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상같은 정상아닌 농협의 탄생과 성장 (2)

최양부(농협바로세우기연대회의 상임대표) 승인 2014.09.17 11:28 의견 0
하나의 민주화운동   정부와 농협의 유착관계, 사실상 관제화된 조직체계 등으로 인해 농협 내부에서는 정체성 혼란으로 갈등하게 됩니다. 비록 허울뿐인 간판일지라고 하더라도 간판은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고 그 조합원은 농협의 경우 농민이어야 된다는 비판 속에서는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이런 농협의 대의명분 때문에 70~80년대에는 농협민주화운동이 농민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입니다.대한민국에 하나의 민주화 운동만이 진행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군부정권으로부터의 빼앗긴 국민의 권리를 찾는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었다면 농촌에서는 농협에 뺏긴 조합원의 권리를 되찾는 농협민주화운동이 진행된 것입니다.     여우가 왕이 되다 87체제가 들어서고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되면서 농협 역시 조합장 직선제가 현실 문제로 닥치게 되었습니다. 농민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활동하는 단체로 농협이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정부도 더이상은 과거처럼 대놓고 농협을 머슴 다루듯 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떠난 자리에는 여우가 왕이라고 할까요정부가 통제력을 놓아버리자 그 자리를 농협중앙회와 그 임직원들이 차지해버립니다. 농협 임직원들은 그야말로 제 세상을 만난 꼴이었죠. 이전에는 정부가 간섭하고 통제를 했는데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하니까 정부가 하던 역할을 중앙회가 꿰어 차고 들어섰으니까요. 농협민주화운동이있기는 했지만 조합원인 농민들은 아직까지 협동조합의 본질과 가치, 경영원칙에 대한 인식이 미흡했습니다. 그걸 배울 수 있는 교육훈련도 거의 없었고요. 비단 농민들뿐만 아니라 임직원 역시 마찬가지죠. 임직원 역시 조합원들을 위해서 어떻게 일을 해야 되는 건지 몰랐습니다. 결국 87 체제 이후 조합장 직선제가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에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농협중앙회와 그 임직원들의기득권만 더 커져버렸죠.   직선제 시작 이후 관제조직에서 임직원을 위한 조직으로 주인만 바뀐 꼴이었습니다. 농협을 통제하는 정부로부터의 권리 찾기, 민주화는 신경을 쓴 반면 농협 조직 내부의 민주화에는 소홀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여집니다. 조합원들 가운데서 대의원이 선출되고, 이사와 감사가 선출되었으며 심지어 조합장까지 선출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경영에 대해서는 무지한 ‘눈뜬 장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농협은 임직원 즉 농협 관료에 의해서 운영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인 농민들에게는 자기들 중에서 이사, 감사, 조합장이 선출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변화도 피부로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농협개혁운동   결국 또 다른 형태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정부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에 목적을 두었던 농협민주화 운동이 1970~80년대 일어난 것에 이어 1990년대에는 농협운영의 민주화로 시선을 옮겨 ‘농협개혁운동’이 일어납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협민주화는 농협운영의 민주화로 방향과 이슈가 변하고 민주적인 질서를 만들기 위한 ‘농협개혁운동’이 새로 시작되었습니다. 농협개혁운동은 농협 스스로가 앞장선 자생적인 운동이라기보다 농민의 권익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농민단체, 외부전문가, 학자들 즉 밖으로부터 오는 개혁운동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농협과 외부 단체들 사이에서 잡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잡음을 타고 정부가 다시 등장합니다. 비록 농협에 대한 통제권을 정부가 놓았다고는 하지만 정부와 농협의 유착고리는 여전했거든요. 농협과 외부 단체들 사이에서 문제가일어나자 농협은 정부에 요청을 했겠죠. 결국 정부는 농협과 외부단체들 사이에 끼어서 절묘한 정치적 줄타기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부의 속내는 중재가 아니었겠죠. 농협중앙회와 임직원들의 기득권은 이미공고해졌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습니다. 또한 정부도 그것을 깨뜨리려는 것에 대해 소극적이었습니다.     YS 정부   그럼 정부가 어떻게 정치적 줄타기를 했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농협개혁운동은 시기상으로는 90년대이고 정권으로 보면 YS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중요한 국가적 사안이 있었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입니다. 농산물 전면개방시대를 맞이해 우리나라 농정의 개혁방향과 과제를 정리하기위해 ‘농어촌발전위원회’(농발위)가 생겨납니다. 대통령 자문기관이었습니다. 20년도 더 된 옛날이지만 그당시 농발위를 통해 제시된 농협개혁의 방향과 과제는 여전히 유의미합니다. 첫번째, 농협은 농민에 의한농민을 위한 농민의 민주적인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나야 된다. 둘째, 중앙회 중심의 조합을 회원조합 체제로 개편해야 된다. 셋째, 협동조합 운영체제를 경제사업 중심으로 개편하고 품목별 조합을 강화해야 된다. YS정부는 농발위의 건의를 대체로 수용하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농업협동조합법을 개정합니다. 하지만 당시 같이 제시된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는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DJ 정부   시작은 YS정부에서 끊었으니 그 뒤를 이어서 개혁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요뒤를 이은 DJ 정부는 기존의 개혁방향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3협 중앙회 통합을 강제적으로 단행합니다. 농협,축협, 인삼협 중앙회를 하나로 통합해서 거대한 중앙회를 만들어버린 거죠. 농협중앙회 하나만 해도 거대했는데 축협과 인삼협까지 합세를 하니 농협중앙회는 더욱 무시무시한 무소불위의 괴물이 되었습니다.그것이 농협개혁이란 이름으로 자행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그렇게 괴물이 된 농협의 힘을 말해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죠. 2012년 고 노무현 대통령은 춘천에서 지역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집니다. 그 자리에서 ‘농협이 센 지 내가 센 지 앞으로 한 번 겨뤄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대통령보다 농협이 더 셌죠. 고 노무현 대통령 죽음의 단초가 어떻게 보면 농협을 통해서 생겨났으니까요. 그 당시 농협중앙회장이었던 정대근이라는 분이 고 노무현 대통령 일가와 지인들이 김해 농협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김해 농협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 왔거든요. 일가친척들을 통해 정대근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과도 친분을 쌓습니다. 그 친분관계가 발전해서 박연차까지 가게 된 것이죠. 그런 친분관계를 통해서 정대근 중앙회장은 ‘제왕적 회장’이란 비판을 들을 정도로 농업계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주요 농정문제나 인사는 서대문에서 결정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비판이 거세지니 노무현 정부는 결국 농협중앙회장을 비상근으로 하고 신경분리는 2017년에 다시 검토하겠다고 선언합니다.그것이 2007년도 일입니다. 신경분리야 당연히 이루어져야 되는 일이지만 농협중앙회장의 비상근화가 과연 농협중앙회장의 권력을 약화시켰을까요사실상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권한과 영향력은 그대로인 채 비상근이기 때문에 책임은 지지 않는 무책임성까지 더하게 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농협개혁운동에 뛰어든 시점도 그 때입니다. 농협의 개혁이 아닌 개악을 보면서 비통한 심정에 2007년 11월 ‘농협제자리찾기 국민운동’이란 시민운동 단체를 만들어 올바른 농협개혁운동과 신경분리를 말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MB 정부   그 뒤를 이어 2008년 MB정부가 출범합니다. MB정부는 지금까지도 참 욕을 많이 얻어먹고 있지요. 전체적인 공과를 떠나 농업관계자의 입장에서 말씀 드리자면 적어도 농협개혁에 관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업적이 있습니다. 2010년 농협중앙회장의 임기를 5년 단임으로 변경했고 2011년에는 신경분리를 단행했습니다. 2012년 2월까지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서 금융사업일체를 분리시켰고 2015년 2월까지 중앙회 유통판매사업일체를 경제지주로 이관하여 명실상부한 경제지주체를 발족시키도록 했습니다. 또한 2015년3월 11일을 전국 조합장 동시선거일로 정하고 농협이 선거관리를 맡던 기존체제에서 벗어나 선거관리위원회가 맡도록 하면서 선거운동방식의 민주화도 가져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이제 공은 다시 박근혜 정부의 손으로 들어왔습니다. MB정부에서 비록 시작은 했지만 다음 정권에서 다시 역행하는 조치를 하면 도로묵이니까요. 지난 김영삼 정권에서 김대중 정권에서 보듯이요. 정권이 바뀌면 농협중앙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농협개혁을 과거로 퇴행시키기 위해 갖가지 로비를합니다. 심지어는 개혁을 미끼로 정부 돈을 타내는 것도 예사입니다. MB정부에서 신경분리를 한다고 하니까 농협에서는 신경분리를 하겠으니 5조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MB정부는 이 요구를 수용했죠. 엄청난 특혜이지요. 세상에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 어느 조직이 정부로부터 5조원의 자금을 이렇게 쉽게 받아낼 수 있습니까그 만한 힘을 농협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5조원까지 국민의 혈세를 받아놓고만약 농협이 2011년 당시 농협법 개정 당시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농협은 대국민을 대상으로 사기를친 대규모 사기집단이 될 것입니다. 그 결정은 이제 박근혜 정부의 몫으로 왔습니다.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도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을 다시 강화하려는 로비를 계속 하고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내년으로 계획된 경제사업의 경제지주이관계획도 무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박근혜 정부의 선택은 중요합니다. 농협중앙회가 은밀히 추진하는 로비들이 성공해서 정부와 국회의 지지를 받는다면1994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느리지만 꾸준히 지속되어 온 농협개혁운동, 농협민주화운동은 물거품이되고 다시 반농민, 반협동조합적인 조직으로 회귀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분위기로 봐서는비관적이다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괴롭기만 합니다. <계속>   6944_3668_451 *본 기사는2014년8월26일 사회디자인연구소가 함께 하는 공간‘온빛터’에서 열린 희망자치정책포럼2014, 3.11농협선거 의미와 농협개혁의 방향 중 발제자 바른협동조합 실천운동본부 이사장 최양부 박사님의 발제 일부분입니다. 발제 동영상은사회디자인연구소공식 유투브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다음주에는 발제의 나머지 부분(5. 괴물이 된 농협의 실상)과 질의,답변 부분이 이어질 예정입니다.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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