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참사에서 무엇을 배웠나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16.12.23 15:29 의견 0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의 7시간이 화제가 될 때마다, 지난해 3월에 출간된 <세월호를 기록하다>(오준호 지음, 미지북스 펴냄) 일독을 권하는 친구가 있다. 변호사인 친구는 객관적 사실을 찬찬히 살피지 않고, 분노와 증오만 격하게 발산하는 이 나라의 지적, 정치적 풍토를 아쉬워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을 전후로 다시금 대통령의 7시간이 논란이 되는지라, 사놓고 1년 이상 책장에 꽂아만 두고 있던 책을 최근에야 읽었다. 저자 오준호는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의 일원으로, 2014년 6월부터 5개월간 33차례 열린 세월호 재판을 빠짐없이 방청한 사람이다. 책을 넘기다 보면, 그 기가 막히던 4월의 기억과 슬픔과 분노가 솟구친다. 저자는 세월호 재판의 한계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아마도 저자가 대한민국에 대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나도 크게 공감한다. 특히 셋째 대목에 대해!   %ec%84%b8%ec%9b%94%ed%98%b8%eb%a5%bc-%ea%b8%b0%eb%a1%9d%ed%95%98%eb%8b%a4   세월호 재판의 한계는 첫째, 진실 규명을 형사 재판을 통해 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검찰의 요청으로 여러 전문가들이 사고 원인 관련된 증언을 하고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긴 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 연구와 증언은 "검찰의 공소 사실 입증이 주된 목적"이기에 "검찰이 쳐 놓은 테두리 안에서만 진실 규명 작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진국은 큰 사고가 일어나면, 민관합동조사기구가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보장받고 사고의 수많은 직간접적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정리하여 두꺼운 백서로 만든다.   둘째, 법적 책임을 묻는 일에 치중하다 보니 정치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형사재판은 현행법의 위법 행위만을 따진다. 검사는 애초에 위법성을 입증할 수 있는 행위만을 기소하고, 재판부는 검사의 기소가 적법한지를 판단할 뿐이다. (중략) 예컨대 운항관리실 직원이 해운사의 과적을 막지 못한 데는 해운업의 자율 규제를 용인하는 쪽으로 법 제도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해운사와 하역업체의 갑을 관계, 해운사와 선원들의 주종관계가 세월호를 안전에 극히 취약한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이 역시 현행법 어디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중략) 위법하지는 않지만 사고가 일어날 전반적 조건을 숙성시켜 온 이 모든 행위들은 세월호 재판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322쪽)     셋째, 세월호 재판에서 이 사고는 정상 국가에서 잠시 일탈한 사례로 규정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과연 국가의 정상적인 상태로부터 일탈한 사고인가   "상식을 초월하는 이 사고에는 당연히 상식을 초월하는 어떤 거대한 '일격'이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재판 과정을 통해 참사의 배경에 있는 것은 촘촘하게 결합된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고 무능한 행동들이란 사실을 알았다. 애초 낡은 배가 도입되도록 이명박 정부가 선령 규제를 완화한 것도 문제이지만, 청해진 해운이 무리한 증개축을 하지 않았다면, 무리한 증개축에 한국선급이 제동을 걸었더라면, 적어도 증개축 이후 한국선급이 승인한 화물 적재 기준에 따라 화물을 실었다면, 위험한 출항을 거부할 수 있도록 선원들에게 발언권이 있었거나 그들에게 용기가 좀 더 있었더라면, 운항관리자가 규정대로 출항을 규제했더라면, 조타수가 대각도 조타를 했더라도 복원성이 그 정도로 악화된 상태가 아니었다면(평형수가 좀 더 채워지고 화물이 단단히 고박 되었다면) 배는 쓰러지지 않았다. 설령 배가 쓰러졌다 해도 선원들이 평소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아 비상사태에 현명히 대처했더라면, 비상시 선내 방송 매뉴얼이 갖춰져 있었다면, 진도 VTS가 퇴선 결정의 책임을 세월호에 맡길 게 아니라 과감하게 지시했더라면, 구조 세력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협력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면, 출동한 123정 해경이 더 적극적이고 판단력이 뛰어났더라면…. 이 많은 '였다면'이 결합되지 않았으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거나 적어도 참사가 되지는 않았다. 요컨대, 이렇게 무수한 요인의 동시다발적인 진행을 '소수의 일탈'로 볼 수 없다. 지붕이 무너진 것은 마지막에 떨어진 눈송이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사고를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의 담론으로 단순화하는 것에도 한계를 느낀다(중략) 단지 규제가 없어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있는 규제조차 관행, 부패, 권력관계, 개개인의 크고 작은 이익 앞에 무력화되었다."(324~325쪽)     사실 세월호 참사 관련 재판에 대한 저자의 아쉬움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접하는 내 아쉬움과 완벽히 겹친다.     선진국처럼, 한국도 선거 관련 정책 토론과 각본 없는 인터뷰 등을 통해 정치인의 정책적 내공과 주변 관계를 철저히 검증하는 시스템과 정치문화가 잘 갖춰져 있었다면, 전국적으로 양당 독과점에 특정 지역에서는 일당 독점을 초래하는 선거제도가 아니었다면 '혼이 비정상'이요, 인간관계와 소통 방식이 대중 정치인과 너무나 먼 정치인 박근혜가 5선 의원에, 당 대표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헌법 제7조는 '①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여 공무원이 대통령과 측근들의 부당한 지시,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총리와 국무위원(장관) 등을 임명하는 절차에는 국회 동의와 총리 제청 등도 명문화하여,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처럼 하였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헌법 제78조는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면한다'고 규정하여, 대통령이 법률을 통해 눈 밖에 나는 공무원을 별 어려움 없이 자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대통령과 청와대 실세들은 공직자 임면권(면직권)을 지렛대로 하여 승진·보직·임지·예산 등에 목메는 검찰·국세청·감사원·행정부처 장차관·국실장과 대학을 움직여 최순실 일가와 그 일당의 인사 비리·예산 빼먹기·부정 청탁·입학 비리 등을 자행하거나, 방조하거나, 은폐하였다. 최순실 일당의 주된 근거지가 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부당한 지시명령을 거부·폭로하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거사(巨事)로 만들었다. 인간적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는 얘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군주의 일탈을 목숨 걸고 제지하는 충신은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최측근과 청와대와 새누리당에는 이런 사람이 거의 없었던 듯하다. 이 역시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는 몇몇 악당에 의한, 국가의 정상 상태로부터의 잠시 일탈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최순실-박근혜 참사'도 정상 국가, 정상 정치의 잠시 일탈이 아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에도 건재했던 국보 1호 남대문이 2008년 2월에 거의 전소된 사건도, 세월호 참사도, 혼이 비정상인 것이 분명한 박근혜 대선후보의 당선과 탄핵 사태도 온통 동시 다발 만성 중증질환으로 죽어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몸에 불쑥 밀고 나온 흉측한 종기라고 봐야 한다. 종기는 중병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근본 원인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 망국, 분단과 전쟁, 외환위기, 북한의 대량 아사, 세계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률 같은 민족사적 비극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성찰과 반성을 한 적이 없다. 단적으로 고종과 당시 핵심 권부 등 망국노가 아니라, 을사오적 등 매국노와 친일파와 일제에 대해서만 분개한다. 이런 식의 얕은 성찰과 편향된 반성이 계속된다면, 세월호와 박근혜 참사에 대해서도 몇몇 악당 혹은 이른바 부역자 좀 처벌하고 넘어가 버릴 것이다. 크고 심각한 문제를 작고 표피적 문제, 즉 사람과 권력(집단)의 문제로 축소·변질시켜 버리는 악습이 반복될 것이다. 한민족은 재주와 신명이 넘치는 민족은 분명한 것 같은데, 어떻게 이리도 아픈 역사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떨어지는지! 내 느낌이 제발 거대한 오판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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