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괴력의 비밀

-진보의 핵무력 민노총을 해부한다-

김대호 승인 2022.09.22 06:09 의견 0

노조, 특히 민주노총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민노총의 가장 경악스러운 얼굴은 친북·반미·반대한민국도 모자라, 반시장·반기업 성향까지 농후한 정치단체의 얼굴이다.

지난 8월 13일 서울 도심에서 개최한 8.15전국노동자대회는 그 희한한 얼굴을 잘 보여주었다. 주된 구호는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한미일군사협력 반대! 반민생 반통일 윤석열의 대결정책 규탄한다!”였다. 압권은 대회사에 이어 등장한 북한 조선직업총동맹의 연대사였는데, 제목이 “로동자의 억센 기상과 투지로 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무분별한 전쟁대결 광란을 저지파탄시키자” 였다. 민노총의 이런 얼굴은 양경수 집행부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현대·기아차 노조 등을 지부로 둔 민노총 전국금속노조 통일강령은 “우리는 국토를 강점한 미군을 조속히 철수시키며, 자주·평화·민족대단결 원칙에 기초해 통일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한다”라고 되어있다.

민주노총 홈페이지, 8.15 전국노동자대회 소개 미디어자료(2022.8.5.12:18)


이 못지않게 흉측한 얼굴이 조직폭력집단의 얼굴이다. 단적으로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선박점거농성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파업, 즉 소극적 노무 제공 거부 행위가 아니었다. 회사에 목을 맨 수십만 명의 생존권에 총구를 들이댄 인질극이나 다름없었다. 건설현장에서는 민노총 노조원만 고용하라고 강요하며, 출입문 폐쇄 등 조업 방해를 예사로 한다. 지난 2월 10일 광명시 한 공사 현장에서 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100여 명이, 한국노총 노조원 15명의 현장 진입을 가로막아 큰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그 직후 한노총은 민노총 노조원 10명을 경찰에 고소하면서 “민주노총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설 노동자들이 폭행과 폭언, 취업 방해와 차별을 겪고 있는데, 정부와 사법 당국은 민노총의 압박에 전전긍긍하며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라고 성토했다.

한국의 노조는 산업·업종 근로자가 아니라, 종업원의 권리·이익만 철저히 옹호하는 얼굴도 가지고 있다. 아마 노조원들이 인정하는 유일한 얼굴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관계법과 법원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노조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가지게 만들어 놓았기에, 공무원과 노조원은 현대판 양반귀족처럼 되었다. 사실 대다수 민노총 노조원들이 양경수 등 일부 간부들의 친북·반미 편향성에 공감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어쨌거나 이들은 헌신적인 투쟁으로 노조원들의 권리·이익을 지키고 올리는 데 앞장서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서구에는 있는 자유주의나 기독교정신으로 무장한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없다는 얘기다.

그 결과 주인 없는 조직, 특히 정치권 낙하산이 스쳐 지나가는 공공기관에서는 노조가 사실상 주인이다. 하지만 권리 행사는 주인처럼 하지만, 상응하는 책임은 정부가 지라고 한다. KBS, MBC, YTN 등 공영방송들은 이런 주인 아닌 주인이 지배하는 노영방송이다. 당연히 이런 얼굴들은 정치인이나 국회만큼이나 많은 비판을 받게 하지만 노조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왜 이럴까? 이 수수께끼는 노조와 민노총의 얼굴 전체를 보아야 풀 수 있다. 노조의 힘의 원천은 사회적 약자, 특히 외로운 취약 근로자의 친구 얼굴이다. 이를 근거로 2천만 명이 넘는 근로자 전체의 대변자·대표자 역할도 자임하고 또 인정받는다. 헌법 제33조는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명기한 이유는 바로 이 아름다운 얼굴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런 암묵적 기대와 요구를 무참히 배신해 왔다. 특히 민노총은 여기에 정면 역행해 왔다. 하지만 현실(실상)을 모르거나 노조와 야합한 정치인들에 의해 튼실한 법적 보호를 받으면서, 국가정책, 예산, 인사 등 다방면으로 손을 뻗쳐, 공정과 상식을 짓뭉개고 있다.

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앙·지방노동위원회, 국민연금 정책(미래세대에 재앙적인 소득대체율 고집 등), 의료 수가 조정 등을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등 주요 기관에서 큰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예산으로 운영되는 각종 센터나 기관을 민노총이나 한노총에 위탁한다. 서울시의 경우 박원순 전시장이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노조나 친노조 인사들에게 노동권익센터와 노동자 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게 하였다. 이는 취약 근로자의 고마운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자유보수 활동가 또는 조직의 취약, 자유보수 정당의 풀뿌리 일상활동 부재, 선진적인 이념을 가진 노조(국민노조 등)에 대한 무시·외면 등의 결과이기도 하다.


노조와 민노총의 괴력의 원천은 정치와 정당의 허약 또는 부실이다. 연고나 선동이 아니라, 이념과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건강한 당원이 드문 상황에서, 자유보수 정당은 교회가, 민주진보 정당은 노조가 당내 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게다가 양대 정당의 고용노동 비전과 정책이 부실하다 보니, 이를 한노총(자유보수당)과 민노총(민주진보당) 출신들에게 위탁하다시피 하였다. 그런 점에서 노조와 민노총 괴력의 원천은 오래 전에 탱자로 변한 사실을 모르고, 선진국처럼 무슨 귤이라도 되는 양 각종 거름을 지속적으로 퍼부어 준데 있다.

지노조(知勞組), 지민주노총(知民主勞總)

2500년 전 그리스의 현인 소크라테스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너 자신을 알라’ 일 것이다. 한자(漢字)로 쓰면 지기(知己)다. 2200년 전 중국의 현인 한비자(韓非子)는 모든 임금에게 충고할 단 한마디를 지하(知下)라 하였다. ’아랫 사람을 알라’는 얘기다. 만약 두 현인이 재기(再起)를 노리는 한국 자칭 민주진보세력에게 단 한마디 충고를 한다면 무어라 할까? 내 생각에는 ‘너 자신과 노조를 알라’가 아닐까 한다. 특히 한국 노조의 중핵인 ‘민주노총을 알라’가 아닐까 한다.

노조와 민노총을 알면 고용노동 문제, 즉 불공정·불평등·양극화·저출산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보인다. 더 나아가 정치·경제·산업·공공·복지·연금·교육 등 국가와 민족의 명운을 가르는 현안들의 원인과 해법도 보인다. 당연히 대한민국 기사회생을 꿈꾸는 자유보수세력도 노조와 민노총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물론 보수나 진보나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한국의 노조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몇 개 가지고 있다. 변신의 귀재 카멜레온이 아니라, 실제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 여럿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노조 스스로도, 그 비판자들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니 그 불굴의 생명력과 놀라운 시대착오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 노조의 중핵인 민노총은 친북·반미·반보수 성향의 정치단체적 얼굴과 불법적 조업방해및 사업기회 독점을 능사로 아는 조직폭력집단적 얼굴과 오로지 종업원의 권리·이익 지키기와 올리기에 매몰된 기득권·이익집단의 얼굴도 가지고 있다. 또한 사회적 약자와 취약 근로자의 고마운 친구의 얼굴과 2천 만명이 넘는 근로자 전체의 대변자·대표자의 얼굴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천권의 향배를 가르는 유력 정당 당내 경선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잘 조직된 책임·권리 당원 집단의 얼굴도 가지고 있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우리를 종종 경악하게 만드는 민주노총 같은 노조는 다른 나라에는 없다. OECD국가에도 없고, 대만, 중국, 베트남, 동남아에도 없다. 민주노총과 주요 산하 노조들은 원산지의 귤이 풍토가 전혀 다른 한국에 들어와 탱자로 변해 버린 경우다. 남미 대륙에서 1천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諸島)의 동물들처럼 이상하게 진화해 버렸다. 시장(자본)과 국가(공권력)의 견제·길항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기괴한 사회주의 국가가 된 것과 비슷하다. 북한도 폭정을 피해 국외로 달아나기도 어렵고, 저항하기도 어렵기에 정권에 대한 내적 견제·길항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2.9.20 자유일보에도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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