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철-일본제국의 싱크탱크->에서 거대한 단절을 보다

정작 심각한 것은 경세담론에 대한 연구와 고민의 단절

김대호 승인 2021.08.11 10:47 의견 0

오래 전에 <만철: 일본제국의 싱크탱크>라는 책을 보고, 언제 한번 읽어야지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연히 만철(남만주철도 주식회사) 관련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고 그 책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무려 2004년에 출간된 번역서네요. 물론 절판이고.


1930년대 만주가, 1870~80년대 미국의 서부와 같아서, 일본과 조선의 온갖 사업가, 혁신가, 혁명가, 야심가, 사기꾼, 도둑, 깡패, 엘리트들이 큰 꿈을 안고 몰려갔다는 것(이 인물들 중에는 박정희 정일권 등 한국 경제개발을 주도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 만주국은 오족협화의 기치 아래 일본 주도 합중국을 건설하려고 했다는 것, 만주국 경제 건설 노선은 스탈린, 히틀러가 보여준 국가(계획)주도 경제개발 노선을 나름 창조적으로 수용한 노선이라는 것, 1960~70년대 한국,일본 정치엘리트의 만주국 경험과 인적 네트웍이 한국 경제발전에 큰 보탬이 됐다는 것 등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사회디자인연구소 간판 달고 강령(종합적 국가비전과 전략)을 연구 고민해 왔으니, 만철 조사부는 대선배였으니!!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책을 보려고 했는데, 아직도 못 봤습니다.

오늘 이 포스팅을 보니, 한국 정치의 거대한 단절이 느껴집니다. 1910~30년대 태어난 박정희, 박태준까지는 히틀러의 경제부흥, 만주국의 부흥, 2차대전후 아데나워와 서독의 부흥 등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롤 모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국가의 흥망(힘없는 나라의 설움 등)과 빈곤/기아/국가주도 경제개발과 정치리더십 등을 온 몸으로 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의식과 정신문화는 평화와 풍요를 그저 얻은 40~50대들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1910~30년대생(엘리트들)은 대일본제국 경내에서 놀았습니다. 중국, 만주, 연해주, 한반도, 일본을 어렵지 않게 넘나들었습니다. 하지만 1950~60년대생들은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과 분단 체제가 강고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세계와 역사를 보는 안목이 가장 협소한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1960~80년대 북한도 제법 잘 나갔고, 또 민족경제론과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유력한 대안으로 존재했습니다.

1970년대생(엘리트)들은 좌파 사상이념의 해방구가 된 캠퍼스를 다녔기에, 사상이념적으로는 586의 아바타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1990년대 초 여행자유화로 유럽 국경 이동 야간 열차의 절반을 한국 대학생 베낭객이 채웠을 정도로 유럽에 많이 나갔지만, 거기서 배운 것은 의외로 없습니다. 외환위기와 거친 구조조정(감기환자에게 항암제 투입)을 겪으면서 한국은 왜 이리 후지냐 하면서, 건국과 산업화 주도 세력/정부에 대한 성토만 얻어 온 것 같습니다.

경세담론에 대한 고민 역시 거대한 단절이 있습니다. 2006년에 사회디자인연구소를 시작하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의 혼미, 좌절, 실패를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김영삼 정부와 운동권의 정치/정책적 지식, 지혜의 총화인 측면이 있었기에, 혼미, 좌절, 실패은 운동권의 중도실용파의 것이기도 했습니다.

2006년, 2008년 연구소 초기 주요 멤버들은 NL/주사파 운동권의 중심 인물들로 1990년대에 사상이념적 전환/전향을 한 사람들이었기에, 자연스레 NL과 PD와 민노당에 대한 성찰반성이 연구소에 모여 들었습니다. 또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한 성찰반성도 모여들었고, 그 이후 유럽 제3의길, 뉴라이트, 박세일 등의 고민도 같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고민이 제가 쓴 책(한 386의 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 노무현 이후 등)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강령적 고민은 국힘당과도 민주당과도 끊어졌습니다.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의 중심인 586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고민과 전혀 무관한 존재들입니다. 그냥 사진만 걸어놓고 계승자입네 합니다.

저와 꽤 깊이 고민을 나누던 박세일 선생이 2017년 초에 돌아가시면서, 만철 조사부에서 시작되어 면면히 내려오던 경세담론, 즉 종합적 국가비전과 전략에 대한 고민은 현실 정치와 거의 끊어졌습니다. 이는 제 책 '7공화국이 온다'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또 제가 현실 정치 진입에 실패하면서 더 확실히 끊어진 듯 합니다. 국힘당과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라는 자들이 쏟아내는 정책과 공약을 보니 거대한 단절이 뚜렷히 느껴져 아픕니다. 펜엔마이크에서 목요일 11시 '2022 대한민국의 길을 묻는다' 에서 이 고민을 약간씩 풀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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