데도 많은 복지혜택을 주고 있는 프랑스는 경쟁력 약화와 재정 파탄으로 몇 년안에 나라가 거덜날 것이 확실해 보였다. 세상에 이런 나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첫 번째 해외생활을 마치고198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86년 한국은 3저 호황으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때였다. 당시 필자의 치기어린 생각으로 빠르면 10, 늦어도 20년이면 한국이 프랑스를 경제적으로 앞설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필자 이외에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지 2000년경이면 한국이 영국이나 프랑스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글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다음으로 벨기에에서 1991년부터 1994년까지 3년 정도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벨기에는 인구가 1,000만 명 정도의 소국인 데다 한 나라의 공식언어가 네덜란드어(55%), 불어(44%), 독어(1%) 3개로 네덜란드어와 불어 사용 국민간의 갈등, 복잡한 행정절차 등으로 정치가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인 국가이다. 그럼에도 1인당 국민소득 등 생활수준은 프랑스, 독일과 차이가 별로 없고 국민경제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의료, 교육,연금 등 사회보장제도가 프랑스와 비슷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근로자의 휴가 일수는 프랑스와 거의 차이가 없었으며, 파업은 정치불안과 맞물려 프랑스보다 더 많은 것 같기도 하였다. 곧 망할 것 같았던 프랑스는 1994년 두 번째 유럽생활이 끝날 때까지도 잘 살고 있었으며, 좁은 국토면적 정치불안 등 프랑스보다 여건이 훨씬 나쁜 벨기에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경제적, 문화적 삶을 오래전부터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은 죽을 둥 살 둥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일해도 못사는데 비해 그렇게 퍼주고 일 적게하는 유럽 나라들이 잘 사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유럽 경제는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 갖고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 가을부터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에서 3년 반 정도 살게 되었다. 독일은 2007년 당시 세계 최대의 수출대국이며 일본과 함께 선진국중 최고의 제조업 경쟁력을 갖춘 국가이다. 라인강의 기적 등 그간 독일에 대해 들은 바가 많아 독일은 프랑스, 벨기에와 무엇인가 크게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에 가보니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프랑스보다 역사가 오래됐고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 이상이었다. 독일도 교육, 의료, 양육비 보조, 주거비 보조 등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프랑스와 비슷하고 실업보험의 지급률이나 지급기간 등이 더 잘되어 있다. 특히 실업보험이나 퇴직연금 등의 혜택이 없는 경우라도 기본적인 의식주와 교육, 의료 등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최저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인간다운 생활은 국민의 권리이고 이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로 보고 있는 것이다. 독일 근로자의 휴가와 파업도 통계적으로는 프랑스보다 적을지 모르지만 피부로 느끼기는 차이가 없었다. 철도, 지하철, 버스 등의 파업은 독일에서도 수시로 있어 큰 뉴스거리가 안되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인의 장점이라고 알려진 철저함이나 정확성도 많이 무뎌진 것 같다. 필자가 어렸을 때 들은 독일관련 이야기중의 하나가 독일 기차는 정확히 시간을 지켜 다니기 때문에 기차 다니는 것을 보고 시계를 맞춘다는 것이었다. 3년 반 동안 독일에서 기차를 많이 탔지만 정시에 도착하는 기차보다 연착하는 기차가 더 많았다. 전화요금이 잘못 청구되거나 부정확한 은행업무 처리도 가끔 발생한다.

이러한 독일 경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해 있었으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를 휩쓸던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한계와 심각한 폐해가 드러남에 따라 낙관적인 전망이 커지고 있다. 독일도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일부 금융기관이 부실화와 함께 2009년에는 마이너스 성장 등으로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안정된 사회보장시스템과 굳건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잘 버텨내 실업률이 20078.4%에서 20097.5%로 낮아지고 2010년부터는 성장률도 높아졌다. 실업률은 1990년대 중반이후 최저 수준인 5%대로 하락하여 일부 지역은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다만2011년부터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부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재정위기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는 독일경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남유럽 국가의 취약성과 유로라는 단일통화의 제도적 문제가 주요인이므로 장기적으로 독일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극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등 일부 남유럽 국가의 국가부도나 유로존 탈퇴 또는 최악의 경우 유로존이 해체되어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는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서유럽 경제는 쉽게 망할 것 같지는 않다. 이들 서유럽 국가는 20세기에 들어 이미 발전된 국가였고1·2차 세계대전을 겪고도 다시 선진국이 되었고 필자의 눈에 바로 망할 것 같이 보이던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건재하고 있다. 서유럽 경제가 망한다면 아마 자본주의의 미래도 없을지 모른다.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경제는 미국식 시장만능주의, 금융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준 면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의 주요 경제지표 추이

1980

1990

2000

2010

2011

1인당

GDP

(달러)

독일

10,750

19,593

23,020

40,198

43,742

프랑스

12,856

22,003

22,545

40,809

44,008

벨기에

12,693

20,403

22,791

43,379

46,878

수출규모

(억달러)

독일

1,860

4,252

6,298

15,362

..

프랑스

1,477

2,673

3,822

6,519

..

벨기에

683

1,359

1,818

3,755

..

실업률

(%)

독일

3.4

6.2

8.0

7.1

6.0

프랑스

6.3

9.0

9.1

9.8

9.7

벨기에

8.3

6.6

6.9

8.3

7.2

자료 : World Bank, IMF

2. 프랑스에서 경험한 사회보장 혜택

유럽에서 살아본 세 번중 사회보장 혜택을 실제로 받아본 경우는 1985 ~1986년 프랑스에서 대학원 학생으로 살 때였다. 벨기에와 독일에서 근무할 때는 한국과의 이중과세 방지협정에 따라 현지에서 세금을 내지 않았고 사회보장 혜택도 받지 못했다. 프랑스 거주시에는 일을 할 수 없는 학생 신분인 데다 거주기간이 짧아 접해본 사회보장 혜택이 다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 받았던 사회보장 혜택이 파리의 아름다움보다 더 충격적이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첫째, 대학교육과 관련된 복지 혜택은 내·외국인 모두 대학원도 학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1985년 당시 1년 대학원 등록금이 학생회비, 체육관 이용료, 500() 복사기 이용권 등을 포함 총 4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기숙사비와 학교 식당 밥값은 정부 보조 등으로 후진국이던 한국의 유학생 입장에서도 매우 저렴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다.특히 학교 식당의 식사는 프랑스 중산층 가정에서 제대로 차려 먹는 점심·저녁식사를 기준으로 제공하고 있어 맛도 괜찮고 술만 없는 양식 풀코스였다. 전식, 샐러드, 스프, 스테이크 등 본요리, 후식 등으로 구성되어 양이 아주 넉넉하였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는데도 음식을 모두 받으면 다 먹기 어려워 한 가지 정도는 빼고 받았다. 여기에다 빵은 무제한 공급되어 일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저녁식사때 빵을 많이 받아 다음날 아침을 해결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둘째, 아동과 관련된 복지혜택은 거의 완벽할 정도였다. 당시 딸(3)과 아들(1)이 있었는데 큰 애는 유치원(ecole maternelle), 작은 애는 탁아소(cliche)에 다녔다. 유치원과 탁아소는 붙어있었고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 정도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비용은 무료였고 유치원과 탁아소에서 점심을 먹이고 오후에는 낮잠까지 재워서 집으로 보내주었다. 유치원과 탁아소는 가정주부의 육아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주었다.

또한 애들에게는 매월 양육비가 지원되었다.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유학생에게는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자녀양육 보조금은 둘째에서 셋째 애로 갈수록 지원금액이 급격히 커져 애가 셋이면 양육보조금만 갖고도 한 가족이 기초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애가 다섯이면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할 정도라고 하였다. 자녀양육 보조금은 소득 수준, 재산 수준과 무관하게 지원되며 외국인도 합법적으로 프랑스내에 입국한 시점부터 지급되었다. 당시 애가 셋이 있는 한국상사 주재원이 프랑스에 온지 1년쯤 지나 자녀양육비 보조를 신청하였는데 입국 이후 자녀 세 명의 양육비가 한꺼번에 나와 소형차 한 대 값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음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복지제도는 더 완벽하여 주변의 결혼한 유학생들이 많은 혜택을 받았다. 언제 임신했는지, 프랑스내에서 임신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임산부의 진료, 출산관련 병원비는 무료였다. 임산부에게는 정해진 진료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뱃속의 태아를 잘 키우라고 태아양육비(임신보조금)도 지원된다. 또 출산 직전에는 유모차, 애기 옷 등 신생아 용품을 살 수 있는 비용이 지원되었다. 또 신생아가 특이 체질이어서 고가의 특수 분유만 먹어야 되는 경우(당시 한국 유학생 부부의 실제 사례) 분유 값도 지원대상이다.

여기에다 금전적 지원은 아니지만 애들과 관련된 흥미있는 경험이 있다. 지역 사회보장 부서에서 내게 어떤 카드가 발급되었는데 불어 실력이 짧아서인지 어디다 쓰는 카드인지 알 수 없었다. 프랑스 친구에게 보여주니깐 내가 어린애가 둘이기 때문에 애들을 동반하고 역이나 박물관 등과 같은 공공장소에 간 경우 줄 설 필요없이 맨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카드라는 것이다. 즉 새치기 허용카드인 셈이다. 돈 들이지 않으면서 실질적 혜택을 주는 좋은 지원제도라고 생각된다. 한국도 도입하면 어떨까한다. 애가 있는 가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배려를 볼 때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애를 낳기만 하면 되고 기르는 것은 국가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지원 덕분으로 프랑스의 출산율은 1,000명당 13명으로 한국(9)보다 크게 높고 선진국중 거의 최고 수준이다.

셋째, 의료와 관련한 복지제도도 매우 훌륭했다. 프랑스의 거의 모든 국민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의료보험 가입자는 치과 일부, 성형수술, 1인용 병실 등을 제외하고는 무료이다. 외국인 유학생은 28세 이하인 경우 매우 저렴한 학생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당시 필자는 30세가 막 넘어 보험료가 꽤 비싼 일반 개인보험을 가입하여야 했으나 소득이 없고 애를 포함,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의료보험료를 국가에서 내주는 제도가 있어 실제 보험료를 내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았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아픈 사람이 치료받는 것은 기본권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의료보험과 돈이 없어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병원의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것을 의무로 보는 것 같았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아 프랑스 의료보험에 가입되기 전에 필자가 공부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심한 위경련이 생겨 대학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었다. X-Ray 촬영, 피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와 링겔 주사 등의 치료를 받고 하루를 병원에서 보냈다. 몸이 괜찮아지고 병원비 걱정도 되고 해서 퇴원을 서둘렀다. 담당의사는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니 더 병원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공부해야 할 것이 있다고 우겨 퇴원하였다. 담당의사는 개인 전화번호까지 주면서 다시 아프면 즉시 전화하고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퇴원을 위해 병원 1층 접수처(우리나라 병원과는 달리 1~2명만 있었다.)에 퇴원한다고 하니 알았다고 잘가라고만 하였다. 병원비가 걱정이 돼 프랑스 의료보험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접수처 직원이 의아한 눈초리로 보더니 입원할 때 집주소를 적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집으로 청구서가 갈 것이라 했다.퇴원후 프랑스에서 오래 산 한국인 유학생에게 물어보니 청구서가 오면 돈이 없어 병원비를 낼 수 없다고 써서 돌려보내면 된다고 하였다. 그 도시의 유학생들중에서 병원비를 내 본 사람이 었으니 나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병원비가 없어 병원을 전전하다 죽는 사람도 있을 때였는데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넷째, 주거비 보조제도로 주택임차료의 일정 비율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프랑스 거주시 학교 근처 민간주택 임대회사로부터 침실 2, 거실, 주방 등이 있는 서민아파트를 월세로 어렵게 얻어 살았다. 공공임대 아파트나 학생 아파트보다는 세가 조금 비쌌지만 임차료의 60% 정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부담이 크지 않았다. 임차료 보조(allocation lodgement)는 대상자의 소득과 거주지역, 지방정부의 재정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소득이 낮을수록, 비인기 지역일수록 지원 비율이 높다고 들었다.

이와 같은 임차료 보조제도 이외에 장기임차 보장, 임차료 인상률 제한, 엄격한 강제퇴거 조건 등 세입자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세입자 보호장치는 긍정적인 면이 많이 있지만 일부 부정적 영향도 있다. 대표적인 부정적 영향은 돈이 없는 사람이 민간 임대주택의 세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입자가 임차료를 미납한 경우에도 동절기나 세입자중 어린애나 노인이 있는 경우 등에는 강제퇴거가 어렵기 때문에 집주인이 세입자를 까다롭게 고른다. 프랑스에서 집주인은 앞으로 세를 얼마나 올릴까하는 생각보다 세입자가 세를 꼬박 꼬박 잘 낼 것이냐가 더 큰 관심꺼리이다. 집주인은 집이 비어있어도 외국인 유학생 등 돈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세를 잘 놓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1년 정도의 생활을 끝내고 임대주택 관리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니 관리인은 세를 제 날짜에 잘 내주어서 매우 고맙고 다시 프랑스에 와 살 일이 있으면 자기 회사의 임대주택을 다시 이용하란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사회보장제도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880년대 독일에서 비스마르크에 의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도입된 질병보험, 산재보험, 노령연금 등이 체계화된 사회보장제도의 시작이었다. 이어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유사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였고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유럽 사회보장제도의 황금기는 통상 1970년대 중반이었으며 1980년대 이후 조금씩 축소되면서 조정되고 있다. 필자에게 거대한 충격이었던 1985~1986년의 프랑스 사회보장제도는 이미 과거 좋은 때보다 많이 축소된 상태였다. 1986년 프랑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8,300 달러, 한국은 2,850 달러였으며 한국에서 복지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20111인당 국민소득은 프랑스 43,000 달러, 한국 21,000 달러로 한 나라의 복지제도 구축은 경제력의 문제라기보다 사회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고 나라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냐에 달려있다. 즉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미국식 모델,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 경쟁과 복지를 절충하는 서유럽국가식 모델중에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계속>

 

- 송현경제연구소장 정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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