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난 노동관계법과 온정주의·포퓰리즘적 법원(민노총 제 5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종범 혹은 주범-

김대호 승인 2022.12.29 14:24 | 최종 수정 2022.12.29 14:29 의견 0

민주노총은 노동시장의 공정과 상식, 유연과 안정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다. 이는 헌법 및 노동관계법과 법원의 온정주의적 법해석과 공권력의 불법에 대한 미온적 대처가 삼중사중으로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헌법은 조문이 아니라, 그 모태이자 첫 단추인 정신, 즉 시대·현실 인식이 문제다. 1987년 이후 제개정된 수많은 노동관계법은 한 때는 근로자의 권리·이익 증진에 긍정적으로 기여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정규직을 과보호하고,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노조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행사하게 만들어, 공정과 상식을 오히려 짓밟고 있다. 한국 노동관계법은 40개 가량 되는데, 대표적인 법은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노동조합및 노동관계조정법)이다. 전자는 개별적 근로관계를, 후자는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한다. 그 외에도 최저임금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중대재해처벌법과 특정한 근로자 집단(산업재해근로자, 진폐근로자, 건설근로자, 파견근로자, 외국인근로자, 선원, 어업원, 교원, 공무원, 기간제및 단시간근로자, 파견근로자 등) 보호법이 있다.


노동관계법 대부분은 근로기준법의 각론, 즉 개별 근로자 보호법이다. 노동관계법의 모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보장을 명시한 헌법 제10조와 제34조①, 그리고 ‘근로의 권리, 적정임금 보장 노력, 최저임금제 시행’을 명시한 헌법 제32조①과 노동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명시한 헌법 제33조①이다. 노동3권은 제헌헌법(제18조)부터 있었고, 적정임금은 1980년 헌법에, 최저임금제는 1987년 헌법에 처음 들어왔다. 노동관계법의 대전제는 근로자는 사용자에 비해 약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으로 개별 근로자와 사용자가 맺는 계약에 개입하고, 근로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주적으로 단결•교섭•행동하는 것을 보장해야 힘의 균형이 맞아서, 헌법적 가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는 경제적 자유권이나 재산권과 충돌한다. 분업과 협업이 발달하면 가치생산생태계 내지 먹이사슬 피라미드에 속하는 근로자 중에서 상층에 있는 쪽은 다른 이해관계자(협력업체, 소비자, 주주, 미래 근로자 등)에게 얼마든지 불공정 거래를 강요할 수가 있다. 또한, 근로자의 기술과 열정이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부문•산업•기업에서는 사용자와 관계에서 결코 약자가 아니다. 특히 민주적 통제력이 잘 작동하지 않는 정치 후진국에서는 거대한 조직과 로비력(법령과 정책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사용자인 국민의 이익을 크게 침해할 수가 있다. 1999년에 전면 개정되어, 이후 10차례 소폭 개정된 스위스연방 헌법은 충돌할 수 있는 권리 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한국 헌법과 달리 연방과 주(칸톤) 및 지자체(게마인데), 연방과 국민 간의 계약 문서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위스연방 헌법은 재산권-경제적 자유-노동권의 관계를 이렇게 서술했다. 제26조는 “재산권의 보장” 제27조는 “경제적 자유 보장”을 천명했다. 제28조에서 “조합결성의 자유”와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의 원칙을 천명했다. 그런데 한국과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①노동자, 사용자 및 그들의 조직은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단결하고, 단체를 구성하며, 단체에 가입하거나 가입하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 ②쟁의는 가능한 한 교섭과 조정에 의하여 해결되어야 한다. ③파업과 직장폐쇄는 노동관계와 관련되고, 노동평화를 옹호하거나 조정의 교섭을 유도할 책무에 방해가 되지 아니하는 한 허용된다.”(중략) 한국 헌법 제33조는 선언적인 노동3권 보장과 공무원및 주요방위산업체 근로자의 권리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음을 명시했을 뿐이다. 한국 헌법에는 노동자와 노조 역시 사용자와 사용자단체와 마찬가지로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없다. 파업과 직장폐쇄로 대표되는 노사 무기의 대등성에 대한 인식도 없다. 재산권 보장은 헌법 제23조 ①에,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은 헌법 제119조 ①에 서술되어 있는데, 노동권과 충돌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 관련 조항은 한국과 일본 헌법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한국은 헌법 제7조에서 “①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썼다. 하지만 일본은 헌법 제15조에서 “① 공무원의 선정및 파면은 국민의 고유한 권리이다. ② 모든 공무원은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지 일부에 대한 봉사자가 아니다.”(중략)고 썼다. 한국은 헌법 제1장 ‘총강’에서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강조하는데 반해, 일본은 제3장 ’국민의 권리 및 의무’에서 ‘공무원 선정, 파면을 국민의 고유 권리’임을 강조하였다. 공무원의 특권 계급화를 우려하고, 민주적 통제를 강조한 것이다. 헌법의 공무원, 노동권, 재산권, 경제적 자유권 조항을 스위스나 일본처럼 바꾼다고 해서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헌법과 법률은 정신의 표현일 뿐이다. 정신을 바꾸지 않고 법조문만 바꿔서는 안된다.


한국 노동관계법은 정규직과 노조를 과보호한다.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정부와 공공기관) 등 ‘갑(甲)’ 기업 노조는 사용자 등 다른 기업이해관계자들보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누린다. 노조의 주력부대인 이들은 직장 담벼락을 넘어 연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연대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다. 폭넓게 연대하려면 교섭력이 떨어지는 ‘을(乙)’ 기업의 지불능력이 허용하는 낮은 근로조건을 공동의 요구로 삼아야 하기때문이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 과보호와 그로 인한 과도한 임금 및 고용 경직성은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와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법 조항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법원의 온정주의적, 포퓰리즘적 해석의 문제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는 해고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법조문은 거의 모든 나라의 근로기준법에 다 있다. 문제는 한국 법원은 ‘정당한 사유’를 아주 엄격하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근로조건이 외부 노동시장 수준에 근접하여, 숙련 근로자의 이직을 걱정하는 중소기업은 해고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근로조건이 하는 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곳의 해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적으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당시, 원청의 정리해고는 살인으로 치부되었지만, 하청의 그것은 단지 전직의 계기였을 뿐이다. 이 차이는 사회안전망의 차이가 아니라, 고용임금에 들어있는 지대(초과임금) 크기의 차이다. 노조의 기형성은 법 조항 자체와 공권력 집행의 문제이다. 노조법 제43조(사용자의 채용제한)는 파업 시 대체인력투입을 원칙적으로 금하였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파업은 단체로 일손을 놓고 공장 밖으로 나가서 하는 집회와 피케팅이지만, 한국의 파업은 공장 안 집회를 의미한다. 권위주의 정부는 공장 밖 집회를 엄격히 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업이 공장 안 집회가 되자 공장 출입문 폐쇄와 생산시설 점거가 예삿일로 되었다. 노조법 제37조에서 “③노동조합은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하고, 제42조에서 “①쟁의행위는(…)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라고 명시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공권력이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하고 신속한 진압을 꺼리는 행태는 1987년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심해졌다. 바로 민노총과 민주당의 합작품인 것이다. 불법 파업에 대한 민사상 책임 상한선을 두려는 ‘노란봉투법’은 그 연장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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