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손배소 걱정없이 '파업' 속셈...노동 현장 '무법천지' 우려 (민노총 제10탄)

11.12 민노총 전국 노동자대회 단상

사회디자인연구소 승인 2022.12.29 15:06 의견 0

지난 11월 1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단체가 100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광화문광장 남쪽과 동화면세점 앞 대로에서는 자유통일당 주관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가, 숭례문-서울시청을 잇는 대로에서는 민주노총 주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22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전자는 2만, 후자는 7만명(경찰 추산) 정도였다. 참석자들의 복색과 면면을 보면, 전자가 60세 전후 여성이 다수인 자발적 의용군이라면, 후자는 40~50대가 다수인, 노조의 동원령에 따라 징집된 정규군 같았다. 전자를 묶는 것은 종교·이념(우국 충정)이고, 후자를 묶는 것은 이익이니, 전자가 겉은 부드럽고 순하나 속은 꿋꿋하고 곧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면, 후자는 그 반대일 것이다. 무기와 완력으로 싸우는 전쟁이라면 군복(노조 유니폼) 입은 정규군이 압도적 우위겠지만, 신념과 헌신으로 싸우는 전쟁이라면 의용군이 일기당천(一騎當千) 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을 상대로 지지와 공감을 얻어 내는 정치·선거라면, 이념이든 이익이든 편벽된 쪽, 즉 보편적 공감대가 작은 쪽이 필패 일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매년 11월 13일(전태일 분신일)을 전후하여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의 변함없는 구호는 노동법개정 혹은 노동탄압 저지인데, 올해는 특별히 노조법 2·3조 개정이 전면에 걸렸다. 공공기관 민영화나 구조조정 중단은 김대중 정부 출범 때(1998년)부터 빠지지 않는 메뉴다. 이번 대회의 부제는 “노동개악 저지! 노조법 2·3조 개정! 민영화 중단!”이었다. 민노총이 행사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특별히 부각시키려고 한 것은 “시행령을 통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무력화, 임금 개악, 노동시간 유연화 등 저지”와 “노조법 2·3조 개정및 민영화 중단”과 이태원 참사관련 “대통령 사과, 국무총리 사퇴, 책임자 처벌”이었다. 조합원 동원에 특별히 힘쓴 연맹위원장들은 주제 발언을 했는데, 건설산업연맹 장옥기 위원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무력화 저지, 금속노조 윤장혁 위원장은 노조법 2·3조 개정, 공공운수노조 현정희 위원장은 민영화 중단과 공공성 강화를 역설했다. 도대체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제2조와 제3조가 무엇이길레 한국 최대·최강 노조총연합단체의 핵심 구호가 이 조항 개정이 되었을까? 노조법 제2조는 근로자, 사용자, 노동조합, 노동쟁의, 쟁의행위 등 용어를 정의(定義)하고, 제3조는 합법적 쟁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을 명시했다. 노조법 제2조 제1항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정의하고, 제2항은 사용자를 ‘사업주 또는.....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로 정의하고, 제6항은 쟁의행위를 ‘파업·태업......기타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로서......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노조법 2·3조 운동 측은 근로자 정의에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를 포함한다’는 문구를 넣고, 사용자를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원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수고용직은 화물차 기사, 오토바이 배달원, 타워크레인 기사, 통신업체의 설치·수리 기사, 학습지 강사 등으로 대체로 도급 계약으로 일한다. 생산수단 없이 근로만 제공하는 근로자도 있고, 비싼 생산수단(화물차 등)을 가진 자영업자에 가까운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분업·협업의 발달, 상품서비스·기계·기술의 수명 주기의 단축, 시장의 생산·유통 비용절감 압박과 한국 특유의 고용·임금경직성이 중첩되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의 진원지는 두 갈래인데, 첫째는 근로자성이 애매한 존재, 즉 사용주와 고용 계약을 체결하고, 지휘·감독을 받으며 근로를 제공한 대가로 임금·급료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보기 힘든 사람들이 근로자로 인정 받으면 많은 법적보호 아니 특권·특혜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한 면책과 불법행위에 대한 공권력의 방조와 관대한 처분이 있다. 지난 3월~7월 화이트진로 공장 세 곳의 정문과 진출로를 봉쇄하고, 본사까지 점거한 화물차주(화물연대 조합원)들의 요구다. 둘째는 직접 고용 계약을 맺지 않은 간접고용(하청·용역·파견·자회사 등) 근로자들이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졌다고 지목한 원청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본사 사장실 점거 농성 등)를 하고도 처벌도 손배도 받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건조 중인 선박 점거로, 51일간 조선소 독(dock)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 수만 명을 실직 위험에 빠뜨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조합원들의 요구다. 요컨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은 직접 업무위탁 계약이나 고용 계약을 맺고 있지 않아도,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졌다고 지목한 원청, 즉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대기업 등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쟁의행위”의 이름으로 처벌·손배 걱정없이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노조의 무법천지요, 약탈판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처절한 투쟁 '病'은 민노총이 키우고 '藥'은 정부·원청에 요구

‘노조법 2·3조 개정 본부’의 정식 명칭은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이다. 지난 9월 14일 민주노총, 민변, 참여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93개 노동·법률·시민·종교단체가 모여 결성했다. 그런데 노조운동 역사가 긴 유럽, 미국, 일본에는 없던 운동인데, 왜 지금 민노총의 핵심 운동이 되었을까? 유럽은 길드의 전통을 이어받은 숙련공들이 회원의 질병·실업·사망 등에 대비한 공제조합과 공동구매를 위한 소비조합과 직무에 따른 “기업횡단적인 근로조건의 표준” 형성 투쟁을 위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유럽 노조의 자주, 자조, 연대, 기업횡단적인 표준 형성(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이라는 유전자는 거의 변형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이라면 완전 남남인 원청·대기업 노조와 하청·중소기업노조가 하나의 산별노조로 되어 있다. 노조의 사명은 단체 교섭을 통해 기업횡단적인 표준을 형성하는 것이다. 투쟁 방식은 한국 같은 불법적 공장점거와 정문·진출입로 폐쇄가 아니라 노조원들이 일시에 일손을 놓고 공장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walkout)이다. 이런 형태의 투쟁은 법 개정 없이도 지금도 가능하다. 사실 헌법 제33조에서 노동3권을 명시한 이유는 노조가 이런 일을 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민노총 소속 원청·대기업 근로자의 기득권을 내려놔야한다. 미국은 고용과 해고 관련 규제가 약해서, 물 흐르듯이 수요와 공급, 즉 직무와 임금이 조응되어 왔다. 일본은 사용자 단체 주도의 조정으로 기업 규모나 지불능력에 따른 임금 격차는 거의 없고, 오직 연령(생애주기상의 필요)에 따른 임금격차가 있을 뿐이다. 요컨대 한국의 힘센 원청·대기업·공공기관 노조의 약탈적 행태(유전자)와 고용·임금 유연성 부재와 파업시 사용자 대항 수단 부재에 더하여 공권력조차 점점 불법 행위에 관대해지니,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특히 유사시 구조조정이 용이하도록 일감을 하청·용역·파견·자회사로 주거나 도급화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특수고용과 간접고용이 팽창한 주요한 이유다. 또한 원청 노조의 약탈(지대추구) 분만큼 하청 등을 쥐어 짜야 하기에 원하청 간 근로조건의 격차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이에 분노한 대우조선하청노조의 처절한 투쟁이라는 병은 민노총이 만들고, 약은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원청이나 정부가 지어라는 것이다. 될 일도 아니거니와, 된다고 하더라도 병이 치유될리 만무하다. 기업들은 국내 투자와 고용을 더욱 줄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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