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인가 척추인가?

socialdesignkorea 승인 2014.01.14 11:29 의견 0

-누구나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예술가-

  전화위복 마포문화재단 제 소개부터 간단하게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마포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제가 마포문화재단 대표를 한 지는 8개월 정도 됐습니다. 공모를 통해 뽑혀서 4월 15부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시절에는 서울대 메아리라는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 사회에서 이런 문화관련 된 일을 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졸업 후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창립 멤버로 참가해서 1집 앨범을 내기도 했습니다.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작곡도 하고 그랬지요. 그러다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용접공으로 취직해 8년 정도를 다녔습니다. 92년도부터 다시 노찾사 대표로 돌아와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문화운동을 하면서 늘 고민스러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실제 현실 제도를 바꾸지 못하는 것이 항상 답답하더라고요.       유럽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문화를 사회적 공공재로 인식해서 국가가 책임져야 될 사항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유럽 대부분 나라들이 문화만 단독으로 조직이 있지 않아요. 네덜란드만 해도 문화미디어체육스포츠 거기다가 교육까지 같이 묶어 하나의 부서로 되어 있어요.       미국은 다릅니다. 미국은 중앙정부 조직에 아예 문화부라는 조직 자체가 없습니다. 대신 개인펀드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어요.       그럼 대한민국은 어떨까요유럽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니죠. 사회적 공공재로 인식해서 국가가 책임져주지도 않고 또한 미국처럼 민간 영역이 발달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불모지나 마찬가지죠. 이런 상황에서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란 고민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당시 부천 원혜영 시장님과 연이 닿았습니다. 원혜영 시장님이 민선 2기 시장을 하면서 원래는 정보화 도시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노동운동 하던 시절 사수하시던 분이 원혜영 시장님과 친분이 있으셨어요. 술자리에서 누구나 다 하는 정보화 도시를 하는 것보다는 문화도시를 하면 21세기 지도자 이미지도 굳힐 수 있고 차별성도 있으니 더 좋지 않겠냐 하며 권유를 하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원혜영 시장이 물어서 저를 소개시켜주신 거죠. 그렇게 해서 부천시 문화정책전문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천에서 운 좋게도 성공을 거두었지요.       그 다음에 경기문화재단으로 옮긴 뒤 문화예술교육정책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하고 있지만 그 당시는 중앙정부 시책보다 2~3년 빠른 것이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이 기존 학교문화예술지원정책과 다른 것은 이거에요. 기존 사업은 전부 방과후 수업 위주였어요. 그러다보니까 학원 수업하고 별반 다를 게 없었어요. 그래서 경기도에서는 교과목 수업으로 정착시키려 시도했습니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조영초등학교 교장선생님과 협약을 해서 성공을 시켰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학교문화예술교육 상당수가 교과목 수업으로 전환되는 쾌거를 거두었어요.     그 일을 하고 난 뒤 잠시 재야에 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님과 인연이 닿아 경남문화콘텐츠 진흥원 초대 원장으로 가서 여러가지 문화산업 관련 정책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다 김두관 지사님이 대선 출마하시면서 사퇴를 하시고 후임 민선으로 홍준표 의원님이 당선되시면서 쫓겨나게 된 거죠.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현재 마포문화재단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간단히 제 소개를 마쳤습니다.      

창조적 미국

우선 다른 나라의 경우 어떻게 문화예술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우리나라한테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친 미국 사례부터 말씀드릴께요. 미국에서 97년 대통령 산하 예술인문학 위원회에서 국가보고서 하나가 나옵니다. 제목은 ‘창조적 미국’이었어요. 전문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대통령 각하. 지난 20세기까지 미국은 세계 초일류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구촌은 급격히 굴뚝 없는 공장인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지식기반사회는 이전의 사회와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사회로써 국가의 창조력을 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극대화하는가에 따라서 국가경쟁력의 순위가 달라집니다. 우리 예술인 문화위원회에서는 미국이 21세기에도 세계 초일류 강대국일 수 있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연구했습니다. 그 연구의 결과를 여기에 담았습니다.’   보고서의 전문을 보면 21세기 국가의 핵심 경쟁력은 창조력의 크기라고 본 거에요. 이 창조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인문학자들이 연구해보니 바로 문화예술이라는 것이죠.     보고서 전까지 미국 문화정책의 핵심기조는 두 가지였어요. 첫번째는 민간기부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에서 건전한 NGO와 NPO를 유지하는 것이에요. 개인기부금들을 모은 소규모 파운데이션과 그것이 다시 모인 중규모, 중규모가 다시 모인 대규모 파운데이션 이렇게 중층화되어 있어요. 이런 재단들의 설립을 통해 민간영역에서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상업적 창조산업영역입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대표적이죠. 기존의 핵심기조는 이 두 가지였는데 ‘창조적 미국’ 보고서에 새로운 시각이 나온 겁니다. 바로 ‘아마추어 예술활동의 활성화’입니다. 공공의 삶에 생기를 부여하고 예술과 인문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도움을 준다는 거죠.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큰 겁니다. 논리를 연결시키면 미국이 21세기에도 세계 초일류강대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마추어 문화예술활동을 촉진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단순히 미국만의 생각이 아니란 겁니다. 다른 많은 나라들 역시 21세기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하나같이 강조한 것이 ‘아마추어 문화예술활동’이었습니다. 우따고에 두 번째로 역시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본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제가 한국민족음악인협회의 사무총장을 할 때 일본의 합창조직인 ‘우따고에’와 국제교류를 했었어요. 우따고에 50주년 기념회에 초청을 했기에 제가 ‘산뜻소리’라는 공연단을 조직해서 대표로 참석을 했어요. 우따고에라는 조직은 일본 패전 직후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창설이 되었어요. 일본의 유명한 여성 소프라노 분이 우따고에라는 운동을 주창해서 시작이 되었죠. 우따고에는 노래소리란 뜻이에요. 합창을 통해 전세계 지구촌 시민들에게 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에 대한 의지를 알리자는 취지였지요. 현재 수 만 명의 회원들이 활동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NGO들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정부 돈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잖아요심지어 못 받으면 바보로 취급할 정도이지요. 자기 돈을 내고 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훈련이 하나도 되어 있지가 않아요. 그런데 일본의 경우 아예 정부에 기대지 않아요. 기대도 안하고 있어요. 다 자기들이 돈을 걷어 회비로 운영하고 있는 거에요. 초청받은 50주년 기념회 때 가보니 아침 10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사람들이 하루 종일 미어터져요. 객석규모가 5000명인데 전부 꽉 차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전부 합창단인 거에요. 사람이 있는 모든 곳에 합창단이 다 있어요. 고령 합창단, 어머니 합창단, 어린이 합창단, 환경정의 합창단 등등.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합창단이 중증장애인 합창단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냥 그런 장애인이 아니에요.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는 전신 장애인 분이 합창단 일원으로 같이 나왔어요. 인터뷰를 하는 데 간병인들만 알아듣는 조그만 목소리라 자막으로 표시를 해주었어요. 본인이 몸은 그렇지만 평상시 여러분들과 같이 연습도 하고 무대에서 같이 노래 부른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모르겠다고 자막으로 나오니 말하는 사람도 울고 같이 하는 합창단도 울고 객석도 울고 전부 울음바다가 되었죠.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갑옷인가 척추인가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프로젝트 때문에 우연히 네덜란드에 갈 일이 있었는데요.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내려서 보니 좌측으로는 운하가 있고 가운데 도로가 뻗어 있는데 그 도로 1.5키로 정도 근방에 자그마한 박물관과 갤러리가 30개가 넘는 거에요. 하루 종일 다녀도 다 못 봐요. 엄청난 인프라죠. 우리가 네덜란드를 역사적으로 상업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또한 엄청난 문화적 자원들도 보유하고 있어요.   네덜란드의 경우 향후 4년간 전개할 문화정책을 1년 전에 미리 발표하도록 법으로 강제화되어 있어요. 제가 97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시행된 네덜란드 정책 보고서를 구했는데요. 제목부터 상상 이상이에요. 대한민국 국가정책보고서라면 어떻습니까제목부터 딱딱하잖아요. 국민의 정부 복지정책 5개년 개발계획. 대부분 이렇죠. 그게 한국의 보편적 상식이죠. 네덜란드의 국가정책 보고서는 이렇습니다. ‘갑옷인가 척추인가’. ‘문화를 타인과 우리를 구분하는 무익한 방어적인 수단으로 써서 우리가 획득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갑옷의 똬리를 틀고 지키려고 할 것이냐아니면 문화를 척추 삼아 온갖 신경과 혈액, 근육을 붙여 가능한 모든 유연성의 바다를 헤엄칠 것이냐’   소제목들은 더 멋져요. ‘거미줄을 잃어버린 거미는 절망적인 방랑자이다’. 거미는 전업적인 예술가, 직업적인 예술활동가를 의미해요. 거미는 거미줄이 필요하죠. 여기서 거미줄은 바로 예술가들을 위한 후원활동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전업적인 예술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후원활동을 조직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덕목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챕터의 소제목이었어요.     다른 소제목은 또 이래요. ‘깃털도 그 속에 몸통이 없이는 새가 날지 못한다’. 새가 아무리 화려한 비상을 하고 싶더라도 그 안에 몸통이 없으면 날지 못한다는 겁니다. 화려한 깃털은 직업적인 예술활동을 의미하고 있고 그들이 화려한 비상을 하기 위해서는 몸통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건데 이 몸통이 바로 아마추어 예술활동이에요.    

누구나 예술가

예술가 소득지원을 위한 법도 마련되어 있어요. 비록 시행 3년째 폐기하기는 했지만 법 제정 당시에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았기에 잠깐 소개 드리겠습니다.   1999년 1월달에 공표되었어요. WIK(Wet Inkomensvoorziening Kunstenaars)라는 법이에요. 예술가 소득생계지원법쯤 되요. 요새 우리나라 예술인 복지법 만들어져서 최근에 연구하고 있죠올해 100억 예산이었고 내년에 200억 예산으로 늘린다고 하는데요. 이미 그것을 네덜란드는 아예 법으로 99년에 시행했던 거에요.   법 전문을 보면 정말 감동적입니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누구나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예술가이다. 제가 이 첫 번째 문장을 읽으면서 전율을 했어요.   현재 한국의 경우 광역자치단체는 의무적으로 예술가 지원을 위한 문화예술금고를 운영해야 되요. 기초자치단체는 권고사항이고 의무사항은 아니에요. 제가 부천에서 일할 당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부천만 문화예술금고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문화예술금고 운영 주도권을 놓고 부천지역 예총과 민예총 조직 사람들이 매일 멱살잡이하면서 싸우는 거에요. 싸우면서 하는 말이 ‘너 따위가 예술가야’ 이런 거였죠.   그 당시 많이 힘든 경험이 있었는데 네덜란드의 법조문을 본 순간 전율할 수밖에요. ‘누구나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예술가이다’. 네덜란드에도 예술활동을 지속하지 못하고 거리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만약 이들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만약 먼 훗날에 혹시 남다르게 될 지 모를 위대한 예술가들을 잃어버리게 될 지 모른다며 지원하려고 법으로 제정한 거죠. 감동적이지 않습니까(박수)   네덜란드의 그 법을 번역하면서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너무 억울해서요. 어떻게 같은 지구촌 아래 동일한 시간대 사는데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는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아니 상상하려고도 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어요.    

거대한 흐름

  세 나라의 사례를 보았지만 더 많은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아마추어 예술활동에 대해 주목하고 있어요. 요새 한국에도 커뮤니티 아트가 유행하고 있죠커뮤니티 댄스, 커뮤니티 디자인, 커뮤니티 건축 등등. 그 동안 예술은 그냥 예술가들이 창조하는 것이고 대중은 그냥 받아서 향유하면 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서 향유자가 창작활동에 관여하는 방식이 처음부터 의도가 된 창작활동 방식이 바로 커뮤니티 아트에요. 처음부터 예술가는 창작 작업 중에 향유자들을 배려하고 참여시키기 위한 장치가 준비되어 있어요.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활동의 중요성과 더불어 커뮤니티 아트라는 새로운 사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죠. 어떤 큰 흐름이라고 저는 보여져요. 일종의 거대한 시대의흐름입니다.   <계속>   * 본 기사는 2013년 12월 19일 늦은 7시~9시까지 희망자치연대와 사회디자인 연구소 주최로 생각공방 온빛터(마포대로 186-7)에서 열린 제 4차 희망자치정책포럼(지방자치 문화정책 어디쯤 있는가)에서 김보성 마포문화재단 대표 이사님의 강연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수정, 보완하는 과정 속에서 원문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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