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체제와 민주화운동(2) 골조와 성과

-1987헌법, 군부독재 퇴진 내건 민주화운동과 당시 집권세력의 정치적 결단 의한 대타협 결과

사회디자인연구소 승인 2019.11.15 11:28 의견 0

■ 1987헌법, 군부독재 퇴진 내건 민주화운동과 당시 집권세력의 정치적 결단 의한 대타협 결과

■ 보수세력, 경제민주화·재벌개혁·복지·격차해소·기본권·인권유린 등 좌파의 공세를 수세적 수용

■ 관존민비, 공직 부패, 유전무죄-무전유죄, 사회적인 약자 무시, 강자의 갑질 등 어느 정도 해소

 

 

1987체제의 골조

 

1987년 헌법은 1987년 민주화 운동(군부독재 퇴진 및 직선제 개헌 운동)과 당시 집권 세력의 정치적 결단(6.29선언 등)에 의한 양자간 대타협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1987체제 유전자의 무한 복제와 분화(계통발생)가 시작되었다.

 

1987체제는 1987년 6월항쟁, 7~9월 노동자대투쟁, 10월의 헌법개정과 12월의 대통령선거, 1988년 3월의 선거법개정과 4월 총선으로 초기의 법·제도적 틀이 만들어졌다. 1987 체제의 정치제도적 근간은 결선투표 없는 5년 단임 직선 대통령제를 핵심으로 한 헌법과 소선거구 상대다수득표제 국회의원 선거제도다.

 

1987체제를 만든 정치지형은 각각 그 내부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지만, 어쨌든 보수(우파) 대 진보(좌파), 영남(지역주의) 대 호남(지역주의)의 대립 구도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역사인식(대한민국 역사의 빛과 그늘에 대한 인식), 북한과 남북관계, 노조와 노동권에 대한 태도였다. 세계 보편적인 기준인 국가-시장-사회-개인 간 관계는 부차적이었다.

 

어쨌든 1987체제 이전 30여 년을 관통한 민주 대 반민주(군부독재) 대립구도는 부정선거 시비가 거의 사라진 공명선거를 거쳐 직선 대통령과 여소야대 국회가 출현하면서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수십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전제적 국가·권력에 대한 의심과 편견이 금방 해소될 리가 없다.

 

1987년 이후 30여년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문익환, 김근태 등으로 상징되는 민주, 민족, 자주, 진보, 평등, 노동, 시민, 인권, 복지와 대북 유화 정책을 주창한 비주류 세력들의 정치적, 정책적, 도덕적 공세 국면이었다. 공세의 근거는 과거 정부의 헌법과 법률 위반(인권 유린, 부정부패, 각종 절차 위반)과 과거사 해석에 근거한 부도덕 시비였다.

 

헌법에 명기한 개인의 자유·권리(복지 등 기본권)와 국가의 책임·의무, 민주적 절차 위반, 야만적 고문과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그리고 정경유착, 부정부패, 빈부격차, 빈약한 복지 등이 정치적, 정책적, 도덕적 공세의 주된 소재로 사용되었다.

 

1987체제 주도세력들은 건국, 산업화 주도 세력을 독재, 학살원흉, 부패기득권 세력으로 낙인찍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기치 하에 대한민국 역사의 그늘을 부각시키면서 자신의 정통성과 신기원을 부각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재야(운동권)세력의 정신문화와 사상이념을 온전히 받아 안은 문재인정부와 집권연합세력은 2016년 11월~3월의 촛불시위에 대한 자의적 해석(촛불혁명)에 기반하여 대한민국 역사를 지극히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다.

 

광장이나 거리에서 부르짖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상향하고, 그들이 지목한 강자의 갑질을 규제하고, 자신들이 적폐로 낙인을 찍은 세력을 청산, 척결하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하지만 갑질의 왕중왕인 국가 갑질의 패악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

 

스스로를 자유, 보수, 우파, 대한민국 세력으로 규정해 온 구여당(이명박, 박근혜정부) 연합세력들은 기본적으로 수세적, 방어적이었다. 요컨대 1987년 이후 30 여년은 민주·진보·노동·시민·민족·인권 운동이 주도권을 쥐고 변화와 개혁의 공세를 펼쳤고, 이전의 집권·주류·보수·성장 세력은 여기에 수세적으로 맞섰을 뿐이다.

 

주류·보수세력은 담대하고, 공세적인 경세방략 내지 국가대개혁 담론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 단지 쟁점 없애기나 물타기 차원에서 민주·진보 세력이 주도적으로 제기한 가치와 정책을 무원칙하고, 무분별하게 수용하곤 하였다.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복지국가, 격차(불평등, 양극화) 해소, 기본권 강화, 권력기관의 과거사(인권유린, 인권침해) 청산 등이 대표적이다.

 

87체제 30여 년 동안 대중은 소득과 학력이 높아지고, 해외와 접촉(여행, 유학, 비즈니스, 매체 등)이 늘어나면서 욕구와 견문은 꾸준히 상향되었다.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은 짧게는 30년, 길게 보면 70년에 걸친 민주·진보·노동·시민·민족·인권 운동 세력의 승리의 축포이자, 공세의 절정이다. 하지만 1987체제의 빛과 그늘에 대한 성찰과 통찰이 거의 전무하여, 그 부조리를 극대화할 수밖에 없기에 공세와 수세가 바뀔 수밖에 없다. 2019년 10.3 광화문광장의 조국문재인 규탄 시위는 역사의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지점이라고 할 수있다.

 

 

1987체제의 빛

 

이 글의 주된 내용은 1987체제의 짙은 그늘과 새로운 대안체제의 골조를 말하는 것이기에 자칫, 한국 민주화운동이 이룩한 빛=성과를 간과할 수 있다.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그 성과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공기와 물처럼 향유하는 자유, 민주, 인권, 법치, 공명선거 등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혹은 고도성장(국민소득 수준의 급상승)에 힘입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다. 1987체제는 민주화의 이름으로 국가·권력(대통령, 공무원, 국회 등)과 국민의 관계를 크게 변화시키므로서 수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다.

 

국가와 시장 및 사회의 관계도 변화시키고, 중앙과 지방의 관계도 변화시키고, 공권력과 보통 시민의 관계도 변화시키고, 정부나 기업 조직의 상하(상명하복) 관계도 변화시키는 등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지금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대한민국은 조선유교체제, 식민통치, 전쟁과 분단이 낸 깊은 정신적 상처, 유신독재와 군부독재의 유산이 너무나 두터운 나라였다. 건국이후 30년은 지금의 북한처럼 야만적 고문과 사건 조작이 횡행하고, 지금의 중국처럼 공무원과 공권력은 국민에게 위압적이었다. 관존민비, 공직부패, 유전무죄-무전유죄도 뿌리깊은 관행이었다. 사회적으로도 약자 무시, 강자 전횡(갑질)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1987체제는 이런 악성 유산들을 상당 정도 쓸어냈다.

 

1987체제가 공고화되면서 비로소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사법부의 시녀화와 입법부의 거수기(통법부)화도 완화되었다. 행정부 공무원들도 부당한 지시와 명령에 대해서는 법과 규정, 공무원 노조와 행정소송 등을 방패로 하여 저항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손으로 지자체장 및 지방의원과 교육감을 뽑는 수준이지만 어쨌든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도 시작되었다. 실제로는 지방공무원 자치요, 교육자 단체 자치에 불과하지만!

 

한편 오래 전부터 헌법에 들어와 있었지만 허울에 불과했던 기본권 조항도 전향적으로 해석되었다. 여성, 장애인, 근로자, 농민, 빈민, 중소기업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이익에 대한 전향적으로 해석되고, 이들의 권리 쟁취 투쟁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기업도, 언론도, 은행도, 공무원도 권력의 눈치를 덜 보게 되었다. 오로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던 경찰, 검찰 등 공권력도 비로소 국민과 상식의 눈치를 많이 살피게 되었다. 공작정치도 현저히 퇴조하고, 공직부패도 줄어들었다. 권력에 비굴하게 굽실거리고,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는 풍토도 퇴조하였다.

 

1987체제의 성과물인 공명선거, 평화적 정권교체,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표현, 학문의 자유, 국민의 기본권, 지방자치제 등은 1987년 이후 최강의 복합권력(행정부, 입법부, 언론, 경제계, 종교계 등)이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촛불혁명정부처럼 행세하며, 보편 이성과 양심 내지 법과 원칙을 뒤흔들어대는 문재인정부 하에서도 적어도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 등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표현의 자유가 만개하면서 대통령 조롱하기와 비판하기가 누구나 별 부담없이 참여하는 국민스포츠처럼 되었다. 결과적으로 1948년부터 근 40년간 한국사회의 핵심 걸림돌로 간주되던, 인신구속, 인권유린, 언론탄압, 부정선거 등을 밥 먹듯 저지르는 후진국형 독재는 거의 사멸하였다.

 

지난 30여 년 동안 대중은 소득과 학력이 높아지고, 해외와 접촉(여행, 유학, 비즈니스, 매체 등)이 늘어나면서 욕구와 견문은 꾸준히 상향되었다. 사람의 이동과 물자의 수송을 원활하게 만든 교통수단도 발달하고, 생각을 널리 공유하고, 교신을 용이하게 만든 전화, 인터넷, 휴대폰(스마트폰), 복사기 등도 널리 보급되고, 언론 통제는 완화되고, 자유주의, 개인주의 사조도 널리 퍼지면서 대중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개인과 집단의 욕구는 더 잘 조직화되었다.

 

농업국에서 불과 30년 만에 자동차, 반도체 같은 상품을 선진국에 수출하고, 평등한 소득분배구조까지 이뤄낸 한국식 자본주의의 신화(한강의 기적)로 인해, 1960~80년대 야당과 재야민주화운동 세력이 심취했던 거대담론들 즉, 사회주의, 민족경제론, 종속이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독점강화-종속심화론), 식민지반봉건사회론 등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