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부탁해?

socialdesignkorea 승인 2014.10.10 11:11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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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3월 11일은 27년만에 농협조합장 동시 선거가 개최되는 뜻 깊은 날이다. 농협개혁, 농촌개혁운동을 하는 시민운동가들에게는 이번 선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정작 동시선거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위탁선거법의 제정에 있다.   그럼 위탁선거법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체적으로 시행되어야 마땅한 선거를 누구한테 왜 부탁한다는 것일까 위탁선거법의 정식명칭은 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다. 그 제정과정을 살펴보니 이러하다. 위탁선거법은 2014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의 대표발의로 이루어졌다. 4월에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상정이 되었고 법안심사 과정에서 일부 조문이 수정의결되어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6월 11일에 정부가 공포하여 8월 1일자로 시행이 시작되었다. 법률 조항에 나와있는 위탁선거법의 제정목적은 “공공단체등의 선거가 깨끗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공공단체등의 건전한 발전과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 한다. 바로 밑에 나와있는 기본원칙을 그대로 따오자면 “선거관리위원회법에 따른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법에 따라 공공단체등의 위탁선거를 관리하는 경우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행하여지도록 하고, 공공단체등의 자율성이 존중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단체는 “농업협동조합법, 수산업협동조합법에 따른 조합과 중앙회 및 산림조합법에 따른 조합,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따른 중소기업중앙회, 새마을금고법에 따른 금고와 중앙회 및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조합, 이런 규정에 준하는 단체로써 임원 등의 선출을 위한 선거의 관리를 선관위에 위탁하려는 단체.”라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었다. 농협, 수협, 산협이 과연 공공단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한국 공공단체의 정의를 온라인행정학 전자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반적 의미에서 공공기관(public institution)이란 ‘행정기관과 유사한 공익적 목적으로 설립되고, 정부로부터 출연금이나 보조금 또는 정부위탁사업 수행으로 인한 수입으로 운영됨으로써, 국민 세금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여 공공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공급하는 기관’을 말한다. 이는 조직진화론(organization evolution)론에서 정의하고 있는 ‘준정부조직(quasi autonomous non governmental organization)’이나, 공기업론에서 정의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공기업’과 유사한 개념이다. 정부조직 진화의 관점에서 ‘준정부조직’이란 ‘전통적인 행정기관(department)이 내부적 효율성과 외부적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하여 시장지향적으로 상업화(commercialization)된 기관’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농협은 어쨌든 협동조합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협동조합의 정의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협동조합 7원칙에 보면 제 7원칙에 물론 지역사회에 대해 기여한다고 공공적인 책임도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제 4원칙을 보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말은 협동조합이 정부나 시장 등 다른 조직의 도움을 받거나 연계를 하더라도 자신들의 자주성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농협, 축협 같은 기관에 대한 자주성에 관련한 위헌 소송은 몇 차례 있었다. 2000년에는 농협, 축협, 인삼협 중앙회를 통합하는 법률인‘통합농협법’ 논란을통해 불거졌다. 헌재의 판결은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 일부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과도해 기본권 제한의 목적 수단간의 비례성을 현저히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고 입법목적 및 통합이 지니는 고도의 공익성 등을 비춰볼 때 입법재량권 범위를 현저히 일탈했다고 할 수 없다”면서 합헌결정을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위탁선거법에서는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 위탁선거법에서 규정한 공공단체의 정의에서 농협, 축협, 수협 등은 위탁선거법에서 반드시 위탁해야만 될 대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런 저런 비합리적인 부분이 보이지만 그래도 선거를 부탁해서 시행하는기관이 기존보다 잘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선거운동 부분이다. 위탁선거법 24조에서는 법조문 25조부터 30조까지 명시되어 있는 선거운동을 제외하고는 어떤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명시되어 있는 선거운동은 다음과 같다. 선거공보, 선거벽보, 어깨띠 등 소품, 전화 및 정보통신망, 명함 배포이다. 기존 농협 조합장 선거 관련 규정을 명시했던 농협법에 있던 공개토론과 합동연설회는 빠져 있는 것이다.   농협개혁 운동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관리비용과 대규모 청중을 한 곳에 모아 선거운동을 할 경우 돈 선거가 될 여지가 높다는 이유로 빠졌다고 한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다. 과거 농협법에서는 있었던 공개토론이 빠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개악이 되었다고 농업인들이 한탄을 토하는 주 요인이기도 하다.   TV 공개토론의 경우 이미 합법적이고 유용한 선거 유세의 하나로 일반화되었으며 합동연설회의 경우 그 역사가 이미 오래된 선거유세방법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단지 관리비용과 돈선거라는 이유로 빠진 것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이리저리 자료를 찾다가 녀름 농업농민정책연구소의 이호중 연구기획팀장의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호중 팀장의 글에 따르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법안 검토보고서와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근거로 당초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발의안)’에 있던 선거운동방법(언론기관 및 단체 등의 후보자 초청대담, 토론회)이 삭제된 이유는 농협중앙회, 농림축산식품 등의 반대때문이라고 한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보면 심사과정에서 농협의 반대이유를 들어 당초 발의안에서 관련조항을 삭제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소위에 참석한 중앙선관리위원회 역시 선거운동방법이 폭넓게 보장되어 있다며 삭제에 동의하였다 한다.농협중앙회가 언론기관 및 각종 단체 대담 토론회 개최에 반대한 이유, 그리고 반박 논리는 아래와 같다.  
      농협중앙회 등 입장 반박 입장
    1 제 3자의 선거운동 개입은 자율성 침해 조합원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한 공적활동이지 선거운동 개입 또는 자율성 침해라고 볼 수 없다
    2 조합원이 후보자를 잘 알고 있어 면대면 선거운동의 필요성이 낮다 현재 조합장선거에 만연되어 있는 돈선거, 지연, 혈연위주 풍토를 정책선거로 개선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3 개최비용의 과다소요 대담, 토론회 개최는 이미 공직선거법에서 허용되고 있는 민주적 선거방법 중 하나이다. 비용과다, 공약남발, 금품제공, 공정성 문제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적고 오히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보장함으로서 선거문화 개선에 도움 될 것이다.
    4 포퓰리즘적 공약 남발 가능성이 크다
    5 청중동원을 통한 금품제공 가능성이 크다
    6 진행의 공정성 담보 어렵다
    <출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록,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제 177호 이슈보고서에서 재인용>   이호중 팀장은 녀름 이슈보고서에서 이를 농협조합장 선거법의 ‘개악’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기존 농협중앙회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권력과 동시 조합장 선거가 가져올 여러 파장 등을 고려해보면 법 제정 과정에서 토론회가 뺀 의도 자체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이호중 팀장은 선거법 제정과 관련하여 농협중앙회 규탄, 선거법 개정운동, 선거풍토 개선 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법이 개정이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개정이 안 된 현재 상태로 선거가 이루어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김현권 의성한우협회가 9월 19일 본인의 SNS 계정에 올린 글을 보면 이러하다.   “2015.3.11. 조합장 동시선거 해 보나마나다. 그냥 하던 대로 쭉 그대로 되겠다. 위 법률은 그 어떤 선거운동도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예비후보자등 사전선거운동의 기회가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다. 호별 방문, 모임 등이 금지되어 있어 입후보 희망자가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다. 조합장 선거는 일반 공직후보자 선거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일반 공직후보자 선거는 유권자가 행정구역으로 갈린다. 그래서 지역으로 유권자를 추정해 선거운동 하는 것이 가능하다. 조합장 선거는 한 동네 살아도 해당 조합의 조합원이 아니면 선거운동 대상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 속에 섞여 있는 조합원을 찾아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모임도 방문도 불가능하면 무슨 수로 선거운동을 하나시장골목에서 명함을 돌리는일이 의미 없는 선거가 조합장 선거인데 그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공식선거 운동 기간으로 14일을 정해 놓았고 4면짜리 공보물 하나가 가능하다. 명함 배부가 가능하고 어깨띠가 허용된다.   …………중략………….     선거운동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다 막으면 음성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돈선거. 그동안 조합장 선거가 돈 선거로 얼룩졌던 이유가 바로 합법적으로 선거운동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인데 더 나쁜 법률이 만들어졌다.”   최양부 바른협동조합 실천운동본부 이사장이 10월 7일 농어민신문 농업마당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아래와 같이 비판을 하였다.     “현 조합장에만 유리한 선거법 개정   조합원에 의해 자주적으로 설립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농축협의 조합장선거는 그동안 사회적 관심 밖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그들만의 동네선거’가 돼 부정과 비리로 얼룩져 왔고 돈 봉투가 오가는 타락한 선거로 비판받아왔다. 제대로 된 선거라면 조합원들이 사전에 조합장 후보자들을 비교 선택할 수 있도록 누가 출마하는지 알 수 있게 해야 하고,후보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조합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그럼에도 위탁선거법은 지금까지 시행돼 온 후보자 토론회, 연설회 등을 관리상의 어려움을 내세워 아예 못하게 막아버렸다. 조합장 선거는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것인지 농축산인 조합원의 기본적인 알권리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입법과정에서 농협과 산림조합이 반대해서 그렇게 했다는 변명의 소리도 들린다. 한마디로 선관위와 국회의원들이 농축협 등의 막강로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다. 위탁선거법에는 공직선거법이 허용하는 ‘예비선거운동기간’도 ‘예비후보자등록제’도 없다. 그러니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조합원에게 알릴 방도가 없다. 선거운동방식이 폭넓게 보장돼 선거공보, 벽보, 어깨띠, 전화걸기,문자보내기, 인터넷, 명함돌리기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을 과거처럼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후보자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하고 춤추라는 것이다. 못하겠으면 말고.   그런데 이런 모든 제약을 받지 않은 사람은 딱 한 사람, 현 조합장이다. 조합장에 당선되면 억대 연봉에다 연간 수억 원씩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하고 지역사회의 ‘유지’가 되고 시장군수의 잠재적인 정치적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조합장들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이용 조합장에 당선되는 순간부터 4년 뒤 선거를 준비한다고 한다. 조합장들은 대의원회에 자기사람을 심고, 이사와 감사를 자기편 사람으로 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이를 위해 조합장은 ‘무기 계약직’이란 편법으로 대의원이나 이사, 감사 자녀를 조합직원으로 특채해 자신을 위해 띄워 줄 확실한 직원을 확보한다. 사실상 조합을 사유화 해 조합장 독식체제를 구축한다. 농협의 마을조직인 영농회장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다. 심지어 자기를 지지하는 조합원을 확보하기 위해 무자격자를 급조해 조합원으로 등록시키고 있다고 한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을 조합장이 자격을 갖추게 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조합원으로 등록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선거를 앞두고 신규조합원가입이 크게 늘었다고 하니 이를 바로잡지 않는 한 부정하게 작성될 선거인명부로 선거를 치르게 될 전망이다.”   애초에 동시조합장 선거를 결정하게 된 것 역시 조합원들의 뜻이라기 보다는 농협과 정부의 편의주의가 작용해서 복잡하게 여러 번 시행되는 선거를 단일화 해 관리상의 어려움을 덜자는 취지가 강하게 보인다고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얘기를 조금 더 확대해서 해석해보자면 위탁선거법은 동시조합장 선거가 결정되고 나서 그 보완조치로 만들어진 법이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기존 농협법에서 규정하던 선거운동규정이 더 비합리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시조합장 선거가 비록 편의주의적 발상 때문에 결정되었다고 하더라도 농협개혁운동가들에게는 조합원들과 농민 더 나아가서는 국민들의 관심으로 모아 이슈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 조합원들의 자주의식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거운동에 저런 제약 조건이 있으면 가능한 행동범위는 상당히 제약될 수밖에 없게 된다.   2012년은 대한민국에 매우 뜻 깊은 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사회적 경제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이런 시점에 농협이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협동조합, 아니 전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규모의 협동조합에서 다른 것도 아닌 선거를 부탁하고 또 그 선거과정까지 법에 의해 규정이 되어 행동의 제약이 규제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또한 농협이 사실상 농촌 지역을 떠나 전국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영향이 크다면 오히려 그 선거에 있어 비록 비용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선거운동을 보장해줘야만 한다. 관리비용과 돈선거라는 폐지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다.   현재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를 비롯하여 녀름 농업농민정책연구소, 사회디자인연구소, 정치경제연구소 등은 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응방안을 강구중이다. 위탁선거법 개악을 주도한 농협중앙회 규탄을 비롯 선거법 개정까지도 얘기가 나오는 듯 하다. 사회디자인연구소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정의연대, 정치경제연구소 등은 대응의 일환으로2014년 10월 15일 오후 3시부터 6시에는 국회의원회관 제 3간담회실에서 위탁선거법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것저것 부탁할 수는 있다. 동의는 못하겠지만 농협은 공공단체라고 규정되어 있으니까.또한 정부자금지원을 받고 있고 그에 따른 공공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농협은 어쨌든 협동조합이다. 비록 설립자체가 조합원들의 뜻에 따라 자주적으로 생성된 단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농민조합원들을 위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고 자주성을 가지고 행동해야 되는 단체라는 말이다. 농협이 정말 협동조합의 자의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선거를 부탁해가 아니라 선거에 신경쓰지마가 더 맞는 것 아닐까그것이 협동조합의 설립취지인 자주성에도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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