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발 잘린 선거운동

socialdesignkorea 승인 2014.10.24 10:50 의견 0

주인의식

김현권 발제, 이준호 편집

농협은 농민에게 있어서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조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조직이고 또한 협동조합임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본인이 조합원이고 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라는 주인의식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주인의식이 없는 것이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원래 농협은 처음부터 농민의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잖아요. 또한 창설 이후로 지금까지 농민의 것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고요. 원래 자신의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것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죠. 농협 쪽에서도 조합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도록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주인의식을 가지게 하려면 여러 형태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데 그런 것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조합활동이 일상적으로 자주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이 농협개혁에 있어 주도적으로 나서기에는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번 동시조합장 선거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요. 민주주의의 기초는 투표를 통해 자신의 대표를 뽑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주인의식을 갖기 위해 선거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죠. 비록 농협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조합장 선거를 통해 농민이 농협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위탁선거법을 보면 그런 점에서 여러모로 아쉬운 점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조합원명부   의무위탁을 받아 선거관리를 하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위탁선거를 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조합장 선거가 과거에 지나치게 불법선거, 금권선거로 타락했고 이것이 나아가서는 일반 공직자 선거까지 타락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의무위탁을 하였다고 하는데요. 물론 조합장 선거가 위탁선거로 시행되면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서는 깨끗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것 이전에 왜 애초에 조합장 선거가 금권선거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원인을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요우선 조합장 선거와 일반 공직선거는 성격상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반 공직자 선거의 경우 유권자를 사전에 예측해서 사전선거운동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조합장 선거는 그런가요제가 살고 있는 의성군의 경우 전체 인구 5만 5천 중에 만 19세가 넘은 유권자는 4만명 정도 됩니다. 그 중에 축협의 조합원은 몇 명이나 될까요1960명 정도입니다. 공직자 선거는 의성군에 사는 성인 누구에게나 해도 됩니다. 유권자이니까요. 하지만 축협 조합장 선거운동을 하려고 하면 그 중에 1960명 정도만이 선거운동의 대상자입니다. 공직선거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죠. 그럼 어떻게 선거운동을 해야 될까요불특정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선거운동을 하기는 힘들죠. 그 중에서 축협 조합원이 몇 명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럼 일일이 축협 조합원이 물어본 뒤 조합원이라고 대답하면 선거운동을 해야 합니까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조합장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명부 그러니까 선거인 명부가 필수적입니다. 명부를 확보해서 그 조합원을 대상으로 일일이 선거운동을 해야 합니다.     금권선거   그런데 조합원 명단이 농협에서는 1급 비밀문서입니다. 조합원 명단을 가져오려고 하면 농협직원이 본인 주민등록을 입력해야만 가져올 수가 있어요. 그리고 수시로 관리해서 누가 가져갔는지 확인을 합니다. 그럼 조합장 선거에 나가려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합법은 아니지만 어떻게 해서든 조합원 명부를 구합니다. 그런데 조합원 명부를 구해도 주소랑 연락처는 자세히 나와 있지가 않아요. 평소 조합활동이 없었으니 얼굴도 모를 수밖에요. 하지만 같은 동네 사는 분들은 누구인지 알거든요. 그럼 각 마을로 찾아가서 조합원을 직접 찾아가 만납니다. 선거법에서는 금지가 되어 있는 호별방문입니다. 그래서 조합장 선거후보가 조합원을 만나고 있을 동안 바깥에 사람을 세워두고 망을 보게 합니다. 망을 보는 사람들은 보통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죠. 일종의 과거 지역지구당이 있을 시절에 동과 면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해서 동책(洞責), 면책(面責)이나 다름이 없죠.이 동책, 면책 조직이 바로 돈을 살포하는 조직이 되는 것이죠. 결국 일반 공직자 선거와 달리 유권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합원명부도 없이 선거운동을 하려다 보니 음성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그 조직을 통해 조합원을 만나고 그 조직이 돈을 살포하는 조직이 되어 금권선거로 타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위탁선거법에서는 이걸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죠. 위탁선거법 이전에 농협선거법에는 그래도 숨구멍 하나가 있었어요.합동연설회죠. 합동연설회는 후보들이 모여서 정책을 발표하고 조합원들이 모여서 들을 수 있는 일종의 알권리, 검증할 권리를 부분적으로 제공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합동연설회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예전에는 고무신을 주고 막걸리를 줘야 모였지만 이제는 주민들 의식이 바뀌어서 합동연설회 한다고 하면 정말 많이 모입니다. 활기도 있고요. 연설을 하면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 평가합니다. 그런데 위탁선거법에서는 그것마저 금지해 놓았어요.     과거보다 더 나쁜…   그럼 현재 위탁선거법 환경에서 동시조합장 선거를 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현재는 딱 정해져 있습니다. 과거와 똑같거나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전현직 조합장의 리턴 매치이거나 임직원들이 출마해서 하거나 아니면 지방의원이 출마할 거에요. 사실 지방의원보다 지역 조합장이 훨씬 돈이 되지 않습니까지방의원을 하면서 쌓은 인지도나 대인관계들을 이용해서 조합장 선거에 끼어들겠죠. 이런 경우들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조합장 선거의 양태가 거의없을 겁니다. 일반 조합원이 조합장 후보에 출마하는 경우도 드물고 그렇게 출마하는 경우 당선권에 들지도못할 거에요. 왜누가 조합원인지 모르니까요. 전현직 조합장이나 농협 임직원들은 누가 조합원인지 알잖아요.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조합원은 알 수가 없어요. 평소 조합활동이 거의 없다 보니 누가 조합원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위탁선거법에서는 선거활동의 방식을 세부적으로 명시해놓았어요. 명함, 어깨띠, 문자 등으로 명시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명함 찍으면 뭐합니까어깨띠 두르면 뭐해요명함 찍어서 누구를 나눠줍니까조합원을 만나야 줄 수 있잖아요. 어깨띠 두르고 어디를 갑니까갈 데가 없잖아요.     참된 선거   협동조합에 있어서 선거란 것은 첫째로 제도가 공정해야 됩니다. 기존에 조합을 운영하던 사람이나 새롭게 조합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이나 공정하게 참여해서 조합원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의견을 발표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가 공정하게 보장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번 위탁선거법에서는 그런 점이 아예 결여가 되어 있어요. 서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으려면 합동연설회, 간담회, 토론회, 순회발표회 등을 법에서 보장을 해야죠. 그래서 조합원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조합원들끼리 누가 나은 후보인지 판단할 수 있게 해주어야죠. 둘째로 협동조합의 특수성입니다. 현재 위탁선거법에서는 농협 조합장 선거의 경우 의무위탁으로 되어 있어요. 위탁하는 것까지는 동의를 하더라도 의무적으로 한다는 것에는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현재는 여러가지 이유로 힘들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조합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요. 동시선거를 하되 농협 조합원들과 농협 선관위가 관리를 하고 중앙선관위는 이것을 감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면 중앙선관위도 일이 수월해져요. 이번 위탁선거에서 왜 합동설명회가 없어졌나 생각을 해보니 선관위가 감당할 능력이 안 되어서 그렇다고 봐요. 부담스럽거든요. 조합의 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 전국적으로 1300개가 넘으니까요.그렇다면 대체선관위에서 그런 것을 하되 중앙선관위는 그걸 관리만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선거는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한 행위입니다. 주인의식을 강화하고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자 훈련의 장입니다. 이번 조합장 선거를 통해 농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진정으로 농협이 농민들의 조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 기사는 2014년 10월 15일 국회의원회관 제 3간담회실에서 열린 3.11 농협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위탁선거법 토론회 중 발제자 중 한 분인 김현권 의성한우협회 회장님의 발제부분을 편집한 것입니다. 11월 중에도 토론회를 예정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토론회의 전체영상을 보고 싶으신 분은사회디자인연구소 유투브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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