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격차, 사다리, 매트리스와 유능한 정치가 일자리 문제 해결의 요체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13.05.30 21:23 의견 0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의 구조 파악이 먼저다-

  우리 시대 최고, 최대의 난제는 한반도 평화·통일과 양극화·일자리 문제 해결일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등으로 일측촉발의 전쟁 위기가 감돌면서 평화·통일이 얼마나 어려운 난제인지를 전 국민과 국제사회가 실감하고 있다. 이제는 북한 문제를 당근(경제적 지원)이나 채찍(봉쇄 정책) 하나로 간단히 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양극화·일자리 문제는 어쩌면 그 보다 더 풀기 어려운 난제인지도 모른다. 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다른 나라 보다 훨씬 많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지금 회자되는 재벌 개혁과 대기업 규제를 요체로 하는 경제민주화론과 복지강화론 정도로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를 구분하는 것이다. 겨울에 춥다고 해서 태양을 가까이 끌어당길 수 없고, 지축 각도를 틀 수는 없는 법이다.

한 나라의 물질적재생산(부가가치 생산 분배) 구조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산업연관표와 고용노동통계를 연계하여 국제 비교를 해 보면 한국 특유의 양극화, 일자리 문제의 구조를 알 수 있다.

먼저 한국과 국경을 맞댄 중국, 일본의 산업구조가 한국의 비교우위 산업·기업 및 비교열위 산업·기업에 끼친 심대한 영향(지경학적 조건)을 직시해야 한다. 세계화, 자유화, 민주화, 지식정보화는 세계적 보편성이지만, 세계 경제, 산업의 지각변동의 중심인 중국에 인접해 있고, 경쟁 산업/품목도 많은 나라들(한국, 대만, 태국 등)이 몸살을 더 심하게 앓을 수밖에 없다.

둘째, 한국의 산업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재벌대기업이 주도하고, 주도할 수밖에 없는 조선, 자동차,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휴대폰 등 소수 수출 품목의 위상(성장 기여도, 협력업체에 대한 지배력 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가공조립 산업의 특성상, 또 중국, 일본에 인접한 지경학적 조건으로 인해 이 비교우위 품목들의 산업연관효과나 낙수 효과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해외, 제조업, 소수품목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이상, 해외경기 상황, 국제 경쟁력,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가격 등에 따라 한국 경제가 요동치고, 산업과 기업의 명운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불안하고 고단한 운명인 것이다.

이는 사람(고용노동)과 돈을 좀 더 유연하게 운영하고, 보다 생산적인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하도록 하는 시스템(인센티브체계 등)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동시에 노동과 기업의 부담을 국가가 많이 떠 안아주고, 괜찮은 파트타임 노동 등을 늘려 고용률을 올릴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대기업 조직노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 진보와 세상 물정 모르는 보수는 공무원 일자리를 표준으로 삼아, 고용노동을 더욱 경직되게 만들고, 영세, 중소기업에게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지우는 쪽으로 가고 있다.

셋째, 국가의 평균 생산력을 보여주는 1인당 GDP나 PPP(구매력 평가지수) 잣대로 각 산업, 직업, 부문별 처우 수준에 대한 국제 비교다. 이는 한국 특유의 갈등, 경쟁 구조와 일자리 말살 구조를 파악하는 열쇠다. 한국은 제조업과 수출대기업의 산업적 위상에 비하여 고용 비중이 너무 낮다. 그만큼 노동시간도 길고, 종사자들의 평균적 처우는 높다. 요컨대 이들의 경제적 위상은 점점 높아지지만, 고용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평균적 처우는 노동의 양, 질이 아니라 기업 수익성과 노조 교섭력과 연공서열에 따라 점점 올라가서, 그야말로 ‘해고는 살인’이 되는 등 극심한 고용 경직성으로 인해 양극화·일자리 문제는 점점 악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런 경직성과 합리적이지 못한 기대와 단순무식하고 거친 규제 등으로 인해 비교 우위 산업/기업은 국내 투자를 움추러 들게 한다.

넷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양극화·일자리 문제를 완화, 완충하는 기능을 하는 공공부문의 기형성이다. 이들의 처우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100인 이상 민간기업의 처우와 연동되어 있다. 즉 공공부문이 민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집단의 등에 업힌 것이다. 그것도 후한 연금과 고용안정 등은 뒤에 숨겨두고! 그래서 한국 공공부문은 청년들의 최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청년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대학을 고시공시 공부방으로 만들어 버렸다.

1인당 GDP의 잣대로 OECD주요국과 한국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해외(수출대기업) 부문과 공공부문 및 국가가 진입 규제 등으로 보호하는 부문이 너무 많은 파이를 가져간다. 전자의 수혜자는 재벌대기업 및 제조업과 울산, 거제, 포항, 창원 등 수출·대기업 도시다. 후자의 수혜자는 공무원, 교사, 공기업뿐만 아니라 국가가 수량과 업역을 정하는 변호사 등 ‘사’자 직업과 철저한 규제 산업인 금융, 방송, 통신, 의료 산업 등이다. 공공부문과 과보호(규제) 부문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학위·시험 사다리 외에는 없기에 그 아래서 살인적 경쟁이 벌어진다. 과잉 고학력화, 사교육 광풍, 입시비리는 필연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양극화 요인이자 자원 배분을 왜곡시키는 요인이 부동산(제도, 정책)이다. 사람과 산업(시설)이 들어올 만한 땅의 대부분이 사유화 되어있고,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장치도 미흡한 상태에서,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인구 집중)가 일어날 때, 자산, 소득, 기회 격차 확대가 심화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국회의원을 각종 시설을 유치하여, 지역 땅값 올리는 일에 앞장서도록 하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도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일자리 부족·불안·불만 문제와 과도하고 불합리한 자산·소득·기회 격차 문제의 원인으로 재벌대기업의 독과점, 불공정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을 어떻게 빼놓을 수 있겠는가이는 반드시 엄단, 척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척결한다고 해도, 산업구조와 지경학적 조건으로 인해 생긴 경제력 집중 현상은 그리 완화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뿐만 아니라 공평성(소속이 아니라 노동의 양,질에 따른 처우), 연대성, 우리 생산력 수준, 가치생태계(국민경제)의 균형 개념을 상실한 노조와 공무원이 공유하는 고용임금 사상(패러다임)의 문제도, 철저한 안정 위주(과보호 상태)의 금융산업과 허술한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시스템 문제도 여간 심각하지 않다. 이 모든 모순부조리는 정치의 혼미, 무능과 행정, 사법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인해 더욱 악화 되었다.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를 심화시키는 거대한 구조를 바로 보지 못하면, 문제를 너무 쉽게 보고 접근한 북핵 해법의 전철을 답습할 수있다는 얘기다.

한국 특유의 양극화·일자리 문제 해결의 열쇠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강화와 더불어, 격차(1차 분배구조), 사다리, 매트리스(2차분배구조)를 바로 잡는 것이다. 산업구조상 힘 차이가 크게 날 수 밖에 없는 ‘갑’-‘을’ 관계를 감안하면, 봄철에 산불 감시 헬기를 수시로 띄우듯이, 특별한 공정거래 감시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공정 헬기를 수시로 띄워야 한다.

동시에 한국 특유의 후진적 고용임금 사상과 이를 밀어붙이는 조직노동, 공공부문, 금융부문과 그 외 국가규제(자격증) 부문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 관건은 생산적 경쟁이 가능한 다당제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정치가 바로 서면, 왜곡된 금융, 부동산, 사법 시스템과 지방발전의 관건인 지방자치 시스템을 몽땅 바로 잡을 수 있다. 학위,시험 사다리의 승자(공무원 등)들이 누리는 과도한 권리, 이익을 적정화 할 수도 있다. 과잉 보호 부문에는 장막을 걷어내고, 과소 보호 부문에는 장막을 치는 일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적 인센티브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의 후진성이 문제 해결의 킹핀이라는 얘기다. 복지국가는 많은 세금 위에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격차, 사다리, 매트리스와 잘 작동하는 정치시스템 위에 건설된다. 한국 특유의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 구조 파악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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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13.5.29(수) 전경련 주최 '국민대통합 심포지엄'-일자리 어떻게 해야 하나- 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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