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의 <대한민국 금기깨기> 비평

문정부에 의해 발탁된 유능한 직업관료(차관급)의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드러나다

김대호 승인 2021.08.11 10:40 | 최종 수정 2021.08.11 10:47 의견 0

이런 책을 읽고 비평하고 쓰는 것이 직업적 의무인데, "대한민국 금기깨기"는 개인적으로 매우 각별하고, 우리 직업(경세담론 생산유통자)세계에도 매우 의미있는 책 같습니다.
정치적인 의미나 파급력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김동연의 35년 직업관료로서 쌓은 경험과 다듬은 지혜, 통찰과 애국 충정의 총화이자, 대선후보 출사표 같은 책입니다. 그런데 김동연이 높이 뜨야 정치적 의미를 가질텐데, 대중들이 책을 보고 판단하지는 않을테니, 김동연과 책의 운명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요 몇년 동안 읽은 그 어떤 책 보다도 제가 참고하고 새길 것이 많습니다. 정책적 아이디어의 보고입니다.



저랑 인연이 각별하다고 한 것은, 제 책("7공화국이온다"와 "왜 7공화국인가")을 주요하게 참고했고, 제 문제의식을 온전히 받아 안았고, 제가 제기한 가설(?)을 추인해 주었고, 제가 경험과 지식의 벽에 부닥쳐 주저앉은 자리에서 더 나간 것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적 동반성장을 느낍니다.


2020년 4월 말, 김종인/황교안에게 당한 봉변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을 때, 광화문의 한 까페 미팅룸에서 "7공화국이온다"로 비공개 북콘서트를 했을 때, 김전부총리가 참석해서 참 많은 질문을 했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책을 정독한 모양입니다.


이 책은 드물게도 문제(국가적 과제)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하고, 문제의 연관구조와 문제해결의 킹핀과 착점(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을 고민했습니다. 목차에 이 고민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아마 몇 번이나 뒤집으며 현재 목차에 도달했을 겁니다. 논지의 건축공학적 구조나 체계를 고민한 책은 많지 않습니다.


주요 논지는 책 목차만 보면 알 수 있는데, 3대과잉(국가과잉, 격차과잉, 불신과잉), 킹핀(승자독식구조), 3대금기(추격경제, 세습경제, 거품경제), 기회복지국가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논지를 한장의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책은 드문데, 이는 오랜 직업관료 생활을 하면서 대통령 브리핑을 한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책을 보고 알았는데, 김동연은 2006년에 만든 비전2030의 실무 총책임자였습니다. 그때 하던 고민을 15년 동안 발전, 숙성시켜 이 책을 낸 것 같습니다. 저에게 크게 다가오는 것은, 경제와 고용에 나쁜 짓만 골라한 문정권의 경제부총리였다는 것입니다.


문정권은 최저임금, 비정규직, 공공부문, 친노조, 주52시간, 탈원전 등으로 능력있는 기업과 인재의 국내 투자, 고용, 취업, 창업 의지에 제초제를 치고, 옥토에 시멘트 공구리를 쳐버렸는데, (보도블록 틈새에서 풀이 자라듯이) 김동연과 경제관료들은 그 빈틈/갈라진틈에 꽃을 심고, 풀을 심어 기르는 놀라운 수완들을 책에 서술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경세담론서를 쓸 때, 제일 어려운 부분은 실행 가능학 참신한 경제 정책/아이디어를 내는 것입니다. 큰 틀은 거의 이견이 없는데, 구체적인 정책/아이디어로 가면 의외로 진부하거나 황당한 것이 많습니다. 물론 이 책에도 그런 것이 없을리 없겠지만, 그래도 최고 엘리트 관료인 기재부 관료들의 무수한 보고서에서 뽑았을테니, 쓸만한 것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입니다. 적어도 제 책 보다는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문정권의 문제의식과 철학, 가치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기에, 이들과 대화 내지 투쟁을 통해 추출한 정책 아이디어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보수 우파 학자/논객들은 문정권 쪽 학자/논객들의 주장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대체로 경멸합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힘을 가진 이들의 주장을 너무 무시합니다.


그리고 김동연은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상고(야간)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고시에 합격하였고, 그 전과정에서 걸쳐 좋은 학교 나온 엘리트들로부터 갖은 무시, 냉대, 모멸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민주, 진보, 노동, 평등 팔이들의 분노, 불만,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세담론을 다룬 책을 볼 때는 먼저, 시대나 직무(대통령)가 요구하는 국가적 과제에 대해 어떻게 썼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 다음은 힘의 선택집중 지점 내지 가치의 우선순위를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제시한 제도/정책.해법의 적실성입니다.


김동연 책에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외교안보 대북 전략 관련 얘기가 없습니다. '탈원전'에 대한 입장도 없습니다. "보편적 소득안전망을 구축하자"는 소제목은 있는데, 고용보험 가입 기준을 낮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임금이 아닌 가입자의 소득과 기업의 이윤기준으로 고용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자는 것입니다. 소득 기반으로 보험체계를 바꿔서 플랫폼 노동의 고용주 문제와 자영업자 문제 등을 해소 하자는 것입니다. 아무튼 기본소득, 안심소득, 음의 소득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한국형 노동안정유연성 모델을 만들자"는 소제목 하에 제시한 것은, 실업급여 상한선과 지급기간 확대,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위한 실업부조제도 등 안정성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먼저고, 유연성을 올리는 것은 기능적 유연성(작업 조직의 배치전환, 탄력근로, 선택근로, 재량근로 폭 확대 등)을 앞세우고 그 다음 단계에서 해고를 포함한 수량적 유연성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해법은 (정규직의 과도한 기득권 축소가 아니라) 비정규직의 권리, 이익 상향이라는 상향평준화가 기조인데, 맞는 방향이 아닙니다.


공공부문 철밥통 깨자/연금개혁폭탄 돌리기를 멈추자/규제공무원부터 반으로 줄이자 등 제목은 만시지탄인 절체절명의 개혁을 부르짖었느나, 내용은 의외로 비현실적이거나(규제개혁부 신설, 규제/ 예산을 줄인 실적을 인사 평가에 반영 등. 법률적 뒷받침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 수술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식이요법 같은 변죽만 올리는 치료로 대응합니다.


교육 개혁 솔루션은 비교적 혁명적입니다. 큰 방향도 맞습니다. 하지만 부동산및 균형발전 해법등은 혁명적이긴 하지만, 방향이 맞는지 의문스럽습니다. "1가구 1주택"이 삶의 기본권이라는 원칙도 의문이고, 토지불로소득을 환수하는 토지공개념 원칙도 그렇습니다. (협력)이익공유제도 작동이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책을 주요하게 참고했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한 코멘트를 좀 하자면, 국가과잉-격차과잉-불신과잉은 실은 국가=권력 과잉과 오작동에서 옵니다. 정치=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거나, 잘못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과잉과 오작동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정치적, 경제적 과잉 렌트(지대)입니다. 승자독식구조는 이를 지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경쟁과잉은 이 과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국가=권력 과잉을 해소하는 수단은 시장을 키우고, 사회를 키우고, 지방자치를 키우고. 개인의 자위, 자조, 자치, 자율책임 영역을 키우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적자치와 지방자치 영역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권력 구조는 수평적, 수직적 분산분권을 중심으로 하되, 통합, 조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익집단과 작은 국가기관의 각개약진이 심하여 사분오열 대립갈등이 극심한데, 이를 통합 조정하는 존재가 제왕적 대통령입니다. 이를 없애 버리면 주왕조 쇠퇴이후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질 가능성이 큽니다. 사적 자치와 지방자치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는다면, 제왕적 대통령제 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김동연은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의 안목을 크게 탈피하지 못하였습니다.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잘 모르는 교육부, 국토부 공무원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개혁은 대단히 과감하지만,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복지부 공무원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개혁은 너무 조심스럽습니다. 방향이 맞는지도 의문입니다.


전체적으로 직업관료의 체취가 진합니다. 문제와 해법(정책)의 근본에 대한 질문이 약하고, 대체로 소소한 개선이 주입니다.


책에는 문정권과 갈등이나 문정권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내용은 거의 없지만, 제시한 정책을 통해서 문정권이 해야 할 일을 얼마나 방기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점에서 진보의 기치를 내걸고 진보/노동 기득권 옹호에만 철저했던, 위선적이고 반동적이기 이를데 없는 문정권과는 확실히 차별화됩니다. 하지만 대수술이 필요한 사안에 아까징키, 안티푸라민, 소화제를 처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래를 누구 보다 많이 얘기하지만, 미래를 개척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김동연은 노무현과 철학, 가치, 정서가 유사해 보입니다. 사실 민주정부 3기라면 김동연의 철학, 가치, 정서로 무장해야 합니다.(물론 저는 많은 분야에서 방향착오거나, 방향은 잘 잡아도 행보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연은 진보 진영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고, 어쨌든 관료적 체취는 진할지라도 분명히 컨텐츠와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가장 진화발전된 진보/관료 후보입니다. 여권 후보가 되면, 매력은 좀 없을지라도, 앞뒤가 맞는 후보로서 나름 파괴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침 4년 연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도 주창하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정세균, 이낙연 등과 친화성이 높습니다.


김동연은 야권 후보가 되기에는 부족한 면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탈진보를 대변하는 후보로서는 한 몫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야권에서는 진중권과는 칼라가 전혀 다르지만 탈진보이자 중도(?)로 자리매김된 김동연을 결코 홀대하거나 박대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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