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로 정책을 꿰라

-취임 2개월 윤대통령에 대한 높은 부정평가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김대호 승인 2022.07.15 16:58 | 최종 수정 2022.07.15 17:48 의견 0

한국갤럽 등 여론조사 기관이 30 여년 전부터 동일한 문항으로 실시 해 온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긍정 평가 보다 부정 평가가 훨씬 높게 나온다. 한 달 만에 완전히 역전되었다.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역전의 이유는 ‘도대체 윤정부가 뭘 하는지,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모르쇠 하거나 여론조작이라고 부정할 일이 아니다.


겸허한 성찰과 반성은 필요하다. 도대체 왜 이럴까? 사실 윤대통령과 대통령실 직원들도, 행정 각부 공무원들도, 국민의힘도 경제민생의 어려움을 모를 리가 없고, 열심히 일하지 않을 리가 없다. 단적으로 지난 5일 윤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전 세계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심각한 물가 충격을 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제가 민생 현장에 나가 국민의 어려움을 듣고, 매주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주재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8일 제1차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열고, 물가 급등에 따른 생계비 부담을 덜기 위해 수입 축산물 관세 면제와 취약계층의 에너지 및 식료품 구입 부담을 낮추는 등 총 8천억 규모의 경제민생 대책을 내놓았다. 출범 한지 2달 남짓이지만, 이런 소소한 정책이나 대책이 수백 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 부정평가가 높은가? 야당이 발목 잡기를 한 것도 아니고, 언론이 특별히 왜곡 보도를 한 것도 아닌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구슬이 정책이나 대책이라면 꿰는 실은 가치다. 이게 잘 꿰어지면 비전이라는 보배가 된다. 윤정부가 뭘 하는지, 뭘 하려고 하는지 국민이 쉽게 알게 된다. 가치는 출마선언문, 현장 유세, 정책공약집, 취임사 등에서 역설한 자유, 공정, 상식, 법치 같은 것이다. 이는 윤대통령이 피끓는 대학생 시절부터 26년 검사 생활을 마칠 때까지 나름 진정성있게 견지한 소신과 원칙이자, 문정권과 이재명에 반대한 자유·보수·우파 진영이 공유해온 비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정부가 내놓은 서말의 정책·대책과 말과 (윤통과 김여사의) 행보는 이런 가치로 꿰어지지도 않았고, 설명되지도, 포장되지도 않았다. 표방한 가치와 정책대책과 행보와 인사가 따로 논다.


단적으로 지금 노동 현장이나 생활 공간 등에서 자유를 억압하고, 법치와 상식을 능멸하고, 공정에 반하는 일들이 비일 비재하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의 불법적 사업장 점거가 대표적이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2021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국무회의에서 (6월 7일 반도체 관련 토론에 이어) 두 번째로 주제 토론을 했다고 한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평가에서는 실적부진 기관(D등급과 E등급) 18개 기관에 대해 기관장 1명 해임 건의, 3명 경고를 하고, 당기순손실이 발생한 공항공사, 철도공사 등 11개 공기업의 기관장·감사·상임이사에 대해서는 성과급 자율 반납을 권고하였다는 것을 보도자료 표지에 게재했다.


윤대통령은 이를 받아 “공공기관 평가를 엄격하게 하고 방만하게 운영돼온 부분은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면서 호화 청사 매각 또는 임대, 고액 연봉자들의 연봉 일부 반납 및 복지 축소, 불필요한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늘리기로 대표되는 문정부의 구조조정 회피 내지 역주행 정책과 확실한 단절 의지를 보여 주었으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럽긴 하다. 그런데 윤대통령이 지적한 호화 청사, 고임금, 후한 복지, 방만 경영(운영), 경영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철밥통, 널널한 노동강도, 가분수형 조직, 강성 노조, 주인 부재, 신의 직장, 낙하산(선거공신 보은)인사, 공무원 정년퇴직후 이모작 인생을 즐기는 놀이터 등도 끊임없이 거론되어 온 부조리다. 당연히 문정부가 문제 해결을 회피하거나 문제를 악화시키긴 했지만, 실은 역대 정부가 다 골머리를 앓고 있던 부조리다. 그래서 모든 정부의 주요 개혁과제로 채택했던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 같은 부조리다. 당연히 다 해결할 수없다. 국회 다수 의석을 가져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7월 2일 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주력이 되어, 서울 도심에 6만명을 동원한 ‘7·2 전국 노동자대회’는 공공부문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성 시위다. 하지만 부조리의 핵심 내지 근본을 알고, 자유 공정 법치 상식을 내걸고 작은 개선개혁을 하는 것과 그것을 모르고, 기재부 관료의 손아귀(과제 축소, 은폐, 호도)에서 놀아나 곁가지 잡고 생색내는 것은 다르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백서에서 “공공기관은 감사와 견제의 부족으로 ‘신이 내린 직장,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 불리며 방만한 운영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 됐다”고 쓰고, 핵심 국정전략으로 ‘공공기관 경영혁신과 정부 예산 10% 삭감’을 공언했다. 실행 여부와 상관없이 담대한 포부는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백서에서 “공공기관 책임경영 등 합리화”를 표방했는데, 얘긴 즉 “공공기관은 성과평가가 어려우므로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어,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기관장 선임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기관장의 책임성을 강화하며 성과에 대한 평가를 철저히 수행”하겠다는 것이었다. 핵심은 기관장 및 임원 자격 요건 강화다. 이로인해 박근혜정부 시기에 공공기관 기관장 및 임원의 공석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다고 해서, 기재부가 올린 자격 요건을 갖춘 기관장 및 임원은 일을 얼마나 잘했던가? 솔직히 이번에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여 기관장·감사·상임이사 성과급의 자율 반납을 권고 받은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인천항만공사, 한국마사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강원랜드, 대한석탄공사, 한국석유공사 등이 기관장이 못나서였을까? 공기업의 문제가 이 따위 평가로 기관장·감사·상임이사 성과급의 자율 반납 정도로 털끝만큼이라도 해결이 될까? 이거 관료적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소꿉장난 아닌가?


그런데 윤석열 후보의 정책공약집(공정과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대한민국)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백서에서는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무지해서가 아니라 정무적 판단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취임 일주일 만에 한 국회시정 연설(5.16)에서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을 공언했는데, 이는 공공기관을 포함한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기득권을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이다. 당연히 이는 책임장관(?) 선에서 추진될 일이 아니다. 한덕수 총리와 국무조정실? 김대기 비서실? 장성민? 추경호? 도대체 될 일이 아니다. 사실 가치, 비전과 정책, 대책과 말, 행보(일정)를 조화롭게 결합하고 조정하라고 있는 조직이 정책실인데, 무슨 생각인지 없애 버렸다.


당연히 윤정부가 열심히 토론해서 내놓은 정책이나 대책 중에서 자유, 공정, 법치, 상식 등 가치와 비전으로 꿰어지고, 설명되고, 포장되는 것들이 있나?
이게 바로 가치와 비전을 고민해 본 적이 없고(그 많은 일 중에서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고), 단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위에서 지시한 일 수행하는 것으로 청춘을 보낸 직업 관료들이 정권을 주도하면 생기는 일 아니던가?


통일부에서 지금 " 비밀 강제북송 들통& 거짓말" 사건 관련 사진을 내놓은 것은 정치인 권영세가 장관으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권영세 장관이 정권교체와 정책전환의 효능감을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공개 시점이 적절했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해야 할, 정의로운 일이다.


아무튼 정책이나 대책의 결론은 무엇을 올리거나 내리고, 늘리거나 줄이고, 없애거나 만들고, 끊어내는 것 등으로 간명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맞서 싸워야 할 대립물이 생겨난다. 가치와 정책·대책과 인사는 일관성있는 하나의 이야기(story)로 엮어야 국민의 뇌리에 깊숙이 박히고, 널리 회자된다. 이야기는 가치와 대립물이 분명해야 성립한다. 특히 진상·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나쁜 정책과 단절 등 변화에 대한 열망이 들끓는 정권 초기에는 대립물 없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 대통령들이 좋아하는 “직접 챙기고, 보듬고, 엄중 주시”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비전도 연상을 하게 못한다.


윤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그것은 바로 ‘자유’라 하였다.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하였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 하였다.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 된다고 하였다. 현장 연설에서는 “법치와 상식과 공정을 기반으로 경제의 번영”을 일으키는 토대를 만들겠다 하였다. 그런데 그 자유는 취임사에서 왕창 써먹고(무려 35번) 더 이상 쳐다 보지도 않으련가?


영국 마가렛 대처 수상의 주의주장; 이른바 대처리즘(Thatcherism)의 핵심컨셉은 간명하다. “개인을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기업을 정부와 노조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정부를 복지부담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이걸 윤정부가 그대로 답습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비상 경제 민생" 정책이라 하더라도, 정책과 말과 행동(김여사의 일정을 포함하여)은 이처럼 가치와 비전으로 꿰고, 설명하고, 포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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