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의 진정한 승자 (정대영)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13.04.23 12:55 의견 0

-수출기업의 수익만 늘어나는 환율정책-

  지난해 9월부터 미국 중앙은행이 3차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12월부터는 일본의 아베 정부도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선언하면서 환율전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양적완화란 정책금리를 ‘0’ 수준으로 낮추었는데도 자금사정이 개선되지 않을 때 중앙은행이 대규모 채권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따라서 양적완화는 정책금리가 오래 전부터 ‘0’ 수준으로 떨어진 일본이 원조국가이다.미국, 일본의 양적완화는 기본적으로 국내의 유동성 부족을 해결해 경기와 물가를 자극하기 위한 정책이지만 부수적으로는 자국 통화의 가치하락을 통해 수출증대를 기대하기도 한다. 즉 늘어난 유동성의 일부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해외로 나가게 되면 환율이 오르고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정책이 정책당국자의 의도대로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본은 2001년 이후 양적완화를 수차 시행했지만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도 2008년 이후 세 차례의 양적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세가 뚜렷하지 않아 정책금리가 ‘0’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당연히 환율도 양적완화를 실시하는 정책당국의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2001년 이후 일본 엔화는 계속되는 양적완화와는 관계없이 장기적인 강세 기조 속에 가끔 약세를 보이는 전통적인 흐름이 이어졌다. 미 달러화는 미국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진원지이고 이후 대대적인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세를 보여 왔다. 이렇게 양적완화와 환율은 실질적으로 명확한 관계를 보이지 않아도 한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언론과 민간연구소 등에서 환율전쟁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고 수출기업의 수익 악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 기업들이 그간 고환율 정책에 의존해 쉽게 수출을 늘려 온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이는 196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40여 년간 한국, 일본, 독일 환율의 장기 추세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한국 원화는 미 달러당 1969년 12월 304원에서 2013년 3월 1110원 수준으로 4분의 1 가까이 가치가 떨어진 반면, 일본 엔화는 같은 기간 미 달러당 358엔에서 95엔으로 가치가 거의 4배 정도 상승하였다. 즉 원화는 엔화에 비해 가치가 14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독일도 마르크에서 유로로 통합됐지만 같은 기간 3배 정도 가치가 상승했다.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한 싸움이 환율전쟁이라면 독일과 일본은 40여년간의 전쟁에서 패한 것이고 한국은 대승을 거둔 것이 된다. 독일과 일본은 2차 대전의 패전을 딛고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여 수출을 통해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이다. 반면 한국은 고통스러운 외환위기도 겪었고 아직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이 전쟁에서 이기고 독일과 일본이 졌다면 무엇인가 이상해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자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출기업의 수익은 늘어난다. 허나 이러한 수익증가는 수출기업의 노력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원자재 수입비용, 운전자의 기름값, 유학생 송금 등의 증가분이 수출기업으로 이전된 것에 불과하다. 즉 한국은 환율을 올려 많은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면서 수출기업의 수익을 늘려 주는 방식으로 경제를 성장시켜 온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진정 강한 국가는 독일, 일본과 같이 환율이 올라 수출기업의 수익이 줄어도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대다수 국민의 부를 증가시키는 국가일 것이다.   어려워도 독일, 일본 등과 같이 수출기업과 국민 모두 좋아지는 길을 가야 한국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고령화 등을 감안할 때 한국경제도 이미 저성장 기조에 들어섰다. 성장률이 3%에 불과한데 환율이 5% 오른다면 미 달러 기준 국민경제 규모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정책당국과 수출기업이 고환율의 달콤함에 계속 안주한다면 한국은 환율전쟁에서 영원한 패자가 되고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넘지 못할 수 있다.    

- 송현경제연구소장 정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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