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정치의 무능이야! 이 바보야!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12.11.02 15:50 의견 0

-무엇이 정치의 진짜 문제인가-

  누가 정치혁신을 지엽적인 논쟁으로 몰고 가나    
정치 혁신은 안철수의 핵심 출마 명분이자, 야권 후보 단일화의 관건이다. 안철수는 9.19 출마선언문에서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치가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한다”는 국민들의 볼멘소리를 전했다. 10.7 정책비전선언문에서는 국회의 권능 강화(국회의 사전 동의, 추천 사항 늘리기)와 대통령의 권능 축소(공기업 감사 논공행상 반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 1/10 축소 등) 등을 공약하였다. 10.17 세종대 강연에서는 강제당론 폐기, 공천권 국민 환원 등을 제안했다. 10.23 인하대 강연에서는 "국민은 서로 싸우고 나눠먹는 부패한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국회의원 정수 200명으로 감축, 정당 국고 보조금 축소, 중앙당의 폐지 혹은 축소’ 등을 제안하였다.
정치 비용 줄이기, 관료·전문가·지방정치 영역에 대한 (중앙)정치의 개입 차단, 정당의 공직후보 선출 과정의 개방화 및 지역화를 골자로 한 안철수의 정치 혁신안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자, 10.30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자신의 종래 주장을 더욱 공세적으로 체계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는 ‘한국리서치’ 10.27 여론조사 결과--국회의원 정원 축소를 중심으로 한 '안철수안'에 대한 공감률은 71.9%, '지역구 축소, 비례대표 확대'를 중심으로 한 '문재인안'에 대한 공감률은 49.0%-를 인용하며, "제 정치개혁 주장에 대해 왜 70%의 국민이 찬성을 보내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될 시기"라면서, ‘정치권의 기득권 양보는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역설하였다. 안철수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단순히 국회의원 숫자 100명을 줄이기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내년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다. 굉장히 어려워진다" "재벌에게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해야한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자에게도 요구해야한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규직 직원들이 어느 정도 내려놓을 것이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하나도 양보하지 않고 희생하지 않으면서 그걸 요구할 수 있나" "당장 내년부터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지금 정치권이 자기가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요구할 수 있다" "정치권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국민에게 고통을 분담하라, 재벌에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기 힘들다"
이 같은 안철수의 주장을 들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규직 직원들도 어느 정도 내려놓을 것이 있다'는 것, '단기간에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면 많은 영세상인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점진적으로 상향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것 등은 내 지론이긴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좀체 듣기 힘든 얘기였기 때문이다.
사실 내 지론은 현실이나 현장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지만 현실과 유리되고, 전체적인 시각이 결여된 정치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정치권과 상당수 진보 학자들은 비정규직 자체를 무슨 노예노동처럼 죄악시할 뿐 아니라, 저임금 근로자들을 실업자나 비경제활동인구로 쫓아내버릴 수 있는 최저임금 대폭 상향 안--노동자 평균임금의 30% 초반 대에 머물고 있는 최저임금을 50%(현재 OECD 최고 수준)로--을 거침없이 공언하였다. 이 점에 관한 한 안철수, 문재인이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한국 특유의 고용임금 구조에 대한 일면적 이해에 혀를 차고 있었는데, 안철수의 발언을 들으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안철수는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르는 ‘정치 혁신’ 내지 ‘정치 제도, 콘텐츠(비전, 정책), 문화, 리더십 혁신’ 문제를 정치권의 고통 분담(기득권 양보)과 ‘국회의원 정수 축소’ 문제로 오도해 버렸다. 한마디로 정치의 질(역할 방기, 무능, 비정상) 문제를 정치의 비용이라는 양(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문제로 변질시켜버렸다. 3차원적 문제를 1차원적 문제로 바꿔 버렸다. 정치권의 고통 분담이 정 필요하면, 경영상 어려움이 처한 기업의 고통분담 방식으로 세비 30% 삭감, 국회의원 연금 폐지 내지 4년간 유보 등 여러 가지가 수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서 자신이야 말로 ‘정치 혁신’이라는 국가지대사를 ‘지엽적인 논쟁’으로 몰아가 놓고는 적반하장으로 비판자들이 자신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국회의원 정원 축소라는) 지엽적인 논쟁으로 몰려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볼멘소리를 하니!!!
근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한국은 교육·정치·일자리·양극화 등 핵심 현안에 대한 문제 정의, 문제 구조, 핵심 원인 파악이 잘못되어 많은 시행착오를 범해 왔다. 안철수의 정치에 대한 인식을 보니, 역시 한국 정치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구조(뿌리)에서 생겨났는지 등 근본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 무엇이고, 정치인은 누구이며, 뭣 때문에 이리도 정치 불신이 높은지 등등. 한국 정치의 진짜 문제를 따질 때는 분노한 국민의 소리도 경청해야 하지만, 엔지니어링의 기본인 "근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기(back to the basic)"도 필요하다.
정치의 기능에 대해 가장 널리 쓰이는 학문적인 정의는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이 내린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다. 이와 구별되는 것이 아마 시장적 배분이나 (가족 등)공동체적 배분일 것이다. 가치의 권위적 배분은 곧 가치의 유한성, 가치의 충돌과 권위권력적 수단에 의한 가치(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조정, 배분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통합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치인은 현세대와 미래세대, 노인세대와 청년세대, 보수와 진보, 자본가와 노동자, 육체노동과 지식노동, 갑(원청)과 을(하청), 여성과 남성, 공공과 민간, 수도권과 지방 등 처지, 조건이 다른 수많은 인간 집단의 이해와 요구를 풍부한 소통을 통해 꿰뚫고 있어야 하며, 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을 잡고 있어야 한다.
    한편 한국에서 정치인은 대통령(후보), 국회의원(후보),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원(후보), 주요 정당인 등을 말한다. 대통령과 단체장은 일부 관료에 대한 인사권을 지렛대로, 수십 만명의 직업 관료와 거대한 공공기관을 지휘한다. 대통령은 법안을 제출하고, 예산을 편성하고, 명령을 제정하고, 군을 통수하는 등 많은 권능을 행사한다. 국회의원은 입법을 하고, 예산·결산 안을 심의, 의결하고, 국정 감사·조사를 하고, 대정부 질의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런 일에 관한 한 하나같이 젬병이다. 이론과 실물, 전공과 전공 등 영역간의 벽도 높고,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할 이유도 없기에 사회역사적 통찰력도 빈곤한다. 정보, 지식도 딸린다. 직업 관료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지렛대인 인사권도 매우 제한적이다. 한국 직업 관료에 대해서는 신분보장을 워낙 튼튼하게 해놨고, 정치의 개입(정무직 인사) 범위는 축소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 국한해서 그 현주소를 살펴보면,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거대 양당의 소모적인 대립 내지 적대적 의존 관계로 인해 입법(법안 제출, 심의, 여론 수렴 등) 기능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재보궐 선거, 지방선거, 총선, 대선 등이 인접하면, 어김없이 정치적 대립이 격화 되고, 너무나 자주 법안 내용에 대한 심도 깊은 심의는커녕, 법안 명도 모르고 무더기로 통과시킨다. 연 수백 조원의 예산·결산 안에 대한 심의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상임위별로 분담하고 있는 행정부와 거대한 산하기관들에 대한 심도 깊은 국정 감사도 대체로 수박 겉핥기다. 국정 조사나 청문회를 해도--한진중공업과 쌍용차 청문회에서 봤듯이-- 제대로 밝히는 것이 없다. 대정부 질의도 핵심을 찌르는 것이 없다. 오로지 상대를 흠집 내고, 야유하고, 방어하는 짓으로 일관한다. 의원도 정당도 전문가들과 소통은커녕 로비력 강한 이해관계자들의 대변인 노릇이나 한다. 성실한 의원조차도 자신이 국민의 대표인지 지역구 민원 해결사인지 헷갈린다. 자기 지역으로 예산 많이 끌어 가려하고, 돈 되는 공공기관 끌어오는데 노심초사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거시적, 역사적, 국민적 시각이 결여 될 수밖에.......당연히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밀려오는 도전이 무엇인지 사회역사적 통찰력이 생길 리 없다.
따라서 "여야가 패거리 지어 쌈박질이나 하는 국회의원 놈들을 몽땅 배에 실어 태평양 바다에 처박아야 한다"는 소리가 택시 안에서, 막걸리 집에서, 인터넷 등에서 들끓는 현상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 정수 줄이고, 특권 줄이고, 정당의 권능(개입 범위 등)을 줄이자는 안철수의 얘기에 국민의 70% 이상이 공감을 표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지방의회는 아예 없애고, 선거는 통폐합하고, 의원 보좌관과 세비도 대폭 축소하자는 얘기는 80% 이상의 공감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정치 혁신의 방향 일리가 있겠는가
한국은 양반관료제, 식민통치, 전쟁, 냉전과 개발독재의 유산이 너무나 많이 남아서 국가 관료가 유무형의 권능과 국가 경영 정보, 지식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 입법부는 오랫동안 통법부로 기능했을 뿐, 대통령과 행정 관료가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을 지배해 왔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관주주의라는 자조의 목소리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1987년 이후 입법부의 권능이 많이 강화되긴 했으나, 그보다 훨씬 빠르게 사법부(법원, 헌재)와 사회, 시장에서 활동하는 이익집단들(재벌, 기업, 노조, 언론, 종교, 사학, 직능협회 등)의 자율권과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이들은 상충하는 가치들을 배분하여 지속가능한 성장과 통합을 이루는데 관심이 있지 않다. 애초에 자신들의 책임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정치집단은 (비록 독과점이라 잘 작동하지 않지만) 심판 메커니즘이라도 있는데 다른 존재들은 이것도 없다.
 
요컨대 1987년 이후 국민이 직접 통제하는 정치 리더십은 취약한 데 반해, 국민이 간접 통제하는 관료의 배타적 영역은 늘어나고, 민간 경제사회 주체들의 영향력은 일취월장하면서 정치의 국가의 공공성이 훼손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재벌공화국 소리가 나오고, 각종 관료 마피아가 준동하는 것 아닌가게다가 한국은 검사, 판사, 헌법재판관들도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 부자의 꿈을 이루려는 충동이 아주 강한 나라이다. 이는 사법정의에 엄청난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직접 통제하는 공공(입법, 행정, 사법)리더십을 양적질적으로 강화하여 개입의 범위를 넓히는 수밖에 없다.
 
가만히 보면 21세기를 전후한 한국사회는 오랜 관성(방법)이 현실과 충돌하고, 소박한 기대가 무수히 무너지고 있다. 하우스 푸어 왜 생겼나집값이 오를 것 같아서 투기 목적으로 혹은 방어 목적으로 저금리 대출 받아 집을 샀는데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가 폭등도 집값 안정 내지 하락의 파생물이다. 과잉대학진학률-괜찮은 일자리 부족(취업난)-비정규직과 구조조정 갈등-사교육 열풍-고시공시족 폭증-시간강사 고통-중소기업 인재기근-고학력 실업-등록금 반값 시위 등도 현실에 의한 소박한() 기대의 좌절과 필사적인 탈출(상승) 시도와 관련이 있다. 사교육 열풍은 대학(학벌, 학위, 전공)을 통해 벌어지는 과도한 격차(차별)와 그에 따른 경쟁 격화라는 교육 외적인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들의 학생 통제 수단 확보와 낡은 평가, 선발 방식이라는 교육 내적인 문제도 있다. 그 외에도 2011년 9.15 대정전(블랙아웃) 사태도, 세계 최악의 출산률과 자살률도, 정치 불신, 정당 불신과 안철수 현상 역시 변화한 환경 내지 요구와 오래 된 철학, 가치, 제도, 문화의 충돌 현상에 다름아니다.
    확실히 지금 시대는 1953년, 1961년, 1987년, 1997년을 기점으로 형성된 질서(철학가치법제도문화리더십) 혹은 시스템이 급변한 국내외 환경과 격렬히 충돌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효기간이 다한 낡은 질서와 변화한 환경이 충돌하는 시기는 규정, 선례, 예산, 권한 범위 등에 매여야 하고 매일 수밖에 없는, 기존 질서의 충실한 집행자인 관료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이자 민의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정치가 나라의 명운을 가르게 되어 있다. 정치가 혼미무능하여 이 충돌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다 보니, 지금 대한민국은 20~30대 청년과 비기득권자들에게 최악의 나라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20~40대의 표심으로,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보아야 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핵심은 한국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핵심은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지, 선거나 정치에 소요되는 비용 자체가 아니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리더십, 문화, 콘텐츠가 다 문제지만, 이 역시도 과거에는 그런대로 작동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수명이 다한 제도에서 기인한다. 불합리한 선거제도, 공천제도, 정당법, 헌법 등이 그것이다.
이 중심에는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양당의 정치적 독과점 체제, 적대적 상호의존 체제, 정치적 교착체제를 만든 분단체제와 수명이 다한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불합리한 헌법 및 선거제도 문제는 비교적 많이 거론되었다. 노무현의 대연정 구상과 개헌 발의용의 표명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양당의 정치적 독과점과 적대적 상호의존 체제를 초래한 분단체제 문제는 의외로 거론하는 사람이 적다. 분단을 극복하지 않으면 정치의 정상화, 선진화가 기대난망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분단으로 인한 왜곡 등을 감안하여 정치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생산적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보수-진보 양당 체제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분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반도의 분단은 1945~53년에 당시 진보와 보수 간에 전쟁을 한 결과다. 게다가 지금은 휴전 상태다. 전후에 진보와 보수가 환골탈태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과거의 철학과 가치, 정서에서 자유롭지 않다. 당연히 보수 측은 북한과 남한의 진보를 한패로 보면서, 적화위협에 떨고 있다. 실제 진보 일각에는 ‘조선로동당’과 철학, 가치, 정서가 유사한 친북, 종북파가 엄연히 있다. 보수 역시 친일-학살-독재-부정부패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 후예들이 많다. 진보가 보수를 친일-독재 세력과 한패로 보는 것 역시 일리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진보와 보수 간의 양당제는 총칼만 안든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대선, 총선 등 큰 선거가 전쟁 양상을 띠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관료에게 개인·기업·지역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너무 많은 자의적 권능(규제·처벌·국토계획·예산할당권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서비스 기능은 약해도 전쟁, 분단,개발독재의 영향으로 폭력(처벌), 중앙통제, 동원 기능은 매우 강하다. 세계 최강의 검찰권은 그 중의 하나다. 권력기관 상호간의 견제 장치도 취약하고, 민주적 통제 장치도 취약하다.
무엇보다도 기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규제, 촉진 기능(예산 할당 등)이 강하다. 부동산 가격이 개인과 지역의 명운을 가르는데, 관련 규제(도로, 철로, 항만, 공항, 공단, 신도시, 용적률등)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국가, 정확하게 말하면 권력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경영 노하우(콘텐츠)와 정보도 거의 관료 또는 관료가 통제하는 국책연구소, 지방 연구원 등에 있다. 헌법 정신으로 보면, 국회가 대통령 및 행정부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보, 지식, 법안 제출권과 예산 집행권과 각종 명령 제정권이 있기에 후자가 월등히 강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조선의 양반관료제, 식민통치, 전쟁, 분단, 개발독재의 후과일 것이다.
대선 등 큰 선거가 지역 간 전쟁 양상을 띠는 또 하나의 요인은 약탈적 지역주의 때문이다. 사실 미국,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도 지역주의는 있다. 그런데 한국이 왜 유독 문제인가왜 이리 갈등이 극심할까그것은 국가의 과도한 권능 외에도 지방 자치 전통이 깊은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제를 자조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재정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해결해 왔기 때문이다. 선진국 시민들은 자신들이 돈(세금)을 내고, 도시계획을 하여 도로도 닦고, 공공시설도 만들고, 신도시도 만들어왔다. 그런데 우리는 국책사업(평창올림픽, 경부고속도로, 신공항등)을 유치하고, 중앙정부의 예산(교부금 등)을 많이 따와서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래서 힘센 정치인이나 대통령 감을 키워서 중앙에 보내서 많은 것을 따오려고 광분하는 것 아닌가한마디로 자조가 아니라 약탈의 마인드가 강하니 정치가 전쟁이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승자 독과식(싹쓸이) 문화도 대립과 갈등을 격화시키는 주요한 요인 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쉽게 바뀔 수 있는 문화가 아니다. 최근 들어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은 지금은 보수와 진보 간에 힘이 비등비등한 정치적 교착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생산적 경쟁체제다. 요컨대 분단이 해소 되지 않는 한, 남북 간에 일측촉발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한, 1920~70년대 진보 이념의 총화인 북한이 생지옥으로 남아 있는 한, 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쥐락펴락하는 한 진보와 보수 양당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치 혁신의 관건은 수명이 다한 헌법, 선거법을 바꾸어 정당들 간의 생산적 경쟁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 핵심은 지지율 10%가 넘는 정당이 최소 4개, 많으면 5~6개가 나오도록 결선투표제와 중대선거구제 또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아무튼 다당제, 즉 정당간의 생산적 경쟁체제로 가는 길을 막는 양대 빗장(결선투표 없는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상대다수 득표제)을 제거하면 이른바 레드콤플렉스가 심한 "안보 보수" 혹은 "시장 근본주의자" 와 "북한과 철학 가치가 유사한 친북/종북파"와 "생태주의자"등이 자신들의 당을 만들어 심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양당 구조에서는 이들이 보수와 진보 정당의 일각을 차지하기에 보수와 진보 전체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초래한다. 사실 이것이 통합진보당에서 진보정의당이 분리되어 나온 이유 아닌가
정당간의 생산적 경쟁체제로 정치정당 품질이 높아지면, 선출직과 정무직을 대폭 늘려야 한다. 당연히 선거주기도 2년마다 한 번씩 큰 선거가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면 개헌을 통해 비례대표 의원에 한해 임기 2년제를 적용할 수도 있다.
요컨대 국회의원 정수도, 대통령의 권능도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국가(관료) 과도한 자의적 권능이다. 동시에 관료를 지휘하고 국가를 끌어가는 국회의원 및 정당과 대통령의 혼미, 무능, 부실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기득권 중의 기득권은 바로 반사이익에 기대어 정치품질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거대 양당의 독과점 이익이다. 이것을 타파하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민주화다. 경제민주화 이전에, 아니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진짜로 양보를 요구해야 할 "정치 기득권"은 양당의 적대적 의존체제를 구조화한 정치관계법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완전히 엉뚱한 것을 잡아서 변죽을 올리고 있다.
초기 문제의식과도 맞지 않는다.
안철수의 정치혁신안은 그의 출마선언문이나 정책비전선언문의 문제의식과도 많이 동떨어져 있다. 10.7 선언문에서 안철수는 한국 사회의 발전을 옥죄는 핵심 질곡(주된 대립물)을 “낡은 체제, 기득권, 특권, 반칙, 독점”으로 정의 하였다. 선언문의 표현은 이랬다.
“수십 년 동안 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장악하고, 소수 기득권의 편만 들던 낡은 체제” “부정과 불의, 부패한 낡은 체제” “특권과 반칙으로 부가 집중되고, 기회가 박탈되는 낡은 경제” “특권이 끊임없이 확대되는 불공정한 기득권구조”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 “특권과 독점을 묵인하고 조장하는 정책”
그래서 안철수는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공직비리수사처 신설"과 "의회의 동의, 추천 항목을 늘리겠다"는 얘기를 한 것 아닌가나는 10.7 선언문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 실현 방법으로 제시된 공직비리수사처와 의회의 권능 강화에 대해서는 좀 미진하긴 하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 비용 저감과 개입 범위 축소는 이전의 문제의식 및 정책 기조와 다른 것이다.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 “부정과 불의, 부패한 낡은 체제”에 대한 결연한 문제의식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이 엄청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회의원들이 의원 정수 감축 등으로 기득권을 내놓는다는 것은 정말 나이브한 것이다. 기득권 양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놓을 기득권, 목숨 걸고 때려 부숴야 할 기득권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 중심에는 정치가 실력이 생기도록, 이익집단에 대해 강건하도록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이 있다.
명의는 돌팔이 의사와 달리 환자가 아프다고 하는 곳만 마냥 쓰다듬어주고, 그 증상만 완화하는 약을 처방하지 않는다. 질환이 생긴 메커니즘과 근본 원인을 파악하여, 환부와 관계없어 보이는 부위나 기관을 정상화 한다. 정치 불신에 대한 돌팔이의 처방과 명의의 처방이 무엇인지는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안철수와 대한민국이 사는 길은 명의의 처방, 즉 진짜 정치 혁신안을 내놓는 것이다. 이건 무슨 비책도 묘수도 아니다. 안철수가 좋아하는 상식이다. 출마선언문과 비전정책선언문의 문제의식을 살리는 것이다. 1992년 미국 대선 전에서 클린턴 후보가 아버지 부시에게 했던 어법으로--'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말한다면 이렇다. '문제는 정치의 혼미, 무능, 오작동, 비정상이야, 이 바보야!'(It' the malfunctioning of politics, stupid!) 정치의 지독한 무능, 오작동이야 말로 이 시대 최고 최대의 과제라는 것을 모르기는 문재인, 박근혜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단 한번의 공직 선거 경험도 없이 대선 3개월 앞두고, 그것도 정치혁신을 최대 명분으로 대선 출마 선언한 사람이 가혹한 검증,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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