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럽통합과 통화, 재정위기 (5) (정대영)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13.07.23 17:34 의견 0

- 2010년 이후의 유럽재정위기-

재정위기의 이해 재정위기에 앞서 외환위기와 은행위기의 개념을 알아본다. 외환위기는 환율 폭등, 환율제도의 붕괴, 외채상환 불능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1992년 유럽 통화위기와 한국의 1997년 IMF사태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은행위기는 은행 등 금융기관의 대규모 도산으로 자금중개기능이 마비되는 상태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 한국의 1997년 IMF사태 이후 금융 구조조정 과정이 이에 해당한다. 금융위기는 외환위기와 은행위기를 통칭하는 말이며 한국의 1997년 IMF사태는 외환위기와 은행위기가 복합된 금융위기였다. 재정위기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출이 재정수입보다 너무 많아 국민경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정부도 하나의 경제주체로 기업이나 가계와 마찬가지로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부채가 늘어난다. 재정위기는 늘어난 정부부채 등으로 인해 정부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정부지출과 국채원리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정위기는 구체적으로 정부채무의 상환정지(moratorium), 일부탕감(hair-cut), 만기연장, 이자율 재조정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재정위기는 한국에서는 건국이후 없었고 19세기 중반이후 강대국(선진국)에서도 거의 없어 금융위기와 달리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재정위기는 19세기 중반 이전까지 많은 나라에서 발생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남미, 아프리카 등 후진국에서 발생했다. 19세기 중반까지 많은 국가는 전쟁, 국왕의 사치와 낭비, 자연재해 등으로 정부지출이 크게 늘어나거나 수입이 크게 줄어 재정파탄 등 재정위기가 많이 발생했다. 이때까지는 일반적으로 국가의 신용도가 우량기업의 신용도보다 낮아 평상시에도 국가에 대한 대출금리가 우량기업에 대한 대출금리보다 높은 경우가 많았다. 현재와는 반대다. 지금은 재정위기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국가내의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우량하다해도 국가 자체의 신용도보다 높은 경우는 거의 없다. 국채 금리가 회사채나 금융채 금리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19세기 중반이후 이렇게 국가부도 등 재정위기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 것은 국가 체제가 잘 갖추어지고 국가 경제력이 커진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거의 대부분 국가에서 중앙은행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전통적으로 정부의 은행, 발권은행, 은행의 은행 등 3가지 핵심역할을 수행하는데 이중 정부의 은행기능으로 인해 정부는 재정수입 부족 시 중앙은행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20년대 이후 금본위제에서 관리통화제도로 넘어간 이후 국회 승인 등 내부적 절차만 충족시키면 정부의 중앙은행 차입은 얼마든지 가능하게 되었다. 금본위제하에서는 중앙은행의 화폐발행이 보유금 규모에 따라 제한되지만 관리통화제도 하에서는 중앙은행의 화폐발행의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과다한 차입은 하이퍼인플레이션 등 장기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재정위기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의 재정위기는 남미, 아프리카, 러시아 등 개발도상국이 차관 등 대외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는 외채위기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재정위기는 그리스사태에서 보듯이 금융위기 못지않게 경기 후퇴, 주가 폭락, 소득분배구조 악화, 통화가치 하락 등 국민경제에 많은 어려움을 가져온다. 재정위기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정부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하면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첫째,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가 확산되어 이것이 물가상승 기조를 불러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부채 증가는 그 자체가 통화 팽창의 요인일 뿐 아니라, 정부가 국채 상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정책을 사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등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조선 말 대원군 시절에 경복궁 중건 등으로 정부 빚이 많이 늘어나자 당오전, 당백전 등을 발행해 물가를 폭등시켰다. 둘째, 정부부채 증가는 금리 상승을 통해 투자 위축과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킨다. IMF와 BIS 등의 실증분석 자료에는 정부부채의 규모가 크거나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른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정부 부채가 커질수록 추가적인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재정정책의 운신 폭이 좁아진다. 이는 재정정책의 경기조절 기능을 약화시켜 경기 변동성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셋째, 정부부채 증가는 국가 신용등급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국채를 포함한 민간부문 발행 채권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상승시킨다. 이는 국가와 기업의 차입 비용 증가, 국가 신인도 저하, 투자자의 해외자산 선호, 자본유출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특징과 원인 1992년의 유럽 통화위기가 기존의 외환위기와 다르듯이 2010년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유럽 재정위기도 기존의 재정위기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첫째는 재정위기 국가가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이태리 등 1인당 국민소득이 3~4만 달러에 이르는 선진국이라는 점이다. 특히 아일랜드는 한 때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를 넘어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으려던 국가였다. 둘째, 정상적인 국가라기 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세징수 체계가 엉망인 그리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의 경제기초여건과 재정상황이 아주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태리는 정부부채, 재정적자, 경상수지 등이 영국, 일본, 미국, 동유럽국가 등과 비교했을 때 이들 국가만 재정위기에 빠져 들어갈 정도로 나쁘지는 않고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거나 더 양호한 상태이다. 1992년 유럽 통화위기 당시의 프랑스처럼 말이다. 셋째, 재정위기 국가가 모두 유로라는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국가이다. 즉 유럽 통화위기가 ERM의 제도적 요인과 관계있듯이 유럽 재정위기도 경제적 요인보다는 유로라는 단일통화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제도적 정책적 요인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넷째, 1992년의 유럽 통화위기와 다른 것은 투기세력과 공격방법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파생상품 출현 등으로 금융기법이 고도화되고, 금융의 국제화가 심화되어 투기세력과 방법을 찾아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수 있고 특정 투기세력이 없고 공격방식도 다양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가 확산되는 시기에는 영미계 자본이 무담보신용부도스왑(naked CDS)의 매입방식으로 공격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의 감독당국에서 조사한 결과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은 크게 4가지로 모아 볼 수 있다. 첫째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악화된 재정상황, 둘째 투자자의 변덕, 셋째 단일통화가 갖는 제도적 한계, 넷째 각국의 경제기초여건의 취약성이다. 첫째, 유럽 재정위기는 미국에서 촉발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후유증과 깊은 관계가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1929년 세계 대공황과 비견될 정도의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으나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의 제로 수준으로 금리 인하, 양적 완화를 통한 과감한 유동성 공급, 부실 금융기관 구제를 위한 어마어마한 공적자금 투입, 경기 후퇴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재정 확대 등의 정책으로 대처했다. 이러한 과감한 조치는 1929년 대공황을 경험삼아 이루어진 것으로 금융시장의 붕괴와 경기의 급격한 침체를 막을 수 있게 해주었다. 2009년 하반기부터 금융시장이 정상화되고 경기회복이 이루어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금융위기는 극복된 것이 아니라 정부부채에 의해 숨겨진 것이라는 생각이 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재정적자와 정부부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의문이 커지면서 경제의 기초여건이 나쁜 나라부터 국채금리 상승 등 차입여건이 악화되었다. 즉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이 국채를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발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2010년 이들 국가가 IMF와 EU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재정위기의 시작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전이되는 과정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 일본 심지어 우리나라까지 관계될 수 있다. 따라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이번 유럽 재정위기를 촉발시켰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둘째,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은 투자자들의 갑작스런 변덕(정신 차리기)이다. 1999년 유로라는 단일통화의 도입으로 유로존 가입 국가는 국채를 유로표시로 발행하게 되자 그리스, 포르투갈 국채의 환위험이 사라졌다. 독일 국채에 비해 두 배 이상 금리가 높았던 이들 나라의 국채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커졌다. 2007년 까지는 그리스 국채는 세계 투자은행 사이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고 인기 좋은 투자대상이었다. 즉 그리스 국채만 사놓으면 돈 버는 시기도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국채에 투자가 몰리면서 그리스 국채와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금리 격차)가 1%p 이내로 축소되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진행되면서 투자자들이 독일과 그리스 등의 국가는 경제기초여건에서 아직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갑자기 그리스 등의 국채를 외면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투자자들이 정신 차린 것이다. 투자자들의 급격한 행태 변화와 쏠림 현상은 1992년 유럽 통화위기 등에서 보듯이 항상 있는 것이다. 셋째는 유럽중앙은행과 유로라는 단일통화가 갖고 있는 제도적 요인으로 유럽 재정위기의 실질적 원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다른 나라 중앙은행과는 달리 법적으로 중앙은행의 기본기능 중 정부의 은행기능을 상당 부분 수행하지 못한다. 유럽중앙은행과 회원국 중앙은행은 EU협약과 각국 중앙은행법에 의해 각국 정부에 대출하거나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는 독일이 무분별한 정부차입으로 1920년대 단기간에 물가가 1조배 상승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중앙은행 제도를 다른 나라와 달리 운영했고 이러한 독일의 생각이 유럽중앙은행제도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로 회원국은 경제상황이 나빠져 국채를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발행할 수 없게 되면 재정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 국채를 정부로부터 직접 인수(직매입)할 수 없지만 시장에서는 매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유통되는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도 한계는 있다. 먼저 재정통합이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 재정위기국의 국가부도시 유럽중앙은행의 손실을 어떻게 메우느냐의 문제가 있다. 다음은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유통시장에서 매입하여 장기간 보유하는 것도 직매입과 경제적 효과가 비슷하다. 따라서 이것도 유럽중앙은행의 설립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넷째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국가가 경제기초여건이 취약하고 경쟁력이 없다는 것도 재정위기 원인의 하나이다. 그리스는 과다한 복지 지출, 제조업 경쟁력 약화 등도 일부 원인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정부패와 고소득자의 탈세로 국가의 재정시스템이 엉망이라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미국 케네디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의 두 번째 남편인 세계적 거부 오나시스가 그리스 사람이고 이런 부자가 많은데도 그리스에서 연간 소득세를 백만유로(15억 원) 이상 납부하는 사람이 7명이라고 한다.(독일 금융계 인사에게 들은 이야기) 오죽했으면 독일에서 세무공무원을 그리스에 파견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아일랜드는 부동산 거품과 은행 부실, 스페인도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 지방 저축은행 부실 등이 재정악화의 주요 원인이다. 포르투갈은 인적자본 취약, 비정규직 과다, 이태리는 과다한 규제, 부정부패, 지역간 경제력 격차 등이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이러한 경쟁력 약화요인에도 불구하고 단일통화를 사용함에 따라 독자적인 금리정책이나 환율정책 등 정책수단이 제한되어 있다. 금리·환율정책 대신 재정 삭감이나 임금 동결 등의 정책을 사용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정치적 이유 등으로 시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 국가와 독일 등 EU 핵심국가와의 경쟁력 격차와 경제 불균형이 심화되고 이것이 재정위기의 원인이 된 것이다. 단일통화의 출범으로 남유럽국가는 1992년 통화위기와 같은 외환위기의 가능성은 없엤지만 대신 재정위기 가능성을 키운 셈이다. 전망 인간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어쩌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것일 것이다. 그래도 지나간 과거를 잘 설명하는 것보다 대략이나마 미래를 알아보는 것이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 항상 부정적인 전망만을 하는 미국 뉴욕대의 루비니교수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유로라는 단일통화는 존속할 수 없는 제도로 곧 유로존은 붕괴될 것이라는 전망을 해왔다. 그래도 유로존은 어렵지만 유지되고 있다. 루비니교수의 부정적 전망은 가끔 맞는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 죽듯이 언젠가 나쁜 결과도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년 7월초 신중한 폴 크루그만교수(미국 프린스턴대)도 늦어도 금년 말까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루비니교수의 부정적 전망은 항상 그러려니 하지만 크루그만교수의 전망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금년 말이면 4개월도 남지 않았다. 곧 유로존의 붕괴가 시작될 것인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유로존의 1차 전선이 무너지는 것으로 곧이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태리 등으로 전선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결정되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태리 등에서는 심각한 유로화 예금 인출 및 자본해외도피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여 은행들이 견뎌내기 어려울 수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유럽통합과정, 1992년 유럽 통화위기, 지금의 유럽 재정위기의 특징과 원인 등을 기초로 유로존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인간의 전망은 원래 잘 안 맞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믿지 말고 편하게 읽어주기 바란다. 누가 돗자리 깔고 재미있는 이야기한다고 보면 된다. 유로존의 붕괴 또는 해체 시나리오는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유로존을 탈퇴하여 자국통화를 사용하는 방안 ②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건전한 국가들이 유로존을 이탈하여 자국통화를 쓰거나 새로운 단일통화를 만드는 방안 ③ 1999년 단일통화 이전으로 돌아가 각국이 자국통화를 갖는 방안이다. 세상 일이 무엇을 새로 만드는 것 이상으로 정리해서 없애는 것이 더 어렵다. 단일통화가 오랫동안 많은 준비를 거쳐 도입되었듯이 단일통화를 해체하는 것도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신규 화폐 제조, CD기 자판기 등 화폐관련 기기 교체, 환전 등은 어느 나라나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은 비밀리 할수 없고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다. 자산·부채와 채권·채무의 재평가도 간단하지 않아 이와 관련한 많은 소송도 예상된다. 단일통화 도입은 사전 예고와 장기간의 환율안정 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채권·채무 관계상 분란의 소지가 없었다. 그러나 유로가 해체될 때에는 이와 같은 질서 있는 과정을 거치기 쉽지 않아 많은 분쟁이 예상된다. 시나리오별로는 유로존 가입국 모두 의견의 일치를 봐야하는 세 번째 시나리오가 단기적으로는 가장 가능성이 낮다. 가입국 모두의 의견 일치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 건전한 국가의 이탈도 어려움이 많다. 해외시장의 축소, 통화가치 급등으로 인한 수출 축소, 대규모 자금 유입으로 인한 자산가격 상승, 환율의 변동성 확대 등의 추가적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유럽중앙은행이 있다는 것도 유로를 포기하기 어려운 현실적 이유의 하나이다.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주변 국가는 독일에 비해 유로를 상대적으로 쉽게 포기할 수 있으나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비용을 부담하여야 할 뿐 아니라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어렵다는 것도 유로화 이탈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또 인간사와 비교한다면 잘 사는 사람이 자기만 잘 살겠다고 어려운 집안을 버린 꼴이 되어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1~2개 나라만이 선택하기 쉽지 않은 대안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영미학자들에 의해 많이 주장되고 있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쉽게 현실화될 것 같지는 않다. 재정위기 국가가 유로를 포기하면 통화가치 급락으로 대외채무 급증, 독립된 금리정책과 환위험 증가로 금리가 급등하여 경기를 더 위축시키고 유로화 자산의 인출(bank run)과 해외도피 등이 발생하여 국내경제가 수습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국민도 가치가 보전되던 유로화를 써 봤기 때문에 계속 평가절하 되는 자국통화를 과거보다 더 기피할 것이다. EU는 단일통화를 쓰지 않더라도 상품, 사람,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 유로 사용국으로 자금 도피가 어마어마하게 일어날 것이다. 또 이탈한 국가는 유로존에 가입했다가 다른 나라에 부담만 주고 탈퇴한 천덕꾸러기 같은 이류 국가로 인정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재정위기 국가는 국가부도는 낼지언정 유로존 탈퇴를 원하지 않는다. 이는 2012년 5월 그리스 총선에서 잘 나타났다. 알렉시스 찌프라스라는 젊은 선동적인 정치가가 모라토리움 선언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초반에 큰 인기를 얻고 집권하는 듯 했지만 유로존 탈퇴 이야기가 나오면서 지지율이 크게 떨어져 집권에 실패했다. 더욱이 EU관련 협정상 기존 회원국은 스스로 나가지 않는 한 EU나 유로존에서 쫓아낼 방법도 없다. 이렇게 볼 때 유로존의 해체나 붕괴 가능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영미학자들의 예측은 전망 이기보다 희망사항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다. 특히 단일통화는 앞에서 길게 설명했듯이 유럽이 오랜 분열과 전쟁을 극복하고 통합과 평화의 길로 가면서 많은 노력을 들여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단일통화를 포기한다면 유럽은 다시 분열의 시대로 들어가면서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중국, 일본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이류 국가로 역사에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존 해체에 따른 어려움이나 손해는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일이라 닥치면 어떻게 극복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이에 비해 재정위기 상황에서 유럽 각국의 국민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은 세상 일이 그렇듯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여름에는 여름의 더위가 겨울의 추위보다 힘들게 느껴지고, 겨울에는 추위가 여름의 더위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인간사다. 그리스, 스페인 등의 긴축에 따른 복지 축소, 일자리 감소 등의 고통, 독일의 경기 둔화와 계속되는 지원에 따른 부담감, 문제 해결이 장기화되면서 느끼는 피로감 등이 대표적이다. 결론적으로 유로의 미래는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더 큰 어려움 사이에서 유럽 국민과 정치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유럽 사람과 정치인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이고 유럽이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유럽의 미래는 더 밝아 보인다. 재정위기는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의 문제인데 유로존 국가가 제도적 제약 때문에 더 크게 더 먼저 겪고 있을 뿐이다. 어느 나라나 재정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뼈를 깎는 긴축이고 이를 이겨내면 훨씬 강한 경제로 변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힘든 긴축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터널을 무사히 빠져 나갈지는 아직 분명치는 않지만 터널의 끝은 있을 것이다. <끝> *지금까지 정대영의 유럽이야기를 봐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번에 더욱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송현경제연구소장 정대영 *사진을 클릭하시면 송현경제연구소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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