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법률과 정치의 문제

규제의 질이 국가의 흥망을 가른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승인 2022.06.15 09:26 의견 0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 10일 드론, 로봇, 바이오·헬스케어, 에너지·신소재, 전기차 등 총 33건의 규제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예컨대 국토부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법을 개정을 통해 드론과 로봇도 생활물류서비스 운송수단으로 허용하여 오지 배송 등을 가능하게하므로서 생산성도 향상하고 소비자 편익도 제고한다는 것이다.


규제 개선 방안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건 한건이 다 타당할 뿐 아니라, 오히려 ‘왜 이제야 개선안을 내놓나!’ 하는 만시지탄晩時之歎 느낌도 갖게 한다. 그런데 규제 개선안은 역대 모든 정부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식상한 메뉴다. 박근혜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손톱 밑 가시’ “암 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라고 규정 했고, 윤석열정부는 발에 달린 ‘모래주머니’라며 강력한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획기적인 규제 개선 방안을 내 놓았지만, 어느새 새로운 규제들이 생겨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다람쥐 챗바퀴 돌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지난 6~8일 열린 노동당전원회의에서 북한에서 팔리는 치약 등 생필품의 조악한 품질에 대해 ‘극대노’하면서 선진후량先質後量 원칙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인민들의 물질적 복리 증진”을 위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챙겨주는 어버이 수령의 마음씀씀이에 인민들이 감동감화 받았으면 하는 의도로 보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외 수많은 생필품들이 자유 경쟁하는 글로벌 시장 속에 사는 우리는 이 뉴스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자유 기업 허용하여 개방하고 경쟁시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작은 정부, 큰 시장, 강한 민간자율 규제 기구 속에 사는 미국, 유럽 기업과 시민들은 한국발 규제 개선 뉴스에 어리둥절할 것이다. 정부가 틀어쥐지 말아야 할 것을 질기게 틀어쥐었다고 놔 주는 것을 규제 개선이라하면서, 김정은이 조악한 생필품과 생산기업에 격노하듯이, 대통령들도 규제를 “쳐부숴야 할 원수”니 ‘모래주머니’니 하면서 전의를 불태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규제개혁이 어려운 것은 시장은 작고, 민간 자율규제 기구는 약히고, 결정적으로 정치와 국회가 비용-편익, 위험-이익을 타산하여 규제를 만들고 개선하고, 그에 책임을 지려는 의식과 지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는 이 책임을 대통령과 행정부(관료)에 떠넘기고, 대통령과 행정 관료는 말단 책임자와 피규제자(사업자)에게 떠넘기니, 규제개혁이 안되는 거시다. 게다가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은 규제 개선을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기업주의 돈벌이와 자본의 이윤추구”를 돕는다고 보았다. 사실 이번에 내놓은 33건의 규제 개선 방안도 관련 기업의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고 얼마든지 시비할 수 있다. 이렇듯 시대착오적 기업관, 시장관, 규제관을 가진 문재인은 권좌에서 내려왔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국회 과반의석을 가지고 있다.


규제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백 개의 작은 규제보다 한개의 규제가 더 파괴적인 경우가 많다. 김대중정부에서 규제를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지만, 기업들은 거의 실감을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진짜 규제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아니라 법률이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존립 근거인 행정규제기본법(제2조)은 행정규제를 법률을 제외한 대통령령 이하로 간주하지만 법률로서 근로자임금 하한선과 노동시간 상한선을 정한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제는 백 개의 시행령 규제 보다 더 포괄적이고 강력한 규제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 대상조차 아니다.


규제개혁은 넓은 시야, 정확한 실물 지식, 튼실한 공심을 가지고 국가·시장·사회·지방 등을 조망하면서 각각이 잘 작동하도록 국가의 철수 혹은 개입 전략을 적절히 구사할 수 있는 정치와 국회에 달려 있다. 사실 남한과 북한의 명운을 가른 것도, 선진국과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도 규제의 질이다. 규제의 질이 국가의 흥망을 가른다. 윤정부는 역대정부의 규제개혁 경험부터 살펴야 한다. 타산지석의 보고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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