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보수혁명의 길

윤상현의 보수혁신 대장정 제10차 토론회 토론문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24.06.21 16:03 의견 0

1.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보수혁명은 한마디로 보수•자유•우파 등으로 통칭되는 정치세력(국힘당은 그 일부)의 정치노선의 혁신을 의미한다. 정치노선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경세방략으로 정치철학(세계관, 역사관, 국면인식 등)과 가치, 그리고 국정 비전과 정책의 총화다. 발제자 윤평중 교수가 역설하는 ‘개혁 자유주의’와 ‘공화 자유주의’는 이념으로 통칭되는 정치철학과 가치에 대한 얘기다. 당연히 정치노선의 혁신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서사(敍事)와 정체성과 정치리더십(지도자)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물질적 이익(보편이익+특수이익)이다. 엄밀히 말하면 철학•가치•비전•정책과 물질적 이익도 서사와 정체성의 핵심 구성요소로서, 정치리더십과 함께 정치세력의 매력을 형성한다. 기독교에서 베드로의 고백과 사도신경의 위상을 생각해 보면 서사와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서사와 정체성은 공무원, 과학기술자, 기업경영자, 교수에게는 필요 없을 지 모르지만, 대중을 감동·감화시켜 교리·이념이나 가치·비전을 팔아야 하는 종교인, 정치인, 정치세력, 시민운동가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서사와 정체성은 정당의 신조, 전문, 강령과 중점 추진•투쟁 과제 등에 나타난다. 따라서 보수혁신 이든 혁명이든 그 최종 결론은 정당의 신조(가치), 강령 전문(서사), 기본정책(비전•정책)및 당면 추진•투쟁 과제와 정당운영시스템(의사결정체계 등)의 혁신과 이를 인격적으로 체현하는 정치리더십의 혁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수 혁신•혁명의 1차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선거에서 중도층 내지 교차투표층(swing voter)의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 텃밭은 말할 것도 없고 약세 지역 및 세대(호남 및 40대)의 지지율도 끌어올리게 되어 있다.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중도층 지지율의 관건은 매력=호감이고, 이는 서사•정체성과 정치리더십에 좌우된다. 지금 한국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서사•정체성과 정치리더십이다.

2.국정운영플랫폼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자신이 견지하던 정치노선과 서사•정체성을 국정운영플랫폼으로 종합화•체계화 한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이를 <국정운영 5개년 계획>(2017.7)으로, 윤석열정부에서는 <인수위백서> + <120대 국정과제>(2022.7)로 구체화 하였다. 그런데 문정부는 국정운영플랫폼 개념이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윤정부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윤대통령 및 윤핵관과 보수정당의 한계의 발로이다. 故박세일의 빈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故박세일의 빈 자리는 이외에도 정치지도자론의 실종도 빼놓을 수없다.[1]

국정운영플랫폼 개념의 부실로 인한 초보운전의 기념비 중의 하나가 어제(2024.6.19) 나타났다. 윤대통령은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오늘부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한다"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는 그 날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정부의 <120대 국정과제>(2022.7)에서는 초저출산‧저출생 대응책을 사실상 모르쇠하였다. 120대 과제 전체를 통틀어 초저출산‧저출생에 대한 언급은 국정과제 46번(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환경 조성)의 “부모의 양육부담 완화, 아동의 건강한 성장 지원 및 저출생 위기 극복”과 국정과제 50번(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의 “양성평등 일자리 환경 조성을 통한 저출생 대응 및 성장잠재력 제고”가 전부다. 2024년 1월 1일 대통령 신년사에서 비로소 연금‧노동‧교육 등 3대개혁과 동렬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언급하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년 간 펼친 정책과 다른 차원의 접근을 천명했고, ‘불필요한 과잉경쟁 개선’을 위한 ‘지방균형발전 정책의 확실한 추진’을 공언했다. 그런데 이 역시 저출산이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만큼이나 난제 중의 난제이다. 어려운 문제를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 여럿으로 분해한 것이 아니라, 동급의 어려운 문제 여럿으로 나눠 놓은 격이다. 총선 이후에는 저출산대응기획부 신설을 공언하고, 수장을 부총리급으로 올린다고 공언했는데, 피상적 진단과 안이한 대안(2024.1.18. 총선 공약; 육아휴직 급여 상한 210만으로 상향과 출산휴가 중 아빠 휴가 유급 1개월 연장 등)이 달라진 징후는 보여주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치명적인 국정과제 누락(우선순위 오류 등)은 곳곳에서 발생하여, 뒤늦게 인지하면 땜빵은 하지만, 국정운영플랫폼 부실을 초래한 깊은 원인에 대한 성찰반성이 이뤄진 흔적은 없다.

아무튼 보수 혁명이 최우선적으로 타파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국정운영플랫폼 내지 종합적체계적 경세방략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이념, 이익, 매력 3요소를 종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윤정부와 국힘당의 협소한(관료적) 안목이다.

3. 관건은 현실=시대(국내정세)인식

정치노선의 요체인 국정운영플랫폼에 대해서는 내 책(윤석열정부와 근대화세력의 미래) 제1부에서 길게 썼는데, 여기서는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그 핵심 개념은 106쪽 그림에 집약되어 있다.


윤평중 교수의 발제(개혁자유주의와 공화자유주의 등)와 관련된 부분은 가운데 시대(국내정세)인식, 즉 ‘대한민국은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하나’이다.

윤교수의 인식은 “II-2”에서 “신자유주의 광풍의 폐해가 자유주의의 신뢰성을 실추시켰다. ⇒ 격차사회, 빈부 양극화, 과도경쟁사회, 효율성 만능사회, 돈에 대한 물신 숭배로 인한 인간소외와 물화(物化)를 자유주의가 초래한 것이라는 대중의 인식”이며, “권위주의적 발전국가 시절 집권 보수우파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여러 덕목들을 체제안보의 이름으로 훼손했다. 권력분립, 입헌주의적 견제와 균형의 원리, 법치주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집권 보수우파에 의해 제약돼 왔다”고 썼다. “II-3”에서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를 설명하고 “한국 보수의 경제관은 최소국가론과 일면적 시장자유론으로 왜소화했다”면서, “II-4”에서 “한국의 격차사회화 심화, 대기업 중심 경제, 신분상승 사다리 실종, 경제의 낙수효과 부재, 공정성 결여, 불안·불신·불만의 누적으로 인한 분노사회, ‘르상티망(ressentiment)의 사회’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보수혁명의 필요조건으로 제시한 개혁자유주의는 바로 진보가 역설하는 반공권위주의, 고전적 자유주의의 현대판(?)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 냉전반공주의의 지양이다. 그러면서 오늘의 보수우파는 ‘21세기 한국의 존 스튜어트 밀’을 요청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시대(국내정세)인식이 집약적으로 표현되는 역대정부(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의 인수위 백서를 살펴보면 윤교수의 인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윤교수의 인식은 김대중•노무현정부가 아니라, 두 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로 규정한 진보•좌파의 그것과 유사하다. 아마 정치철학계와 정치담론계가 압도적으로 진보•좌파의 지적 헤게모니 하에 놓여 있었던 상황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윤석열 정부는 백서 “제1장 시대적 소명-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썼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한 단계씩 도약했던 대한민국이 최근 더 이상 뛰어오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저성장이 지속됨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아 청년세대의 기회가 극히 제한되고,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균형을 잃은 정책으로 국가안보에 위기가 닥쳤고, 크게 늘어난 재정지출로 우리는 빚더미를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해서는 확실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 역량과 잠재력을 결집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고 선진국으로 재도약을 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윤정부의 정치현실에 대한 진단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정치는 진영에 의존한 분열과 대립을 반복하며, 그 과정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공유해왔던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도 빛이 바랬다. (…)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이념과 진영중심의 대립으로 제 역할을 못했고 (…) 새로운 정부가 이념편향과 분열을 극복하고, 국력을 결집해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를 열망”(윤석열정부 출범의 의미)

이념과 상식, 이념과 민생(국민의 삶)을 대척점에 놓는 것은 이명박정부의 주요한 논법 중의 하나인데, 당연히 현실과 맞지 않다.

긴 얘기가 필요한데, 현실(시대)과 정치철학의 크게 의존하는 관념•개념의 괴리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6공화국(1988년) 출범 이후 매 5년(정부)마다 경제성장율이 1%씩 하락하는 가운데, 중국의 일취월장과 산업구조 변화와 진보·운동권의 득세에 따라 수출제조업부문, 조직노동, 공공부문, 국가규제면허 산업, 서울수도권을 한편으로 하고, 내수서비스부문, 미조직, 민간부문, 지방 등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상대적 격차가 점점 커졌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현실이다. 문제는 그 원인이다. 진보•좌파는 이를 고전적 자유주의의 현대판인 신자유주의에서 찾는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파악하는 원인은 다르다.

민주당과 진보•좌파는 약자, 피해자 의식을 탈피하지 못하여, 생산성과 임금, 위험과 이익, 비용과 편익(안전), 부담과 혜택, 노동권과 재산권, 환경보호와 경제성장 등 가치 간 조화와 균형 개념이 부재하거나 부실하다. 임금, 이익, 편익, 혜택, 안전, 고용안정(보호) 등을 늘리는 것을 자명한 진보요 개혁이요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 극단에 무상=기본=공짜 시리즈 정책이 있다. 임금과 고용 등 근로조건을 생산성이나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 간 역관계 문제로 바라 보니, 주로 대‧공기업 조직노동과 국가의 보호를 받는 규제산업‧면허직업 종사자와 공공부문 종사자 등 힘센 집단의 권리‧이익은 생산성과 상관없이 상향되면서 힘없는 집단(청년‧미래세대, 하청기업, 영세자영업, 비정규직, 납세자 등)에 대한 사실상의 약탈(지대 추구)을 자행해 왔다. 이것이 불합리한 불평등•양극화의 핵심 원인으로 지대의 최소화로 풀어야 한다. 생산성에 따른 격차는 필연인데, 이는 세금과 복지로 풀어야 할 문제이다.

4. 보수의 신조(영국 보수당과 국민의힘)

개혁자유주의든 공화자유주의든 그것은 가능하면 신조로 집약되어야 한다. 영국 보수당 당수 마이클 하워드는 2004년 1월 2일 보수주의에 대한 신조(16개조)를 신문 광고를 통해 발표했다. 이는 2020년 9월에 발표한 국민의힘 강령의 ‘우리의 믿음’으로 계승되었다. 하워드의 16개조 신조는 다음과 같다.

나는 믿는다.

1.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2. 국민이 인간 본연의 야망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3. 국민은 그들이 삶의 주인이고 간섭과 지나친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4.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5. 관료·형식주의, 갖가지 규정과 조사관, 각종 위원회와 독립적인 정부기관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6. 모든 국민은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7. 책임없는 자유는 없으며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8. 불공평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며 기회 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나는 믿는다.

9.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받았던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나는 믿는다.

10. 모든 어린이는 노후에 자신들의 부모가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나는 믿는다.

11. 영국인들은 그들이 자유로울 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12. 영국은 언제나 영국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13. 행운과 타고난 재능·노력, 그리고 부의 다양성을 통해서만이 섬나라인 영국이 고귀한 과거와 약동하는 미래를 가진 위대한 사람들의 고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들의 종이 되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믿지 않는다

14.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5. 누군가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무식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6. 누군가 건강하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병들게 됐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하워드의 16개조 신조를 창조적으로 변형•축약한 국민의힘의 ‘우리의 믿음’은 다음과 같다.

01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고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믿는다.

02우리는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03우리는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때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04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공공의 선이 존재하고, 자유는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고 믿는다.

05우리는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시대 변화에 앞장서는 것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06우리는 다양한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07우리는 쾌적한 환경과 안전한 일상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08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믿는다.

09우리는 정치가 정직하고 겸손해야 하며 모든 권력은 분립되고 견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10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이 한반도 전체의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영국에서 하워드의 16개조 신조가 어떤 맥락에서 이해되고, 현실정치에서 어떤 지침으로 작용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국민의힘의 10개조 믿음이 국민의힘 노선의 지침이 전혀 되지 못한다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마 국민의힘 의원이나 당원 중에 이를 아는 사람도 의식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사와 정체성 등이 집약적으로 표현되는 강령 전문은 어떨까? 국민의힘 강령 전문(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은 다음과 같다.

국민의힘은 모두의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정당이다. 반만년의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는 3.1 독립운동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난극복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 된 국민의 힘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경제를 이룩했으며,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민주화를 성취했다. 우리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앞장서 나갈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질서의 대전환과 북한의 핵무장, 지구환경 변화와 거듭되고 있는 질병과 재난, 경제의 질적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과 양극화의 심화, 인구절벽 등 중대한 위기 앞에 서 있다. 국가적 위기 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치는 국민이 부여한 권한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등 사회적 혼란과 함께 정치 불신을 심화 시켜 왔다. 이제 우리는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미래 변화를 선도하고, ‘기회의 나라,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우리는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임을 깊이 인식하고, 입시와 취업, 병역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반칙과 특권이 허용되지 않도록 한다. 국민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보장할 것이며, 개인의 존엄과 창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제도를 마련한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며,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하여 공동체 신뢰를 회복한다.

우리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진영 논리에 따라 과거를 배척하지 않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2‧28 대구 민주운동, 3‧8 대전 민주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간다.

5.국민의힘 강령의 문제

2020년 9월 2일 발표된 국민의힘 강령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은 전문과 ‘우리의 믿음’ 10개조와 ‘기본정책=10대 약속’의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강령의 전문과 ‘믿음’에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보편타당한 주장 중에서 극히 일부만 선별=강조할 수밖에 없기에, 중시하는 가치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강령은 과거 보수 계열 정당과 차별화를 추구하다 보니 전문에서는 경제민주화와 ‘조국 근대화 정신’과 ‘민주화운동 정신’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헌법 전문의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말이 강령에서는 ‘3.1독립운동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고’로 되어 있다. 법통이라는 말은 정신에 가깝다면 정통성은 다른 존재(독립운동 세력 등)의 통치 정당성에 대한 부정(배타성)을 의미하기에 작지 않은 변화이다. ‘민주화운동 정신’을 언급하면서 5•18과 6•10 항쟁을 넣다 보니 논란 희석 차원 또는 지역 차별, 홀대를 의식하여 대구, 대전, 마산, 부산의 민주화운동을 넣게 되었다. ‘민주화운동 정신’을 길게 서술하다 보니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조국 근대화 정신’이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부실은 보수의 위대한 서사의 모태가 되는 근대화•문명화 정신, 건국 정신과 헌법 정신이 상대적으로 홀대 받게 되었다. ‘우리의 믿음’에서는 경제자유화에 대한 우려를 배경에 깔고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다 보니 자유에 대한 우려나 경계심을 강하게 피력하였다.

“4. 우리는 (...) 자유는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고 믿는다.”, “7. 우리는 (...)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한국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주된 위협을 국가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에서 찾는다.

“2. 우리는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9. 우리는 정치가 정직하고 겸손해야 하며 모든 권력은 분립되고 견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도 정치의 소명이나 패악에 비추어 보면 너무 안이한, 하나마나한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정직과 겸손은 정치뿐 아니라 공직자나 권력 기관 등 모든 인간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강령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이자 보수의 핵심 가치인 '자유'에 대한 대접이 너무 소홀하다. 그 외에도 숱한 문제가 있으나 이쯤에서 생략한다.

6.중도층 지지를 얻는 비결

선거 표심이라는 빛을 분광기(分光器)로 분석하면 크게 세가지 색깔로 나뉠 것이다. 이념, 이익, 매력이다. 무지개 색도 문화권에 따라서 5색(중국), 6색(미국), 7색(한국)으로 다르게 느끼는데서 보듯이, 표심의 구성 색깔도 약간은 다를 것이다. 아무튼 이념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이익은 자리·예산 등 물질적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매력은 호오(好惡) 감정으로 좋고 싫음을 따진다. 가치·비전·정책은 대체로 이념과 이익의 중첩·융합이다. 여론 조사는 이념, 이익, 매력이 유권자의 출신 지역, 세대, 소득, 직업, 성(性), 종교 등에 따라 차이가 적지 않게 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10 총선 평가의 결론은 보수 정체성 강화론(보수 가치 회복론)과 중도 정체 강화론(보수 가치 변화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보수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서로 상충(trade-off)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상호 보완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즉 보수를 북한과 좌파가 일방적으로 붙인 딱지인 친일·반공·냉전·수구·기득권 성장지상주의·시장만능주의 등으로 이해하면 보수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진보·좌파적 가치를 전향적으로 수용한 19세기 영미 보수(존 스튜어트 밀 등)를 사표(師表)로 삼고, 김구·김대중·5.18을 숭모하고, 대한민국 건국·산업화의 그늘을 크게 보면서, 이를 따뜻한 보수, 개혁 보수 혹은 개혁자유주의로 포장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 스스로가 규정하는 정체성 내지 세계 보편적 기준으로 보면, 보수 강화론과 중도 강화론은 충돌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결합·상생이 가능하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기준은 국가와 시장의 역할, 노동권과 재산권(자본)에 대한 태도, 공동체와 개인의 책임, 이상(급진)과 현실(점진)에 대한 태도 등은 세계 보편적이고, 북한에 대한 태도와 대한민국 역사의 빛과 그늘에 대한 주안점 차이는 한국 특수적인 것인데, ‘지금’ ‘여기’는 보수·우파의 가치가 결코 낡지도, 과잉도 아니라고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대 정당이 휘두르는 이념은 국가-시장, 노동-자본, 급진-점진, 북한-일본에 대한 태도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견해 등으로 표현되는데, 중도층(대중)이 그 차이를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이쪽 말 들으면 이쪽이 옳은 것 같고, 저쪽 말 들으면 저쪽이 옳은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유력 정당들은 친일·독재 시비나 반미·친북(빨갱이) 시비를 통해, 자신과 상대의 이념적 차이를 설명하려고 해왔다. 이런 시비의 실제 목적은 이념적 차이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한편 양대 정당이 흔들어대는 이익은 주로 지연·학연에 따른 자리(승진·보직 포함), 예산, 사업기회 등이다. 그런데 부산·대구·광주·새만금 신공항 건설 공약에서 보듯이 지방발전 정책이라는 것도 대체로 포퓰리즘의 자장 안에 있기에, 중도층에게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이재명의 ‘민생 지원금 25만원’ 일률 지급 공약인데, 역시 중도층에게는 별무신통일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중도층은 무엇에 크게 반응하는가? 한마디로 감정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거부 감정의 핵심이 공포·혐오·모욕감이라면, 끌리는 감정의 핵심은 매력이다.

매력은 정말로 많은 요소의 결합·융합이다. 희생과 헌신의 ‘고난 서사’(스토리),일관성, 진정성, 소신과 지조, 진실과 정직, 패기와 박력, 새로움과 젊음, 좋은 인상, 품격 등. 당연히 이는 오래전부터 통용되어 온 상식이다. 그래서 기존 정치와 인물에 대한 불만을 배경으로 새정치·새인물·탈이념·탈정치를 끊임없이 부르짖어왔다.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전문직업인(연예인과 기업인 등)이나 0선(選)정치인 등이 새인물 임을 표방해 왔다. 정주영·문국현·안철수·윤석열·이준석·한동훈 등이 때묻지 않은 새인물의 계보를 이어왔다. 또 하나 한국 선거판에서 즐겨 소환된 것은 바로 막말이다. 막말은 이념·이익 보다 훨씬 대중이 이해하기도 쉽고, 분노와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새인물 한동훈이 간판인 국힘당에 대중은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 역대급 막말에 막행동까지 자행한 민주당 후보들에게도 관대했다. 뭔가 정부·여당에 아주 강력한 비매력·비호감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이 바로 서사가 아닐까 한다.

인간은 빵(이익)뿐만 아니라 자신이 정의의 편 혹은 불의와 싸우는 정의로운 존재라는 자의식(이념)을 먹고 산다. 과거와 현재(모순·부조리)를 연결시켜 자신이 정의의 편에 선 존재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아니 착각이라도 하게 만들어 주는 서사(敍事)=스토리가 표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은 동학혁명(반외세·반봉건) 서사, 도덕 서사(항일·양심 대 친일·기회주의), 민주화투쟁 서사, 노동·민중투쟁 서사, 한반도 평화 서사, 촛불시민혁명 서사 등을 배경으로 민주당=비기득권·호남·약자·소외자·노동·민중·평화 대(對) 국힘당=기득권·강남·강자·자본·대결의 구도를 만들었다.

반면에 국힘당은 1876년 개항 이후 150년간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한반도 근대화·문명화·산업화·민주화를 주도한 정치 세력이자, 이승만·박정희가 보여주었듯이 필요하면 급진적·혁명적 개혁도 마다하지 않은 친(親)서구문명, 친발전·친기업·친시장·친청년·친성밖서민(진짜 서민) 세력이라는 정체성을 전혀 인식하지도 선전하지도 못했다. 한동훈의 정교하고 깔끔한 메시지에는 정작 중요한 서사와 정체성, 시대의 아우성을 받아안은 담대한 변화와 개혁 비전이 빠져 있었다. 중도 표심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다 보니 큰 정치적 자충수를 두었다. 한국에서 중도는 흔히 반윤석열·반이재명 혹은 비국힘당·비민주당 정치성향으로 뭉뚱그려진다. 하지만 이들을 견인하는 방법이 곧 국힘당 후보의 반윤석열 발언 혹은 민주당 후보의 반이재명 발언이 아니다. 반윤석열·반이재명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라면 원인은 이념(불의), 이익(불이익), 매력(비호감)의 결합·융합이다. 비유하자면 반윤석열·반이재명이 그림자라면, 중도층이 느끼는 불의, 불이익, 비호감이 실체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림자에 주목하여 반윤석열(대통령 사과 혹은 탈당요구 등)을 외치니, 외치는 자는 신의가 없는 사람 혹은 내부 총질러가 되고, 국힘당은 (소신파가 얼마든지 할 말을 하는 정당이 아니라) 단결하여 싸울 줄을 모르는 콩가루 집안처럼 보이게 하여 보수를 경악하게 만들고, 중도를 회의하게 만들었다.

중도층에게 물었을 때, 보수와 국힘당의 노선이 더 옳고, 권력에 의한 이익 배분도 더 공정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매력이 더 강하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위대한 가치와 비전을 추구하는 정치적 결사체라는 자의식과 체질이 민주당에 비해 더 좋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총선 참패 이후 쏟아져 나온 보수 혁신 담론에서도 매력의 관건인 서사와 정체성 정립 담론이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지도자론도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

[1] 故박세일 교수의 유작 “지도자의 길”은 A4로 17쪽으로, 유교적 경세론과 지도자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도자의 덕목은 첫째 <애민(愛民)과 수기(修己)>, 둘째 <비전과 방략(方略)>, 셋째 <구현(求賢)과 선청(善聽)>, 넷째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이다. 서양 사상과 현실정치가 제공하는 통찰을 녹여내면 보다 훌륭한 지도자론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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