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빨치산의 역사관·가치관·정서에 매몰(민노총 제7탄)

언제까지 지리산과 한라산을 헤맬 것인가?

사회디자인연구소 승인 2022.12.29 14:47 의견 0

민주노총에서 종북주사파의 득세는 진짜 민주화운동가와 보편 이성•양심을 가진 노동운동가들이 뼈아프게 반추해 봐야 할 참사다. 결론 먼저 말하면, 이는 일반 조합원과 자유 시민의 방관, 민중민주파(PD) 등 경쟁 정파의 풍화(퇴직, 노화, 노선전환, 결속력 약화 등), ‘조선력사’와 ‘해전사’적 역사인식 때문이다. 결정적인 것은 희생자들의 피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고난과 피와 2천 년 동안 이어진 수많은 순교자의 피의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종북 주사파들은 해방 이후 분단•전쟁 과정에서 지리산•한라산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산야에서 혹은 통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등 지하혁명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중에서 죽어간 이른바 통일열사들의 피의 세례를 받았다. 사실 이들은 인품은 고매한 사람이 많았을지 몰라도, 그 정치행위는 본질적으로 나치 친위대만큼이나 반역적, 반문명적이었다. 하지만 종북 주사파들은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 정치인=혁명가들의 목적(북한 주도 통일과 수령 독재 체제 옹호)과 본질(반대한민국 간첩 활동 등)에는 눈을 감고, 그 인품과 선한 동기와 혹독한 고생과 부당한 인권침해(고문이나 조작 등)만 조명하여, 통일 열사니, 양심수니 하며 숭모해왔다.

문재인 전대통령이 지난 23일 언급한, 32년 전에 읽었다는 정지아 작가의 <빨치산의 딸>(1990년 출간)은 빨치산의 인품, 동기, 고생, 핍박만 조명한 자전적 소설이다. 높은 산은 고도에 따라 식생(植生)이 달라진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평균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은 강해지고, 토질은 척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이 본 식생이 산 전체의 식생이라고 우기면 안 된다. 민주노총의 사상이념적 성향도 킬리만자로산의 식생과 비슷하다. 일반 조합원이 믿는 것과 상층 지도부의 성향은 매우 다르다. 자주적인 노조라면 아무래도 사용자와 불편한 관계이기 십상이라, 노조 간부나 활동가는 징계, 해고, 구속, 손배 위협에 놓인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 노조 간부가 더 엄혹한 환경인 것은 조합원이 요구하는 노선 자체가 약탈적(지대추구적)이라, 훨씬 큰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조직 활동이라는 것은 원래 많은 조합원과 소통•교류하고, 함께 웃고 울고 노는 것이라서 개인과 가족의 가치를 많이 희생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을 뽑는 선거라면, 당선만 되면 권력과 명예(가문의 영광)도 생기고, 높은 보수가 보장되는 직장도 생기지만, 노조선거는 그런 것도 아니다. 요컨대 노조 간부가 되려면 고산의 식물처럼, 척박한 환경을 견뎌낼 수 있는 남다른 신념(이념, 신앙, 소명)과 갈등을 이겨낼 수 있는 내성(강단)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다 갖추기 어렵다. 그래서 신념과 이익을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고 협력하는 조직(정파나 계파)이 필요하다. 한라산 정상보다 킬리만자로산 정상의 생육 환경이 더 혹독하듯이, 민주노총과 주요연맹 집행부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은 더 굳센 신념, 강단과 더 단단한 결사가 필요하다.



한국 노동운동은 20세기 초반 걸음마 시절부터 강한 이념성•정치성, 즉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식민주의)적 성향을 띠었다. 서구와 달리 초기 노동운동의 주역은 유럽 길드(장인들의 자조, 연대, 담합 조직)의 전통을 계승한 숙련공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서 부두, 철도, 고무공장 등 단순 육체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들어, 필자를 포함하여 학생운동으로 단련된 수많은 청년이 노동자의 의식화•조직화를 목적으로 공장으로 대거 들어갔다. 이들 운동권의 양대 산맥은 계급 모순(노동과 자본의 투쟁)을 강조하고, 러시아 혁명을 모델로 한 민중민주파(PD)와 민족모순(미국•일본과 우리 민족 간의 투쟁)을 강조하고, 반미연북노선을 견지한 민족해방파(NL)였다. 전자는 소련, 동구의 몰락과 중국의 개혁•개방과 북한의 참상을 보고 혁명노선을 전환하고, 합법 정당(민중당과 민주노동당 등) 운동에 진력하거나 전투적 조합주의(경제적 실리주의)로 변신하였다. 하지만 후자는 헌법과 법률 테두리 안에서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다가, 뒤늦게 민주노동당에 스며들어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들의 이념, 조직, 활동력은 단지 콘텐츠와 돈을 공급하는 조선로동당의 공작 때문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지난 150년의 역사를 문명개화의 역사가 아니라, 민족적 자존심이나 위대함이 구겨진 역사로 보는 역사인식이 중국과 남북한 엘리트(중국공산당, 조선로동당, 남한운동권)와 대중의 뇌리에 깊이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시대착오는 21세기 남한의 종북주사파들이다. 이들은 남북한 비교를 통해 무엇이 자유, 민주, 정의, 번영, 자주, 통일의 편인지 혹은 그 반대의 편인지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과 빨치산의 역사관, 가치관과 정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자유주의나 기독교사상에 입각한, 서구식 노조운동 노선을 정립하고 실천하는 대안 활동가조직과 정당이 없어서다.

종북 주사파 집행부에 대한 불복종·불신임 운동 시급
민주노총의 종북주사파적 행보는 양경수 집행부가 등장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양경수, 진경호(택배 노조위원장), 김태완(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과 김은형(부위원장•통일위원장)과 통일선봉대원들은 수면 위로 올라온 빙산의 일각이다. 이들은 김대중정부 시기 대법원판결로 이적단체로 확정된 한총련의 핵심 간부였다. 양경수는 총학생회장 당선과 동시에 수배자가 되던, 2001년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장을 지낸 신념(?)의 전사로 기아차 화성 사내하청분회장 출신이다. 진경호는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으로 2007년 평양을 방문하여, 정부의 금지 방침을 어기고, 일행과 함께 혁명열사릉을 참관한 통일전사다. 김태완은 홍익대 부총학생회장 출신으로, 2012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고, 후에 택배 기사로 취업했다. 이들은 호구지책이 아니라, 의식화•조직화를 위해, 취업과 조직이 쉬운 곳에 들어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과거 같았으면 서울상대 운동권으로 노동현장에 투신하여, 1978년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김문수(현 경사노위 위원장)와 1985년 ㈜통일 노조위원장과 1999년 민주노총 금속연맹위원장으로 선출된 문성현(전 경사노위 위원장) 급의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상이념, 지적 능력과 운동권 내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김문수•문성현은 캄캄한 밤의 촛불이었다면, 양경수•진경호는 대낮의 촛불이다. 그것도 독가스를 뿜어내는! 사실 김대중•노무현과 문재인•이재명의 차이만큼이나 김문수•문성현과 양경수•진경호의 차이가 크다. 그런 점에서 정치리더십만이 아니라 노조리더십 역시도 엄청나게 퇴화하였다.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자, 후배, 삼촌, 이모, 조카인 민노총 조합원에게 위원장 등 집행부는 일종의 쥐 잡는 고양이다. 종북주사파든, 종업원 이기주의(조합주의)파든, 출세주의자든 상관없이 해고, 구속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 더 높은 임금과 더 많은 복리후생이라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본다. 사실 대다수 조합원은 연맹의 좌익적 강령에 별로 관심도 없고, 동의하지도 않는다. 조합원들은 강령과 집행부의 종북주사파적 행보를, 조합원들의 권리이익을 위해 고생하는, 취향 독특한 상층 간부들이 즐기는 이념적 자위(自慰)나 마약 정도로 여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반문명•비이성적인 행태는 일반 조합원들과 자유 시민들이 노조 정치(위원장 선거 등)를 외면한 나쁜 결과다. 집행부에 대한 항의(경위 해명 요구)와 불복종, 불신임 운동이 진정으로 필요한 경우는 바로 이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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