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여론의 재해석과 정책리더십 -최정묵

socialdesignkorea 승인 2010.03.10 09:37 의견 0

국민의 목소리는 천심이라 거역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가하면, 어느 땐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주관 없이 여론을 추종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이후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전달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공공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 국민의 목소리를 읽어내는 일은 정치인이나 정책입안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일상에서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개인 재산의 증식을 위한 각종투자 방향과 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목차>
1. 민주화 이후, 여론과 민심, 숨겨진 규칙들 1) 여론은 민심의 무의식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2) 여론은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로 작동되고, 민심은 사회적 공의와 보편적 윤리에 의해 작동된다. 3) 여론은 변화하려는 속성, 옳고 그름이 없는 속성, 억매이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① 부시 미국대통령과 이라크전쟁으로 본 여론의 가변성 ② 히틀러가 악용한 여론의 가치중립성 ③ 아르헨티나가 간과한 여론의 탈규범성
2. 정책과 대책, 그리고 여론 1) 정책과 대책 사이 2) 손가락 끝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봐야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
3. 각국 정치지도자의 여론수용 1) 클린턴의 신민주와 블레어의 제3의길 : 민심의 바다에서 시대를 읽다. 2) 인도의 싱 총리의 신경제구상 : 여론이 당장 원하는 것을 국가전략으로 승화시키다. 3) 독일 메르켈 총리의 경제개혁 : 미래를 본자, 국민을 대표해서 반대집단과 싸우다.
1. 민주화 이후, 여론과 민심, 숨겨진 규칙들
여론은 살아 있는 생물이다. 여론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활동하다 결국 죽는 생물과 비슷하다. 특정한 여론은 다른 여론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관계를 맺기도 하고 영향을 주거나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론을 정의하고 판단하려면 다양한 각도의 판단과 기준이 필요하다.
민심은 대중 스스로조차도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마치 물위에 떠 있는 빙산의 윗부분보다 몇 십 배 더 큰 하부를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얼음조각과 같다.
여론은 평상시 표면화되지만, 민심은 특별한 계기와 사건이 없으면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여론과 민심은 달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사회심리전문가들은 “민심은 장기적인 추세인 반면, 여론은 단기적인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1) 여론은 민심의 무의식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겉으로는 불안정하고 일관성 없어 보이는 여론도 국민의 무의식에서는 여론형성의 핵심동기가 일정한 흐름으로 존재한다.
예컨대, 1986년 금강산댐사건은 전두환 전 정권이 잘못된 정보로 여론을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론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겉으론 잘못된 여론처럼 보이나,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안보위협에 대한 우려가 여론형성의 핵심동기인 ‘북한의 인위적 홍수’라는 위협적인 사건에 직면해, 민심이 여론으로 표면화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대로 1987년 6월 항쟁처럼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는 시대담론이 당면한 민주정부수립이라는 폭발적인 집회 등의 특정사건과 맞물리면서 민심과 여론은 동일한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2) 여론은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로 작동되고, 민심은 사회적 공의(公儀)와 보편적 윤리에 의해 작동된다.
위 표에서 보듯 세금증가나 구조조정 문제와 같이 개인의 직접적인 사회경제적 이해에 직면한 여론과 복지강화 및 경제성장과 같이 사회적 공익에 대한 의견이 뚜렷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똑같은 의제라 할지라도 어떤 환경에서 인지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3) 여론은 변화하려는 속성, 옳고 그름이 없는 속성, 억매이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여론형성 시기의 사회 환경, 여론측정 시점, 여론의 발달상태, 비슷한 시기 타 여론과의 관계, 시대담론과 여론이 동일한 방향인지 등의 여부를 주의 깊게 관찰하여 여론을 관찰해야 한다.
① 부시 미국대통령과 이라크전쟁으로 본 여론의 가변성
2003년 3월 CNN조사에서 미국인의 74%가 이라크 공격에 찬성의사를 표시했지만, 2006년 8월 조사에선 전쟁반대가 61%, 전쟁찬성이 35%로 나타나 반전 여론이 확대되었다.
세계지역연구논문총서 24집1호에서도 부시 미국대통령 지지율이 9.11테러 직후 90%를 넘었지만, 반전여론이 확산되면서 2007년 1월 33%로 하락하였다.
2가지의 인식 변화가 여론의 변화를 가져왔다.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로 시작되었던 전쟁이 약 3,000명의 미군의 전사로 이어졌다. 결국 이라크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인식과 분리된 것이다.
또한, 대량살상 무기를 발견하지 못한 것도 큰 이유로 작용했다. 2005년 12월 CBS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2%가 미국의 이라크정책을 불신하고 있다는 응답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여론은 초기에 형성조건을 갖춘다.
단순히 사건이나 이슈자체에 억매이지 않는다.
② 히틀러가 악용한 여론의 가치중립성
독일은 1929년 대공황을 겪었다. 실업자, 경제적 위기감이 높던 중산층, 좌파확산에 반대했던 부유층이 1930년 총선에서 경제문제해결에 단호한 의지표명을 한 나치에 대거 투표했다. 나치당은 102석을 획득하면서 히틀러는 총통에 등극했다.
독일국민은 1차 대전이후 교육권, 노동권 등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을 제정할 만큼 평화인권을 옹호하는 국민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대공황 극복과 패전국의 짐을 벗기 바라던 독일국민의 여론을 악용하여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③ 아르헨티나가 간과한 여론의 탈(脫)규범성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1946년 2차 세계대전직후 유럽수출을 통해 무역흑자를 냈다. 노동자와 빈민은 축적된 부(富)가 분배되길 원했으며,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 당선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은 무역흑자의 대부분을 그대로 분배하였다.
이러한 포퓰리즘(populism) 정책을 추진하던 아르헨티나는 유럽경제가 차츰 회복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가 지금과 같이 열악한 경제적 조건에 놓이게 된 것은 국가 지도자가 분배를 요구한 여론을 미래지향적으로 관찰하지 못하고 근시안적으로 해석한 탓이 크다.
적절한 분배와 더불어 자본축적을 통해 미래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교육 분야에 많은 자원을 투여했어야 했던 것이다.
2. 정책과 대책, 그리고 여론
1) 정책과 대책 사이
정책은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민심에 미래를 제시하는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대책은 단기적이지만 분출된 여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정책은 제시형 의사결정이, 대책은 수렴형 의사결정이 필요한 것이다.

위의 그림은 민심에 가까운지, 여론에 가까운지에 따라 의사결정패턴이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전략적으로 정리된 정책과 이를 추진하다 발생한 사안의 대책이 서로 다름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예컨대, 2005년 2월 정부가 10조 원 투자계획으로 발표한 국가경제발전계획인 뉴딜프로젝트가 건설교통부의 SOC사업으로 국민인식이 전락한 것이 좋은 예이다.

일부 언론의 탓도 있겠지만, 여론이 바라는 당장의 경기부양이라는 유혹에 빠져, 본 프로젝트의 근본취지가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이다. 보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꼭 추진되어야 할 국가정책이 마치 여론에 밀려 불가피하게 추진되는 경기부양책으로 보인 것이다.

2005년 4월 월드리서치에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뉴딜정책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동의하는 국민은 17.3%인데 비해, 내수 활성화를 위한 경기부양대책이라는데 동의하는 국민은 33.7%로 더 높게 나타났다.

2) 손가락 끝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봐야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

정책기관이 사회경제적 균열로 발생한 여론을 정책으로 직접 대응하게 되면 정책기관은 일관성을 잃어버리거나 사후적 정책추진으로 국정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양극화 등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적인 의제설정과 해결노력을 하기보다는 FTA 등 세계화를 제도화하는 정책과정에서 빈곤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정책의 원칙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밀려오는 여론의 요구를 국가전략안에서 예방적 조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전업주부가 일상에서 발생하는 지출내역에 대해 한건 한건씩 지출계획을 잡기보다 한 달 생활비와 일 년 가계소득 등 전체적인 재정구조를 고려하고 지출하는 이치와도 비슷하다.

아래의 표는 단기적인 사회경제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림이다.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정책을 입안하는 기관의 국민인식이 다르다.

3. 각국 정치지도자의 여론 수용
지도자에게 여론이란 무엇일까
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업적을 남긴다. 또한 여론을 통해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본다.
1) 클린턴의 신(新)민주와 블레어의 제3의길 : 민심의 바다에서 시대를 읽다.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은 민주당 남부소장파 지도자중 한 명이었고, 1986년 12월 ‘민주지도자평의회’(DLC)를 결성했다. 또한, 당의 정책노선을 중도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80년과 84년 두 번의 선거패배를 극복하려 했다.
DLC는 ‘강력한 미국의 재건’과 ‘중산층이 주인 되는 정치’라는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위한 뉴딜정책을 제시했다. 결국 이런 노력은 클린턴 대통령과 새로운 집권당인 민주당을 탄생시켰다.
노동운동의 쇠퇴, 흑인을 포함한 소수민족의 정치참여 하락, 그리고 2차 대전이후 출생한 신세대의 증가 등의 시대흐름을 정확히 읽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국 민주당의 영향을 받은 영국 노동당도 영국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
노동당의 옛 이념들과 정책들은 폐기됐고 새로운 정강정책이 채택되었으며 1997년 총선에서 블레어의 노동당이 418석을 얻어 165석에 그친 보수당에 압승을 거두었다.
과거 70년대 영국 노동당은 방만한 국가재정운영, 국유기업의 비효율, 높은 인플레 등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 국민의 체감경기는 곤두박질쳤고 1976년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당은 1980~1990년대 사민주의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진행하였다. ‘부의 분배의 결과적 평등과 국가의 과도한 통제’가 아닌 신중산층이 원하는 ‘기회의 확대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민심에 화답하였던 것이다.
2) 인도 싱 총리의 신경제구상 : 여론이 당장 원하는 것을 국가전략으로 승화시키다.
1년 내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북부와 여름에 섭씨 50도에 달하는 더위에 시달리는 서부로 구성된 인도는 전체 인구의 55%가 농업종사자이다. 대부분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빈곤탈출은 서민들의 가장 큰 숙제이다.
싱 총리가 겪고 있는 정치사회적 여론 환경은 이 보다 더 심각했다. 실권자가 아닌 대리인 자격의 총리직, 19개 정당이 연합하여 세운 연립정부의 수장이라는 한계, 국민의 80%가 힌두교인 나라에서 불과 2.4%인 시크교도인이라는 점, 17개의 공용어 외에 수백 가지 방언이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여론 환경에서도 싱 총리는 매년 8%내외의 경정성장률을 달성하며 인도를 발전시키고 있다.
당장의 빈곤탈출보다는 인도의 미래를 내다보고 개방경제를 선택한 싱 총리는 네루.간디 집안의 후광이 절대적인 인도에서 그것도 집권연정을 이끄는 최고 권력자이자 여당 당수인 간디를 32% 대 31%로 여론조사결과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고 있다.
3) 독일 메르켈 총리의 경제개혁 : 미래를 본 자, 국민을 대표해서 반대집단과 싸우다.
1990년대 이후 저성장 저투자 고실업 늪에 빠져 있던 독일에 메르켈은 2005년 11월, 첫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그녀는 노동시장 유연화, 기업규제 철폐, 공공부문 민영화 등을 추진하며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집권 1년 만에 성장률은 0.9%에서 2.5%로, 실업률은 12.0%에서 9.8%로 눈에 띄게 좋아졌다. 구조조정은 국민들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이 당시 메르켈의 국민 지지도는 80%에 육박했다.
메르켈은 노조의 저항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계속해서 추진했다. 그녀는 2006년 5월 24일 독일노조연맹(DGB)총회장에 연사로 등장하여 ‘노조가 주장하는 모든 산업의 시간당 7.5유로 최저임금제는 국민일자리를 만들기보다 오히려 파괴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연설하였고 거센 반발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 이익을 위해 노조의 심장부에서 직설적으로 연설할 만큼, 메르켈은 국민여론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여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는 지도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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